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의 달콤함
나는 경력단절 여성이다.
15년의 직장생활을 명예퇴직으로 관둔 지 1년 반이 지났다.
명예퇴직자로 받아들여져 퇴직이 결정되었다는 메일을 받았을 때는 대학에 붙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보다도 가슴이 뛰고 기뻤다. 그 메일을 보고 또 봤었고 지금도 저장해 두고 있다. 명예퇴직이라도 가끔은 퇴직을 거절하는 경우도 있다는 불길한 소문이 있었고, 보름 가까이 답변이 없어 불안해하던 찰나였기 때문이다.
이미 퇴직을 결정하고 맘이 떠난 상태에서 거절 메일을 받는 사람은 맘이 떠난 직장을 견디지 못하고 얼마 안가 얼마간의 일반퇴직금만 챙겨 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백수가 된 나는 에어컨 빵빵하던 사무실이 아닌 헉헉거리던 집안에서 뒹굴며 너무 행복했다. 땀을 삐질거리며 청소를 하고, 느지막이 내 맘대로의 시간에 허기를 느껴 찾아 먹는 끼니가 행복했다.
빨래를 널어놓고 바람이라도 살짝 부는 날이면 흔들거리는 빨래 곁에 앉아 하늘 보며 또 좋았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집에서 반겨주는 엄마를 행복해하며 껴안아줬고, 처음으로 영어학원 상담도 하며 오랜 숙제였던 영어학원에도 보내게 되었다. 첫 상담을 받고 당황했던 내 모습이 생각나는데,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되도록 제대로 된 학원에 다녀본 적이 없던 터라 나 역시 그런 상황이 처음이어서 그랬다.
다 핑계였겠지만. 직장을 다닐 때는 스트레스와 피로 때문에 아이 교육마저도 뒷전이었다.
신경을 써야 하는데, 써야 하는데 생각은 하면서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일과 실적 압박, 사람에 대한 지긋지긋함은 집에 들어오자마자 나를 뻗어버리게 만들었다.
퇴직 후 아이를 온전히 받아주고, 숙제를 살펴주고, 밥을 챙겨주게 되면서도 그 일들이 맘에 걸려 자책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한 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출퇴근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또다시 아이를 방목하고 말았다!
자책할 일이기도 했지만, 내 체력이 거기까지였던 것이다.
다시 일을 하게 되니 명백해졌다. 스트레스가 거의 없던 아르바이트였지만, 아침 8시 집을 나가 저녁 7시에 돌아오는 생활을 하게 되자 다시 내 체력은 떨어져 버렸던 것이다. 퇴근 후 아이 밥을 겨우 챙겨주고 침대에 뻗어 1-2시간 자고 일어나야 설거지라도 하고, 청소기를 돌리며 빨래를 돌릴 체력이 돌아왔다.
운동을 지극히 싫어하고 게으르며 취미조차도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들이라 체력이 형편없었다.
아이가 학교를 가면 돌아다녔다.
그간 목말랐던 책. 교보에 가서 끌리는 책을 들고 자리를 잡아 몇 시간씩 읽다 돌아왔다. 한두 권의 책을 거뜬히 읽고 아이가 돌아오기 전에 집에 돌아오는 길이 행복했다. 비싼 줄도 모르고 출근길에 정신 차리러 매일 먹던 커피도 퇴직 후엔 한잔 한잔이 맛있고 행복하고 달콤했다. 평일의 새삼스러운 한가함과 낮의 햇볕과 계절의 변화가 너무 상쾌했다.
삼시 세 끼를 원하지 않는 시간에 배고프지도 않은 상태로 억지로 먹어야만 했던 시절에 비해 내가 배고플 때 먹고 싶은 음식을 원하는 만큼씩만 먹을 수 있다는 것도 행복이었다. 허기가 느껴질 때 먹는 아점, 몸이 쭉쭉 빨아 당길 때 먹을 수 있는 커피, 늦은 저녁에라도 배가 고프면 혼자 챙겨 먹는 끼니.
일과는 단순했다. 거의 매일 청소를 하고, 빨래를 돌리며 끼니를 먹고, 아이를 챙기며 남는 시간에 책을 읽거나 책을 읽거나 책을 읽는다.
가끔 예전 사람들을 만나면 퇴직 후 느껴지는 비슷비슷한 상황과 감정들을 쏟아냈다. 어설프게나마 얻은 정보들을 나누고, 누군가는 뭘 하고 있구나 누군가는 다시 취직을 했구나 소식도 들었다.
오랜 숙제였던 동네 엄마들 친해지기도 시도해보았는데 몇몇 좋은 분들은 있었지만, 끝내 깊이 사귀지는 못했다.
뭔가 어색했고, 동화되지 못했으며, 내가 특이한 사람이라고들 하는 얘기가 아무렇지 않을 수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특이한 여자는 특이하다는 점 때문에 엄마들과 친해지기가 좀 힘들었고 그네들도 내가 좀 껄끄로웠던 것 같다.
어릴 적부터 특이하단 말을 많이 들었지만 그게 심각한 적은 없었다. 나는 그저 내가 좋아하고 옳다는 걸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라 그게 내게는 너무 당연한 '나'여서 그저 좋은 대로 살면 그만이었는데, 동네 엄마들 사이 특이한 여자는 끊임없이 자신을 설명해야 했다. 대부분 좋아하는 걸 나만 관심 없어하는구나 싶으면 적당히 연기도 하며 끼어들어 있어야 했는데 연기는 또 재주가 없어 점점 힘들어지고 맥 빠졌다.
퇴직 후 전업주부가 되었지만, 브런치를 즐기며 우르르 몰려다니는 엄마들 속에 나를 들여놓지를 못했다.
브런치를 먹으러 간 카페에서도, 요즘 주부들은 이렇구나.. 하며 브런치를 먹으러 온 나는 요즘 주부가 아닌 듯 자꾸 딴소리를 했다.
끊임없이 뭔가를 찾았다. 뭔가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이 수많은 건물들 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가는지 궁금했다.
다들 어렵다는데, 뭘 하며 먹고사는 것일까. 무슨 일들이 있는 것일까. 어떤 일들을 어떤 경로로 하게 되었을까.
받던 연봉 반만 받아도 좋으니 스트레스 덜하고 실적 부담 없는 편안한 사무직이 되어 보고 싶었다.
사람을 만나는 일도 NO.
그저 단순해도 좋으니 나는 무척 성실히 일하겠으니 연봉도 많이 바라지 않을 것이니 뭐라도 다른 일을 해보자.
실은 전혀 몰랐다. 퇴직 후 회사에서 거의 의무적으로 연결시켜주었던 전직지원회사를 통해 그나마 희미하게 다른 세상을 찾아볼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을 배웠다. 강의도 많이 개설해주고, 교육도 시켜주고, 상담도 해주었다.
결정적인 재취업의 기회를 주진 않았지만, 그나마 세상에 처음 나와 혼자 찾아보는 것보다야 훨씬 안심이 되는 방법이었다.
재취업을 위해 카페에 가입을 해서 정보를 얻고, 내게 배정된 상담자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기도 했다. 전혀 감이 오지 않아 창피한 질문들도 했던 것 같아 낯이 뜨겁다.
아이를 케어하면서 다시 종일 근무를 한다는 것이 아무래도 무리였다. 시간선택제 일을 찾기 시작했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방책인지라 각 금융권이나 대기업, 공무원 쪽에 시간선택제를 꾸준히 뽑고 있긴 했다.
처음으로 원서를 냈을 때는 두 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인터넷상에 어렵게 편집한 내 사진을 올리는 방법을 몰라 쩔쩔매다가 그만 시간을 넘기고 말았다. 그래도 내보자 싶어 접수를 시켜봤는데, 아마 접수는 안됐었을 꺼라 생각한다.
한심했다.
15년 전 취업 때는 인터넷상으로 이력서를 쓰지 않았다.
사실 이력서 사진도 제대로 찍어 둔 게 없어 갖고 있던 사진을 대충 편집한 거라 말도 안 되는 사진이었다.
15년간 직장 안에서 이런저런 일을 해왔었지만, 그건 다시 그 직종으로 갈 때나 조금 끄적여 볼 수 있는 것들이었다.
컴퓨터를 꾸준히 써왔으니 기본 한글이나 엑셀은 조금 다루지만 자격증은 없다. 그렇다면 컴퓨터 능력도 하 수준이다.
금융 관련 자격증을 9개나 갖고 있었지만, 그 역시 다시 금융권에 갈 때나 적을 수 있다.
사범대를 나왔으나 내 전공은 경력을 받쳐주지 못했다.
자기소개서도 처음이었다. 쓰면 쓸수록 오버하고 있는 자기소개서는 신랑조차 읽기를 거부해버렸다.
하던 일은 하기 싫고, 전공은 오랜 옛날 일이며, 나는 정확히 무얼 하고 싶은지 모르겠고, 회사들이 바라는 인재가 어떤 건지 파악도 되질 않으며 컴퓨터 자격증 하나 없고 면허조차 없는 나는 무능력자였다.
받던 연봉의 반은커녕, 반의 반을 주겠다는 회사도 찾기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