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통한 심정이 되었습니다...
한 달 동안 쉬지 않고 취업사이트를 뒤졌다.
정말 열심히 하루에도 몇 시간씩 워크넷, 사람인, 독취사, 독금사, 공준모, 알바몬, 알바천국 등을 고루 돌아다니며 오늘 올라온 공고들을 보고 또 봤다.
하루에 한 군데씩이라도 이력서를 내보자 하는 심정으로 맘이 움직일만한 회사를 찾아 정성스럽게 이력서를 수정해가며 회사가 바라는 상으로 적당히 꾸며댔다.
이력서를 5개 정도 저장해두고 한 개의 이력서를 대표적으로 공개할 수도 있다기에 하나쯤은 내 이력을 솔직하게 나열해서 올려두기도 했다.
놀랍게도 꽤 여러 회사에서 내 이력서를 펼쳐 보았다는 소식이 알림으로 들어왔고, 그 회사들은 대체로 생명보험사들이었다.
나는 15년 은행에 있었고 최종 업무가 PB였었다. PB는 펀드와 방카슈랑스(보험) 판매를 주 업무로 하는 세일즈 업무이고, 나는 모자라는 능력으로 최선을 다해 업무에 임했기에 실적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지만. 그 일은 내가 좋아하는 일은 아니었다. 엄청난 스트레스로 맘과 몸이 너덜너덜해진 채로 퇴사했었기 때문이다.
온갖 보험사에서 차례로 내 이력서를 열어본다는 점은 감사한 일이기도 했지만. 혹시나 하는 맘에 전화를 받아보면 대부분 기업을 상대로 하는 세일즈 업무를 소개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어서 정중히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가끔은 부동산 회사에서 전화가 오기도 했고, 무슨 바이오회사에서 전화가 오기도 했으나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분야의 일이었고 무조건 설명을 들으러 한번 나오시라는 얘기에 그것도 정중히 거절의 말씀을 드릴 수밖에 없었다.
퇴직 후에 여러 금융기관을 돌아다니며 UAT 업무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해왔었는데 그 분야라면 크게 스트레스 없이 재미나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올린 이력서였다. 하지만 그 업무에 관해서는 전혀 접촉이 없었다.
내가 이력으로 경력직을 지원하자면 PB 업무나 보험회사가 가장 적격이겠지만 나는 그 일이 너무 힘들어 퇴직까지 결정해 회사를 나온 사람이므로 그 업무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깨끗하게 나의 경력 따위 없는 셈 치고 새로운 일을 지원해보자 하는 맘으로 몇 군데 지원서를 내보았다.
도무지 무슨 회사인지 알 수 없는 곳은 제외하고. 그나마 내가 조금이라도 관심이 가는 곳을 어렵게 찾아낸 곳은 우선 서점.
책 좋아하고 외출의 대부분이 서점을 거치는 요즘의 내 생활을 반영하자면 그보다 더 내게 편안한 곳은 없겠다 싶었다.
하지만 웬걸. 대부분의 서점에선 20초반부터 29세까지의 신입을 뽑는다. 아예 나이를 딱 제한하고 시작하기 때문에 몇 번의 망설임 끝에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이력서를 보냈다.
나는 이런 경력이 있지만 책을 좋아하고 묵묵히 성실히 일하는 사람이로소이다..
연락이 없어 마감 후에 그 책방을 찾아가 보니 얼굴 하얗고 입술 빨간 귀여운 아가씨와 키 크고 잘생긴 총각이 업무 인수인계를 열심히 받고 있었다.
알았어, 알았다고. 나는 저들과 어울릴 수 없을 거라 이거지... 알았다고.
각종 자격증 및 교육을 담당하는 회사에 금융 관련 자격증을 담당하는 부서가 보이길래 거기에도 이력서를 냈다. 나는 이런저런 필요에 의해 회사를 다니며 꽤 여러 개의 금융자격증을 따 두었었고 회사에서 우대사항으로 표시해둔 자격증도 소지하고 있었다.
자격증 관련 책을 편집하기도 하고, 혹시 교육을 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인 것 같았으나 어찌 됐든 전혀 생소한 분야는 아닌 것 같으니 그곳도 다시 이력서를 다듬어 보내봤다.
뽑았는지 어쨌는지 탈락자에게 연락이 없는 게 당연한 관행인 듯 싶었다.
드디어 어느 금융기관에서 UAT 담당자를 뽑는다는 공고가 보여 정성껏 이력서를 보내보았으나 나중에 보니 그 회사는 내 이력서를 펼쳐보지조차 않았다.(이력서를 펼쳐봤는지를 알 수 있다)
연말이 되니 연말정산 담당자를 뽑는다는 공고가 보여 이 정도는 할 수 있겠구나 싶어 또 새로운 이력서를 보냈다. 경력상 나는 꼼꼼하고 내 연말정산은 수도 없이 해봤으며 그와 관련된 상품을 수도 없이 권유하며 팔아 본 경험이 있다. 개념은 확실하게 갖고 있다.
하지만 역시 그 대상자의 조건은 '휴학생/재학생 우대'라는 문구가 떡하니 첫 번째 줄에 자리 잡아 있었다. 휴학생, 재학생보다야 제가 훨씬 깔끔하고 노련하게 일 잘할걸요..하는 심정으로 보내보았으나 그 공고는 모집 기간이 계속 연장되고 있을 뿐 내게는 연락을 주지 않았다.
동네 근처 어느 가구 공방에서 가구 만드는 사람을 뽑는다는 공고가 뜬 걸 보고 눈이 번쩍 뜨인 적도 있었다. 오. 이것은. 드디어. 내게 기회가.
그러나 내가 즐기면서 종일 공방에서 사부작사부작 잡스러운 물건들을 만들어내는 것과 주문 제작 가구를 하루 9시간씩 만들어내야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으리란 생각에 며칠 망설이는 시간들이 있었다.
그래도 도전해보자. 하며 어느 날 아침 결심을 굳게 하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전화를 하려는 찰나. 내 왼쪽 팔꿈치가 욱신, 내 왼쪽 무릎이 휘청 꺾이는 통증이 느껴져 이건 또 뭔가. 하며 다시 곰곰이 고민 중에 있다. (전날 영하 10도 이하의 날씨에 돌아다니다 관절에 무리가 왔는지 묘한 통증이 있었다)
집에서 길만 건너면 위치해 있는 건물에 인바운드 전화상담 업무가 있다길래 열어봤더니 거기도 역시 나이 제한이 있었는데 이젠 나이 제한 따위는 무시하고 이력서를 넣어 버렸다.
역시나 연락은 없고 공고의 개시 기간만 연장되고 있다. 너 따위는 안 뽑아. 다시 다른 사람이 얼렁 지원해주길 바라. 뭐 이런 느낌이랄까.
회사의 구인을 관리하는 인력회사가 자회사로 있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그러니까 예를 들자면 카카오뱅크의 개발자분들을 뽑는 건 디케이테크인 이라는 자회사에서 주로 관리를 하며 공고를 올린다. 그 외 콜 상담직원은 여러 인력회사에서 나누어 공고를 올리고 이럴 경우 급여가 일정한 경우도 있고, 각 인력회사별로 약간씩 급여가 차이가 나기도 한다.(카카오의 경우는 동일했다)
카카오뱅크는 자체적으로 카카오뱅크인재채용이라는 곳에서 각 부서 직원을 직접 뽑기도 하는데 이 경우는 바로 정직원이 되는 케이스 인 것 같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꽤 여러 경로로 한 회사의 직원을 뽑는 중이라는 거고. 한 달 내내 구직 사이트를 뒤지며 돌아다니다 보니 저절로 알게 된 부분이기도 하다.
어느 기업은 기업의 이름을 숨기고 인력회사를 통해 구인공고를 올리기도 한다.
이런 경우 오히려 조건은 조금 나은 경우인데 도대체 무슨 회사인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알 수가 없어 난감하다. 이력서에 통과되면 나중에 알려주겠다는 식이다.
이것도 여기저기 열심히 돌아다니며 이 사이트, 저 사이트를 뒤지다 보니 나중엔 대충 무슨 회사에서 이 공고를 올렸는지 때려 맞출 수준이 되었다. 회사의 위치가 지도와 함께 나타나기도 하고, 같은 내용의 공고를 다른 사이트에선 좀 더 구체적으로 올리기도 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내년에 오픈되는 어느 전시장의 도슨트, 총무, 회계, 큐레이터 등을 여기저기서 따로 뽑고 있는 거다. 시간과 기간을 쪼개어 아르바이트 정도의 급여를 책정한 공고는 직접적으로 띄우기도 하고, 총무나 회계는 경력직을 뽑으며 급여가 괜찮은 대신 인력회사를 통해 조심스럽게 뽑는다.
큐레이터는 연봉을 알려주지 않는 대신 확실한 여러 조건이 부합된 사람이어야 하고 면접 후 연봉을 협상한다는 식이다.
목공방에서 같이 작업을 하던 친구 중에 꽤 유능한 작가 양반이 있어 큐레이터 지원해보라고 했더니 이미 알고 있는 눈치다. 큐레이터나 마케팅 쪽 말고 작품 의뢰 쪽으로 해서 본인에게도 연락이 왔었다고 한다.
조건이 꽤 괜찮은데 요즘 작품 만드니라고 미쳐 있는지 마켓 나가서 소품 판다고 바쁘단다.
나로서는 여러 번의 심호흡을 하며 맘을 내려놓고 최저시급 6470원의 일까지도 지원서를 내보았지만 내가 낸 곳에서 연락이 온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물론 대부분이 나이 제한이 있었고 나는 그 제한을 무시하고 보낸 적도 있었으나 어찌 됐든 나이 제한이 없는 곳에서도 내게는 관심이 없는 듯했다.
매일매일 취업사이트를 뒤지며 흥미로운 회사를 찾고 이력서를 내보는 게 마치 취미인 거처럼 한 달을 보내니 자존감이 바닥을 치고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며 화가 나는 날도 있었다.
혹시나 해서 낼까 말까 망설였던 어느 샌드위치 가게의 카운터에도 입술 빨간 예쁜 여학생이 서 있는 걸 보고 나는 이내 확신에 차 버렸다.
나이 제한 있는 곳은 내지를 말자.
저 이쁜 아가씨와 나는 비교의 대상이 되질 못한다. 화사한 저 어린 친구들의 자리가 저기이다.
원하는 연봉란에도 항상 회사 내규에 따르겠다고 그리 열심히 체크를 해왔지만.
그들은 어쩌면 내가 받았던 예전의 월급을 보고 고개를 휘휘 저으며 좀 그렇군.. 하며 이력서를 꺼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무리 최저시급 괜찮아요.. 해도. 연봉 많이 받았던 아줌마는 오로지 좀 부담스럽고 답답한 존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걸 이제는 솔직히 잘 알겠다. 알겠다고.
내게 별 재주가 없다는 점도 인정한다. 여기 찔끔 저기 찔끔 배워왔던 건 모두 취미 이상의 뭔가로 발전된 적이 없고. 경력대로 하자니 그건 내가 너무 무섭고. 그렇다고 뭔가 새로운 재주가 있는가.. 그건 전혀 없는 민낯의 나를 서서히 인정해 가고 있다.
내가 당장 생계가 위급한 상황이라면 훨씬 더 다양한 곳에 이력서를 냈을지 모르겠다.
식당에서 12시간 정도 일을 하면 다른 업종에 비해 비교적 높은 급여를 받을 수 있는 곳이 많았다. 평균적으로 250 정도의 급여를 받을 수도 있고, 새벽에 일을 하면 좀 더 높은 곳도 있었다.
나는 이미 대학생 때 식당에서 일해 본 경험이 있다. 봉고차 타고 저 멀리 공장에 내려가 스티커 붙이는 알바도 했었다. 그때는 그게 고생이라는 걸 모르고 돈 버는 게 마냥 신기하고 재밌었는데 나이가 드니 역시 좀 무서운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나날이 늙어가는 저 신랑의 위태로워 보이는 직장생활을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입장이라. 지금이 최고로 위급한 상황인가. 아님 좀 더 개길 수 있는 상황인 건가 계속 고민을 하게 된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혹시라도 신랑이 어느 날 "나 짤렸어.." 하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들어오면 내가 당장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이 가정을 먹고살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참 난감하고 심란하다.
내가 이렇게나 솔직히 나의 지질한 일상을 밝히는 이유는 글쎄.. 나만 그런 건 아니겠죠. 뭐. 하며 위로를 바라는 것일 수도 있고.
최근에 <찌질한 인간 김경희>를 읽은 탓인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나와 달리. 퇴사를 하고. 책도 두 권이나 냈고. 서점에도 취직했고. 강연도 하며. 여러모로 나보다 훨씬 성공한 퇴사자의 길을 걷고 있는데도 여기저기 찌질한 인간의 심리를 너무 솔직히 얘기해줘서 위로를 받았다.
부디 나의 찌질한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위로가 되길.
또 내게도 위로의 말을 나눠주시길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