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썹,운전,인강,독립서점.
늘어지는 일상 중 어느 하루. 정신이 번쩍 드는 날이 있다.
이렇게 살다 인생을 마무리하게 되는 날이 금방 훅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날.
내 무기력한 생활을 보고 내 딸마저 저리 무기력해진 건 아닌지. 무기력한 마누라가 답답해서 신랑의 짜증이 느는 건 아닌지. 괜한 죄책감에 휩싸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 이런 시절엔 도대체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는 게 또 함정이다.
뭘 시작하려고 해봐도 .. 그게 또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만들어놓은 책의 표지를 살짝 새로 제작해서 좀 더 근사하게 만들어봐야지 했다가도. 서점에 가면 이미 책이 너무나 많고.
뭘 배우고자 해도 그걸 또 배워서 뭘 한단 말인가 하는.
맘을 다잡고 다시 '도장깨기' 모드로 어렵게 들어섰다.
어짜피 살면서 해버려야 할 것 같은 숙제 같은 거. 근데 겁나서 못하고 있는 거. 귀찮아서 미루는 거 그런 것들 말이다.
우선 눈썹만들기.
동네엄마들 모이는 커뮤니티 카페에 친한 친구가 근처에서 눈썹이나 아이라인 문신을 한다며 안내글이 올라왔다. 순식간에 신청 댓글이 100개를 넘어가는 걸 지켜보다 나도 한번 해볼까 하는 뜬금없는 결심.
평소 화장하길 귀찮아하고 그 중에 제일은 눈썹그리기라. 사람이 눈썹만 또렷해도 뭔가 사람 얼굴 같을 텐데 가뜩이나 선명하지 못한 이목구비에 눈썹마저 희미해서 맨얼굴이 영 안쓰럽긴 했다.
나는 정말 미용에 관심이 없어요~하며 젊은 척을 할 나이도 아니고 해서 은근슬쩍 댓글에 신청을 해봤더니. 25% 할인가격에서 또 이만 원을 빼준다길래 순순히 전화번호를 넘겼다.
다음날 바로 예약을 잡고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찾아간 그곳은 100% 예약으로만 손님을 받는 작은 1인용 숍이었다. 워낙에 마취가 잘 안되는 몸뚱이 인데다가 단 한 번도 얼굴에 칼을 대본적이 없는 나는 바들바들 떨며 시술용 침대에 누웠고. 선생님께 여러 번 당부를 했다.
저는 원래 마취가 잘 안되어서요. 수면내시경도 3년 연속 실패했고(수면상태에서 거친 반항을 해서 도저히 진행을 할 수가 없었다고) 치과에 가서 마취를 해도 막상 선생님이 오셔서 팍 찌르면 "악" 하고 소리를 질러댔다고 마취약을 아끼지 말아달라고 사정을 했다.
일반인보다 좀 더 긴 시간 마취를 했으나 눈썹을 근육에 맞게 그리고 맞추고 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려 불안하긴 했었다.
막상 시술이 시작됐을 때 '샤샤샥샤샤샥'하며 날카롭고 조그마한 칼이 살을 가르는 느낌이 너무 생생하고 따끔거려 온몸이 긴장되어 빳빳해지고 발가락 끝에 힘이 가해졌다. 움찔거리며 흡흡 아픔을 참는 내가 선생님도 부담스러우셨는지 시술이 끝났을 때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 있었다.
한쪽이 살짝 흐릿하다며 좀 더 누워보시라는 선생님 말에 자연스러운 게 좋으니 괜찮다며 도망치듯 그곳을 뛰어나왔다.
집에 돌아오는 버스 밖 풍경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고 그제서야 긴장이 좀 풀리며 감기 기운마저 돌았다.
딸아이는 신기하다며 연신 내 눈썹을 쳐다보며 킥킥 거렸지만 나름 없던 눈썹이 생기니 뿌듯했다. 신랑은 늦게 들어와 제대로 보질 못했는데 다음날 아침 딸아이가 신이 나서 엄마 눈썹이 생겼어!라고 얘기해주는 바람에 그제서야 아는 척을 했다.
아무 예고도 없이 얼굴에 칼을 대고 들어온 마누라를 바라보는 신랑은 좀 당황한 기색이었는데 여지없이 킥킥거리며 좀 지나면 자연스러워지는 거냐며 연거푸 여러 번 확인을 했다.
나도 처음 해본 거라 뭐 알 도리가 없었지만 아마도 그럴 거라 안심을 시켰다.
난생처음 얼굴에 칼 댄 거 아니냐며 무슨 생각으로 갑자기 그걸 하고 왔냐길래. 이걸 하면 절세미인이 될까 싶어 용기를 내봤다고 답했다. 그로부터 일주일간 신랑은 집에 돌아올 때마다 절세미인 어딨냐며 방구석을 돌아다니며 찾았는데 영 찾아내지는 못하는 눈치다.
자. 다음의 도장깨기는 뭐로 할까.
운전연수.
지난번 면허를 따고 바로 처박힌 어색한 증명사진의 그 면허증은 영영 쓸모가 없을 것만 같았다. 내가 차를 끌고 어딜 갈 곳이 있어야 부지런히 연수 받을 생각을 할 텐데 전철 타고 버스 타고 온 동네 돌아다니며 뚜벅이로 지내는 입장이라 달리 불편할 것도 없고 필요할 일도 없다.
그러나 혹시. 저 망나니 딸이 어느 날 정신을 번쩍 차려 유명한 어느 학원에 가겠다고 선언을 하는 날이 온다면 나는 저 아이를 태우고 '라이드'를 하는 열렬 엄마가 되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만약 아이가 그리 원하는 학원에-진짜 유명한 학원은 버스가 없다-내가 단지 뚜벅이라는 이유로 그 소원을 들어주지 못한다면 얼마나 한심한 상황이 될 것이냔 말이다.
아님 혹시라도 부모님 아프셔서 모시고 병원에 다녀야 될 상황이 생길 수도 있을 텐데-슬슬 그런 나이가 되었습니다-단지 운전을 못한다는 이유로 제대로 모시고 다니지 못한다면 그것도 참 속상한 일이 될 것 같다.
동네 유명하다는 운전연수 선생님 전화번호는 잘 메모해두었었는데 이 분이 어찌나 유머러스하고 친절하게 운전을 가르쳐주시는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단다.
면허 딸 때 몰았던 차는 그리 크지 않았고 좀 구식 차라 메뉴가 딱 단순했는데 막상 면허를 딴 뒤 우리 차에 올라탔더니 있어야 할 곳에 그 버튼이 안 보인다던가 쓸데없어 보이는 버튼, 기능들이 너무 많아서 훅 짜증이 났다. 게다가 그 차보다 크다. 자리에 앉으면 쑥 내려가는 기분이랄까.
그래봤자 평균 크기의 자동차인데 내겐 탱크처럼 느껴져 더 용기가 나질 않았다.
신랑은 100만 원짜리 차를 사주겠다며 기다리라고 했지만-본인의 명의로 된 유일한 자산이므로 매우 아낀다-어차피 운전을 해야 한다면 이 차를 몰아야 하니 며칠 더 마음을 가다듬어 용기를 내봐야겠다.
다음의 도장깨기는 인강.
그러니까 20년간 거의 해본 적 없던 영어공부를 다시 해보겠다는 건데 이건 순전히 저 망나니 때문이다. 학원 다 끊어버리고 집에서 놀아재끼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기가 힘들어 인강이라도 하나 듣자, 하나 듣자 얘기를 한 게 거진 한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영 반응이 없다.
이게 좋다더라, 저게 좋다더라 여기저기 자문을 구해 여러 곳의 인강을 소개해봤자 아이는 액괴 만드는 게 100배는 재밌다는 얼굴이다.
자. 그렇다면 같이 해보자.
가물가물한 영어를 내가 이 나이에 열심히 한다면. 나름 여행을 가서 한마디라도 좀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럼 나 좀 멋지게 느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고.
저 아이를 저렇게 마냥 방치시켜서는 도저히 답이 없겠다 싶어서다. 불안해하다 내가 먼저 숨 넘어 가게 생겼으니 아이를 앉혀놓고 하루 한 시간씩이라도 영어 인강을 들어보자 하며 맘을 먹었다.
사실 많은 엄마들이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 영어공부를 한다는 걸 듣기는 했으나. 솔직히 아니 뭐 그렇게까지 하나 생각했던 내 지난 모습을 반성한다. 그 엄마들도 속이 터져서 시작했을 것이다. 나처럼. 아님 말고.
마지막 도장깨기는 독립서점 둘러보기.
언니 따라 한두 군데 가 보던 독립서점에 부쩍 관심이 생겼다. 처음에야 난생처음 보는 풍경이 낯설기도 하고 팔고 있는 책도 생소해서 선뜻 손이 가질 않았지만 가면 갈수록 그곳이 편안해지고 그곳의 책들도 좋아하게 되었다. 일반 대형서점에서 팔고 있지 않은 다양한 주제의 특이한 책들이 많이 보인다.
나와 비슷한 취향의 사람들이 만들었을 것 같은 독립출판물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평소 개인적으로 가졌던 엉뚱한 호기심, 궁금점 들을 많이 해소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꽤 여러 곳에 독립서점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한군데 한군데 가보다 보면 각각 분위기가 다르고 진열되어 있는 책들도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상당히 재밌다. 술을 팔거나 커피를 같이 파는 곳도 있고, 꽤 괜찮은 강연들을 준비해주시는 책방도 많다.
매일매일 열심히 찾아다닌 건 아니지만. 어느 무료한 날 끙차 하고 일어나 씻고 나설 때, 자 오늘은 또 어디를 찾아가 볼까 하며 나서는 맘이 설렌다.
4월이 다 가기 전에 뭐라도 배워야지 싶어 페인트 수업을 신청해뒀다. 일주일에 한 번씩 3-4번의 수업을 3시간씩 듣는 과정인데 처음엔 소품에 칠하고, 다음엔 벽에 칠하고, 마지막엔 문에 칠하는 걸 가르쳐준다고 한다.
집에서 쿨쿨 잠만 자느니 무거운 몸을 이끌고 억지로라도 나가야겠단 생각에 신청해둔 건데 덜컥 합격이 됐다. 페인트칠을 해 본 적이 있는데 이게 생각보다 매끈하게 나오질 않아서 한 번은 제대로 배워둬야겠군 하는 생각이 있었더랬다.
글쎄. 내가 또 혹시 말년에 제주도 어느 마당 넓은 집에서 글 쓰고 나무 주무르며 살쯤에 집수리 정도는 스스로 해야 하지 않겠나 하는 다짐 같은 걸로 추진해본 일이다.
요즘 이효리 민박을 보며 아 저런 집에 살면 참 좋겠다 했더니 신랑은 냉큼 본인은 싫다고 했다. 하루 이틀 놀러 가는 거면 몰라도 저렇게 살면 돈도 많이 들고 얼마나 따분하겠냐며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었다.
아. 자네랑 나는 말년에 따로 살게 되겠구려. 영감. 했더니 묵묵히 다림질을 한다.
매우 바쁘게 뭔가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 같으나 대체로 매우 게으른 생활을 하고 있다.
새벽까지 깨어 있다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났다가 다시 잠깐 자고. 정오가 다 되어서 하루를 시작하는 나는 하루가 매우 빨리 간다. 금방 밤이 찾아와 당황하곤 하는데. 밤이 되면 또 잠이 안 오고 말똥말똥 해지니 하루는 짧은데 밤이 길다.
어차피 내 맘대로 살아도 별 상관이 없다.
신랑은 매일 늦고. 아이는 학교에 잘 다니고 있으며. 나는 지금 일이 없고. 나름 살림은 깔끔하게 해 놓고 있다.
다만 무기력한 생활은 좀 벗어나야겠다 싶어 스스로 다짐하는 글을 써 본다.
자꾸만 딸아이의 무기력감이 나의 무기력감에서 전염된 게 아닐까 반성이 되어서다.
부디 내일부터는 부지런한 삶을 살아야지.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