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엇을 잘하는가
2000년 초 입사하여 처음 받았던 월급이 대략 90만 원 정도였다. 보너스 달이 있어 들쑥날쑥 하긴 했지만 평달 월급은 그 정도였고 차차 급여가 올라가는 듯했지만 크게 와 닿지는 않았었다. 결혼을 하고 생활인이 되니 월급날 들어오는 돈은 2-3일 내로 자동이체로 모두 빠져나갔고 추가 급여가 들어오는 달에는 남는 돈을 모아 저축을 했다.
15년의 시간이 흐르고 퇴직 후 처음으로 국세청에 직접 세금신고를 하며 마지막 연도에 받은 월급을 계산해서 유추해보니 내 마지막 연봉은 8000만 원이 넘었다. 평달 300여만 원이 들어오고 보너스 달이 따로 있긴 했지만 내 연봉이 이렇게나 올라 있는 줄은 몰랐다.
아이를 돌봐주시던 아주머니께 150여만 원을 자동이체해드리고, 시댁에 또 생활비를 꽤 부담하고 있어서 내 월급은 들어오자마자 자동이체로 흩어져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신랑 급여와 내 급여를 합친 금액에서 카드값, 아주머니 월급, 시댁 생활비, 몇 개의 적금이 빠져나가고 나면 평달엔 거의 남는 게 없었다.
오랜 시간 당연히 받아왔던 월급이 새삼 많은 돈이었구나 실감이 났다.
퇴직 후 아이를 직접 돌보니 아주머니 급여 명목은 없어졌지만, 시댁 생활비와 카드값은 고스란히 변함이 없었다.
계절마다 싫든 좋든 장만해야 하는 정장 값 정도는 세이브가 됐지만, 그 밖에 특별히 소비하던 부분이 없어서 퇴직 후 크게 줄어드는 부분도 없었다. 아이는 오히려 두세 개의 학원과 방과 후 수업이 추가되었고, 자동이체로 빠지던 적금도 아직 만기가 남아 있어 꾸준히 납입해야 하는 입장이었다.
제때 잘 나왔다 후회는 없었지만, 아직도 급여일이 되면 아.. 월급 받는 이들은 좋겠구나 부러워졌다.
뭔가를 해야 하지 않을까 끊임없이 고민했다.
배우고 싶었던 여러 가지를 시도했다. 어디에 길이 있는지, 내가 뭘 좋아하는지, 뭘 할 수 있는지 알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했다.
전통자수를 배웠다. 적성에 맞고 잘하기도 해서 선생님께 길을 물어보니 그게 밥벌이로는 힘들단다. 오히려 내게 공방을 차리면 오겠다며 열심히 해보라고는 했지만, 재미와 돈은 별개로 보였다.
조각보를 이어 커다란 발을 하나 손바느질하려면 한 달이 걸린다. 한 달 꼬박 들여 정성껏 만들어도 몇십만 원 받기가 힘들다.
보기에 이쁘고 정성이 들어갔어도 그 물건에 그만한 가치를 인정받기가 어려운 것이다.
인사동에 걸려있던 조각보와 전통자수제품이 헐값에 팔린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한복집에 제자로 들어가 볼까 생각도 들어 여러 곳을 찾아봤지만 딱히 마땅한 곳이 보이질 않았고, 실망하다 맘이 희미해졌다.
단청, 요리, 뜨개질, 요가도 배웠는데 배울 때는 반짝반짝 빛이 나다가 이내 제자리..
회사에서 연결해주었던 전직지원회사를 통해 강남의 어느 구청에서 300시간짜리 '시니어 금융인 양성과정'이 있다고 했다. 호기심에 들여다보니 300시간 수업을 이수하면 산업체 강사 등의 혜택을 준다고 했다. 나라에서 진행하는 각종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도 있다길래 신청했더니 운 좋게 연락이 와서 수업을 들으러 갔다.
하지만 수업 이틀 만에 또래 여자분 2명과 같이 탈출하고 말았다. 말 그대로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교육이라 참고 또 참으며 참여해보려 했으나 도저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수업을 끝까지 들으셨던 나이 지긋하신 남자 참여자분께 여쭤보니 300시간의 수업 뒤에 재취업의 길로 가신 분은 없는 듯했다.
그 구청에서도 그저 재취업을 위해 정부에서 이래라저래라 하니 뭔가 진행은 해야겠고, 성과도 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실질적인 도움이 되진 못한 듯싶다.
국가에서 지원하는 또 다른 무료교육을 찾던 중에 지역신문을 보게 되었고, 가까운 곳에서 진행되는 교육에 대한 정보를 알게 되었다. 인터넷을 그리 뒤져도 잘 나오지 않던 게 지역신문 귀퉁이에 있었던 거다.
나라에서 하는 교육은 각 구청별로 달리 진행되고, 경기도권보다 서울이 훨씬 다양하다. 그중에서도 잘 사는 동네(강남구, 서초구, 송파구 등)가 훨씬 다양하고 인터넷상에는 일일이 잘 띄어주질 않는다.
정성 들여 이력서와 신청서, 자기소개서에 사진까지 붙여 직접 제출하니 며칠 뒤에 합격(?!) 문자가 왔다.
이번에는 500여만 원 상당의 교육인데 특별히 공짜로 해준단다. '업싸이클링'이라고 다소 생소한 분야이긴 한데, 버려질 물건들에 색을 칠하거나 이미지를 덧붙여 재탄생시키는 공예의 일종이었다. 외국에선 업싸이클링 제품이 고가로 팔린다고 하나 한국에서는 아직 초보단계라 가능성이 많단다.
시간마다 지원되는 접시며 컵, 물감, 그 밖에 각종 재료들이 꽤 나가 보이긴 했다.
한 여름 땀을 뻘뻘거리면서도 수업을 거의 빼먹지 않고 갈 정도로 재미도 있었다. 잘 한다는 칭찬도 들었다.
공짜 교육인 대신 구청에서 진행하는 강연에 강제 동원되기도 하고, 문화축제에 도우미로도 이틀 정도 가 있어야 했다. 중간중간 보고서도 내야 하고, 3일 이상 빠지면 보증금 20만 원도 뺏아간다고 했다. 뭐 그 정도야 어차피 백수이니 기꺼이~
수업이 끝나고 강사님의 끈질긴(?) 권유로 문화센터 행사에 동원됐었는데 이게 정말 맥 빠지는 일이었다.
3-4시간을 그저 보조강사로 알차게 부려먹고, 최저시급 알바 비용은커녕 커피 한잔도 없이, 수고했다는 인사도 변변찮아 수업을 끝내고 오는 길에 기가 찼다. 구청에다가는 제자들이 뭐라도 취직을 한 것처럼 보고서를 내야 하니 동원했던 모양인데 내가 이 나이에 열정 페이로 일을 하게 될 줄이야..
그 전에도 전시를 해야 한다며 끈질기게 학생들을 설득했었는데, 그것조차 각자 자비로 강사님께 재료를 구입해서 강사님의 이름으로 전시를 하기를 바라셔서 학생들이 다 눈치를 보며 피하기도 했었다.
허탈해하며 있는데 또 한 번 행사 제의를 하시길래 다른 일을 하게 됐다며 정중히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