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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한 일상

잡다한 생각

by 온수


1. 딸아이가 다니는 영어학원 설명회에 갔더니.

학원 대강당에 200명도 넘어 보이는 엄마들이 꽉 차 있었다.


본인을 부원장이라 소개한 여선생님은 4학년 아이의 엄마라고 하셨는데. 어찌나 이쁘시고 강의도 잘하시는지.

이 대형학원에서 부원장을 하려면 저렇게 능력이 있어야 되는 거구나 뚫어져라 쳐다봤다.


열심히 강의를 듣다. 내 앞에 앉아 있는 수많은 엄마들의 뒤통수에 시선이 꽂혔다.

아. 저들은 6학년의 아이를 두고 있는 내 또래의 동지들이구나.

그들의 모습을 관찰한다.

푸석해 보이는 머리가 눈에 띌 때마다 괜히 내 마음이 안타깝다.

나름 차려입은 엄마가 보이면 저 여인은 이 이 설명회를 위하여 차려입은 것인가. 직장인인 것인가. 한참을 옷차림으로 추리를 해보곤 했다. 강의 중간에도 급한 전화를 받는 저 여인은 업무 중에 뛰쳐나온 거겠군. 아 좋겄다. 일하는 능력자군.


한 시간 반의 설명회가 끝나고 집까지 걸어오니 40분가량 걸렸다.

화장 지우고 편한 옷 갈아 입고 밥 먹고 한숨 잤다.

일하는 게 대순가.

다 부질없다.



2. 끝까지 파고 들어가 집중하는 '끈기'가 없다.

그나마 혹시 갖고 있었을지 모를 어떤 '능력'을 영영 묻히게 해 버린 건지도 모를 일이다.

솔직히는.

천재적인 어떤 감각이나 능력은 없어 보인다.


두루두루 잡기에는 능하나 천재적이지 않은 사람은 평생을 어중이떠중이로 살게 되는 것 같다.

그러니까 처음에 뭘 시작하기만 하면. 이야. 소질 있는데. 하는 얘길 여기저기서 들어 봤자.

끈기 있는 궁뎅이가 없으면 다 소용이 없다.


3. 어느 가게를 지나가는 내게

"어머님~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자녀 있으시면 여기 한번 와보세요~!!" 하는데.

기분이 확 별로였다.

어찌나 정확히 내 정체를 꿰뚫어 보는지.


내가 나이만 그 나이이고 아이가 없으면 어쩌려고.

그건 그거대로 상처가 된다고요.


누군가 나를 내 나이로 보는 게 상처가 될 줄이야.



4. 돈은 안 쓰는 것이다.라고 말한 김생민의 방송을 보고 느끼는 바가 많았다.

한잔의 커피가 한 마리의 고등어가 되고

혼자 먹는 한 끼의 식사가 사과봉지 가득이라는 거에 새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심지어 지난달 카드값 중에 나 혼자 돌아다니면서 커피 마시고, 밥 먹고, 책사고, 쓸데없는 걸 사들이는 거에 70만 원을 썼다.

그러니까 뭔가 할 게 없어서 뭔가 하겠다고 쓰고 돌아다닌 돈이었는데.


그 돈이면 아예 작업실을 내서 월세를 내거나.

공방 도구, 기계를 아예 사버리거나.

비싼 정장을 한벌 살 수도 있는 그런 돈인데.


알바를 할 게 아니라 돈을 안 쓰는 게 정답이다.

지난달의 쇼크로 이번 달 집 밖으로 나가는 일을 없앴더니 카드값 올라가는 속도가 반으로 줄었다.

내가 문제였나 보다.



5. 직접 만든 물건을 팔아보니 절절이 느껴지는 것.


예를 들어 비싼 케이크 한 조각 안에는.

그 케이크를 팔고 있는 가게의 월세와.

그 맛난 케이크를 만들기 위해 다녀온 프랑스학교의 유학비, 비행기 값.

인건비, 아르바이트비 등이 모두 모두 포함된 거라는 거.


누군가 손으로 직접 만든 물건들의 가격엔 웬만하면 토를 달지 않기로 했다.




6. 좋은 옷 맘에 드는 옷을 봐도.

그 옷을 입고 갈만한 곳이 없다면 살 수가 없다.

효용가치가 없는 것이다.

옷걸이에 걸어 안방 옷장 앞에 걸어 놓는 것만으로는 전혀 뿌듯하지가 않다.




7. 나는 요즘 '목수' 차림으로 다닌다.

보이프렌즈 핏의 청바지에 티셔츠. 야상. 카키색 배낭을 메고 다닌다.

지금의 나에게 가장 편안하다.


그 옷차림으로 공방 외에도 다른 여러 곳에 다닌다.

누군가 무슨 일을 하냐고 물어본다면.

전 목수입니다.. 하고 허세 한 번 부려보았으면 좋겠다.






8. 예민하고 섬세하지만 여성적이진 않다.

공감을 잘 하지만 사람에 무심하다.

사람을 만나면 웃기고 싶어 하지만 만남을 즐기지는 않는다. 대체로는 피하는 편이다.


참 철없었구나 하는 상황들이 떠오르면 이불킼을 차게 된다.

그것도 몇 년이나 흐른 뒤에 뒤늦게 깨닫는 거다.

'참 눈치 없었구나.'하고.

나 혼자.


대부분이 이렇게 생각하는데 나 혼자만 저렇게 생각하니.

그 상황에서 나는 곧 '특이한 사람'이 되어 있거나.

'눈치 없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여전히 좀 그런 사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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