왜 자꾸 우울하죠.
아이와 서점에 갔다가 걸려오는 전화를 받기 위해 잠시 서점 밖으로 나오려던 찰나였다.
"여보세요.."를 말하는 그 순간, 내 앞쪽으로 나란히 걸어오는 남녀 커플 중 여자는 서럽게 울고 있었다.
남자는 꽤 큰 키에 덩치가 좋았고, 여자는 자그마한 키에 화장끼가 없고 임신한 상태인 듯했다.
남자는 무거운 표정으로 나란히 걷고 있었지만 이내 여자를 무시하는 듯 앞으로 바삐 걸어 먼저 서점으로 들어가 버렸고, 여자는 안경 밑으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서럽게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다행히 늦은 저녁이었고 나 외에 사람이 없었다.
아이의 학원 선생님으로부터의 전화였고, 평소 학원 전화를 잘 받지 않는 내게 선생님 전화를 잘 받으라고 딸아이가 신신당부를 한 터라 한적한 의자에 가방을 내려놓고 성의 있게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가방을 내려놓은 의자에 울던 여자가 와 털썩 주저앉았다.
내 등 뒤에서 나타난 모양이었는데 여자는 여전히 울고 있었다. 남자는 보이질 않는다.
임신한 게 맞다. 아직 많이 불러오진 않았지만 확실히 봉긋 솟아난 배를 하고 있다.
왜 울까. 남자와 싸웠을까. 뭔가 서러운 맘이 들었을까. 임신을 해서 평소보다 더 예민해 있을지도 모른다.
신경 쓰일까 봐 내가 가방을 들고 전화기를 든 채 멀리 떨어져 걸었다.
선생님께 잘 부탁드린다는 말씀을 드린 뒤 다시 서점으로 들어가려는데 덩치 큰 그녀의 남자가 멀리서 걸어오고 있다.
서점에서 아이와 책을 뒤적거리고 골라 나오는데 그 커플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유난히 덩치가 좋은 남자 앞에서 여자는 유난히 더 작아 보인다. 둘의 체격 차이가 크다.
둘은 마주 보고 있었는데 여자는 여전히 눈물을 훔치며 남자에게 말을 하고 있다.
키가 작은 여자가 남자의 얼굴을 마주 보기 위해서는 머리를 한껏 뒤로 젖혀야 했다. 하늘에다 대고 얘기하는 것 같다. 남자도 잠깐씩 얘기를 하는 것 같은데 다행히 크게 화를 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와 아이는 되도록 신경 쓰이지 않도록 조용히 그 곁을 지나쳤다.
왜 울까. 뭐가 그렇게 서러웠을까. 서운했을까. 남자가 뭘 서운하게 했을까.
만약 남자가 혼자 가버리고 여전히 여자가 그 의자에 앉아 계속 서럽게 울고 있었다면 다가가서 손수건을 주고 얘기를 들어주고 싶었다. 괜찮다면 가만히 안아주고 싶기도 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여자의 서러운 그 맘이 다 이해가 되는 듯했다.
나도 가끔 그렇게 서러울 때가 있다고. 가장 행복해야 할 순간에도 우울할 때가 있고. 아무것도 아닌 상황이나 남자의 말 때문에 나 혼자 상처받기도 한다고. 당신이 서럽게 우는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심정만큼은 왠지 이해가 되는 것 같다고.
정확히는 추석 연휴 이후 나는 집에 박혀 있다.
어쩐 일인지 집 밖으로 나가기가 점점 꺼려지고 게을러졌다.
집 안에서 생활하는 데 익숙해지면서 예전에 밖에서 하던 일을 집에서 하고 있긴 하다.
오전에 집 치우고 거실에 앉으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찾아 한편씩 보기도 하고. 우연히 좋은 영화를 만나게 되면 결제해서 보기도 한다. 이 책 저책 돌아가며 읽기도 하고. 배가 고프면 압력밥솥에 밥을 안쳤다.
매일 밖으로 돌던 내가 집 안에서 지낸다고 하니. 친정엄마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라고 하셨단다. 내가 자꾸 알바 타령이나 하고 답답하다 하니 외벌이 남편 월급으로 살기가 팍팍해서 그럴꺼라고 생각을 하셨는지. 어느 사이 나는 엄마에게 '세상 제일 불쌍한 걱정스러운 딸'이 되어 있었다.
언니가 말하길. 엄마가 내 걱정을 많이 하신다나.
아이고. 엄마. 그게 아니라. 아직 세상 제일 불쌍한 걱정스러운 딸은 아닌데. 그저 기분 전환으로라도 일을 해볼까 하는 거였다고요. 주저리주저리 변명을 늘어놔봤자. 또 오해만 더 하실 것 같아 그만두었다.
엊그제 우리 집에 다녀가실 때도 우리 딸 용돈도 자꾸 쥐어 주시고.
점심식사 비용도 언니가 낸다 하니 좀 편하게 생각하시는 것도 같고.
얼마 전에 언니가 안 입는다고 가져다준 코트를 걸치고 빙글빙글 돌아보였더니 그것도 뿌듯해하시는 것 같고.
그래서 지난번 김장김치를 잔뜩 주신 건가..
그래서 가을마다 받아먹는다는 쌀 중에 한 가마니를 우리 집에 놓고 간 것인가.
장을 못 봐서 집에 있는 과일이라곤 사과와 귤뿐이라 그것만 내놓았는데. 평소보다 가짓수가 적은 게 또 부모님 신경을 쓰이게 할 까 봐 나는 또 나대로 그게 또 신경이 쓰였다.
마음이 잔뜩 움츠러들고 가난해져 있는 것 같다.
슬픈 마음에만 쉽게 공감이 되고 식욕도 없고 자꾸 잠이 온다.
나는 뚝하면 우울의 아우라를 시커멓게 내뿜으며 특별한 이유 없이 수렁에 빠진다.
내 지독한 조울증을 이해할 사람은 잘 없었다.
어릴 적의 나는 항상 성실하고 헌신적인 이성친구에게 독기를 뿜어댔고 그게 잘못된 거라는 거조차 잘 몰랐다.
항상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필요했고,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행동을 당연시했다.
나는 사랑에 항상 목말랐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그 '헌신적'이고 '착했던' 남자들을 다 마다하고.
내가 막상 가장 강한 이끌림으로 선택하게 된 지금의 내 배우자는 '헌신적인' 사랑은 개똥만큼도 없는 무뚝뚝한 사람이었다. 그는 오로지 내가 '방실방실' 웃을 때만 마주 보고 웃었다. 내가 우울해하며 독기를 뿜어대면 더한 독기를 뿜어대며 나를 몰아세웠다. 내가 착하게 굴고, 밝게 웃을 때만 행복해했다.
그는 나보다 더 사랑이 고프고, 행복이 고픈 사람이었다.
나를 보듬고 사랑해주기보다는. 그 스스로 보살핌 받고 사랑받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기댈 이가 없는. 오랫동안 외롭게 살아온 맘 가난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내가 깨닫기 전까지 우리는 꽤 오랫동안 싸웠고.
깨닫고 난 뒤에 나는 그에게 사랑을 갈구하길 포기했다.
대신 내 맘을 따뜻하게 데워 그를 보살피고. 방실방실 웃어 주고. 맛있는 걸 해서 먹여 주었다.
그럼 또 고분고분하고 착하게 굴었다. 가장의 역할도 충실히 하고. 특별히 모나게 구는 면은 없었다.
그는 생각보다 무난하고 성실했으며 단순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맘이 좀 데워진 그는 그 데워진 맘의 사랑을 온통 딸아이에게로 향했다.
그건 또 그것대로 내 행복이 되기도 한다.
아이가 영어학원 때문에 힘들어하며 자존심 상해 울던 지난 일주일 동안. 그 딸보다 더 맘을 다쳐 우울해하기도 하고.
그 딸아이 달래느라 좋아하는 스테이크 사주며 맛나게 먹는 사진을 보내주면. 그 사진에 마음이 활짝 개이며 행복해하는 그런 남자다.
딸아이가 뭐 사달라고 할 때 제일 좋단다. 그거 받아 들고 방실방실 웃는 것도 이쁘고. 아양 떨며 애교 떠는 것도 귀엽고. 또 금방 맘 바뀌어서 만만이 아빠한테 짜증을 내다가도. "아빠가 또 뭐 사주까?" 하면 금방 와서 또 찰싹 달라붙는 게 그렇게 이쁘단다. 게다가 그 사달라는 물건들도 아직은 저렴한 것들이라 얼마든지 사 줄 수 있어 그것도 다행이라며 바보 삼룡이처럼 웃는다.
내 마음을 비난하지 말고. 그저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어차피 인생 혼자 사는 거고. 외로움도 우울함도 내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내 몫이겠지만. 알면서도 가끔씩은 무한한 아량을 가진 천성 밝은 누군가에게 푹 안겨 기대어보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진짜 아무 이유도 없이 막 우울할 때.
우리 온수가 우울하구나.. 그랬구나.. 하며 머리 쓰다듬어 주고 폭 안아주는 사람.
이러한 맘이 자주 들면서도. 곁에 사람 두는 건 부담스러워하고.
가장 기대고 싶은 내 배우자는 감성의 회로가 너무 단순해 내가 우울의 아우라를 내뿜는 시기를 이해 못하고 두려워한다. 어떻게 달랠지를 몰라 스트레스받아한다. 뭐라도 해보라며 흠찟 발을 뺄 준비부터 한다.
나를 잘 달래주고 잘 받아주던 그 성실하고 헌신적인 남자 중의 하나와 살고 있었더다면 나는 쓸쓸한 시기 없이 인생을 발랄하게만 살았을까 상상을 해보기도 하지만.
그 역시 알 수 없는 일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살아보기 전까지. 그 살아지는 삶의 과정들이 어찌 바뀌었을지 상상할 수도 없을뿐더러.
나는 태생이 이렇게 생겨먹은 사람이라.
어느 착하고 성실한 사람을 만나 살았더라면.
들들 볶으며 못살게 굴다 진작에 질려 도망가게 만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시간이 너를 증명한다>라는 책을 읽으며 생각이 많았다. 뤼후이라는 중국 여성이 쓴 책인데 평범하지 않은 수많은 이야기가 가득하다. 이 많은 이야기를 어느 한 사람이 겪은 일이라는 게 신기할 정도다.
작가의 생각이 깊고 흔히 있는 감성적인 에세이가 아니다.
"함박눈이 흩날리던 북국의 밤. 모든 절망과 눈물, 공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스물두 살의 샤오신은 뭔가를 잃은 대신 또 하나를 얻었다. 그녀는 마침내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달콤한 수박도, 모양이 엉망이 된 아이스크림도, 아낌없이 바치는 청춘도 아니었다. 가로등 아래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 참담한 사랑도 아니었다.
살아야 한다. 그것도 자기만을 위해 잘 살아야 한다.
그것이 세상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
사랑하는 남자를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보내며 살았던 지독히 헌신적인 여자의 이야기다. 어느 추운 날 폭설이 내리고 그 폭설에 갇힌 마을에 있는 남자를 걱정해 빙판길을 걸어 남자에게 겨울옷과 먹을 것을 들고 찾아간다. 그리고 버림받는다. 이미 남자의 맘이 떠나 있었고 그의 말투는 냉랭했다.
나는 왠지 저 이야기에 마음이 저렸다.
저 여자가 그 비참한 상황에 처절히 깨달은 궁극의 것.
"살아야 한다. 그것도 자기만을 위해 잘 살아야 한다.
그것이 세상 어떤 것보다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