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서 내기
이력서를 몇 군데 넣어보기도 했다.
우선 시간선택제를 기준으로 반나절 일하는 곳을 대상으로 탐색을 했고, 호기심에 지원한 금융권에는 면접 보라고 연락도 왔다.
서류가 통과된 게 스스로 기특하고 신이 났는데 이걸 붙어도 과연 다시 다닐 수 있을까 맘이 아득해졌다.
하던 거는 안 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날 붙여줬으니 얼마나 고맙나 싶어 정장을 깔끔히 입고 면접을 봤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떨어졌다. 면접을 잘 봤다고 자만하고 있다가 막상 불합격 통지를 받으니 기분이 언챦았지만, 이내 인정하고 말았다.
면접 질문에 대비하여 조목조목 준비를 해갔었지만, 준비되지 않은 질문에는 허를 찔리듯 진심이 슬금슬금 나왔던 거다.
그 진심은.. 여기를 내가 다시 다닐 수 있을까.. 다니게 될까.. 파이팅이 되려나.. 망설임.
공무원 생활이 적성에 맞을 것 같아 준비도 없이 무작정 원서접수를 하고 시험을 치르러 가기도 했다.
시험공부를 전혀 안 해서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시험 당일 아침까지도 고민을 하다 이내 맘을 고쳐먹고 신랑 차를 타고 시험시간 직전에 겨우 도착해 시험장에 들어갔었다.
교실은 겨우 반 정도 차 있는 정도였고, 대부분이 20대의 젊은 사람들이었다.
긴장의 분위기가 돌았지만, 나는 편안한 마음으로 시험지라도 한번 봐보자.. 국어 정도는 풀어봐야지.. 영어는 많이 어려울까..
결론부터 또 말하자면 시험을 안 보러 갔으면 아주 큰일 날 뻔했다.
행여 미련이라도 남았으면 어쩔 뻔했는가 말이다(!).
도저히 이 머리로 다시 해볼 만한 공부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쌩쌩한 20대 젊은이들과 겨뤄 영어를 이겨낼 자신도 없고 공부 분량도 어마어마해 보였다. 영어 지문들은 아예 그 시간 안에 다 읽어보기도 벅찼고 평소 잘 쓰이지도 않는 단어들을 묻는 질문도 많아 황당했다.
우리나라말이 국어인데 국어시험조차 알고 푼 문제가 거의 없었다.
시간을 다 채우고 답안지를 내고 시험지를 들고 나왔다.
시간선택제 공무원에도 2번 접수를 했다. 시험 봐서 들어가기는 틀렸다 싶어 경력직 공무원을 뽑는 공고에 보냈다.
그나마 필수 자격증이 필요 없는 곳으로 골라 내보았는데 아무 반응이 없었다.
시간선택제를 택하는 수많은 여성들의 경력이 더 어마어마하다는 글을 읽고 그중에 또 나는 별 볼 일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보험사나 자산관리 분야에서 가끔 연락이 오거나 내 이력서를 들춰보는 일은 있었으나 그 일은 다시 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내 최종 경력은 은행의 책임자, PB업무였고 성실히 해서 매번 BEST TOP10 리스트에 이름을 빠지지 않고 올리는 수준이었지만 그 스트레스가 만만찮았다. 세일즈 일은 실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고, 내가 그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지점 전체가 괴로웠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꼬박꼬박 할당량을 까닥거리며 채울 뿐이었지 성취감이나 보람은 없었다.
직장을 관두고도 지수나 주가가 떨어지면 권유했던 상품들이 생각나 기분이 우울했고, 어느 날엔가는 하혈까지 있었다.
직장을 다니는 중에는 스트레스로 머리에 땜빵이 생기고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다. 올라가고 떨어지는 주가와 지수 때문에 끊임없이 인터넷을 뒤지고 천국과 지옥을 오갔었다.
오로지 실적만을 위해 권유를 했던 건 절대 아니었다.
은행에서도 끊임없이 교육을 시키고 나 스스로도 찾아가며 공부를 했다. 예민하게 반응해야 하는 주가 앞에 정확한 정답은 없었지만, 최소한 내 양심에 어긋나는 권유는 없었고, 권유드리기 전에 그 상품은 내가 먼저 가입했다. 추이를 지켜보며 정확한 판단을 하기 위함이었는데 고객이 손해를 보면 나 역시 똑같은 손해를 입었다.
은행에 다니며 공부하고 따 둔 자격증이 9개였다. 모두 PB를 하기 위해 딸 수밖에 없는 자격증이었고 업무에 도움은 됐다.
내 이력서를 등록한 회사에서 두 번 정도 연락을 받아 한 달짜리 아르바이트는 두 번 갔었다.
대출서류 심사를 하는 일이라 사람 만나는 일이 없다는 얘기에 가서 한 달을 일하고 하루 125000원을 받았다.
또 한 군데도 대출서류심사라 하여 하루 85000원을 받고 갔었는데 10일 만에 관두고 나왔다. 처음 얘기와 달리 콜을 같이 진행시켰고 기존에 이미 일을 하고 있었던 젊은 여직원들의 텃새에 맘을 일찍 접어버리고 말았다. 20대 그네들은 40대인 내가 불편했고, 나 역시 그들의 언어가 신기했다. 서로 불편해하며 일하느니 내가 어서 나가주고 젊은 사람을 뽑는 게 좋겠구나 저절로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루 125000원을 준다고 제의했을 때 솔직히 그리 흡족하지 않았다. 그래도 한 달이니까 싶어 열심히 했고 스트레스도 없었는데, 두 번째 85000원짜리 일을 했을 때는, 일당 125000원짜리 일이 흔치 않으며, 그 일이 운이 좋아 잡힌 거였구나 깨달았다.
40대 아줌마에게 한 달 250짜리 사무직은 없었다.
160만 원짜리 일은 많이 있었는데 그 일은 아무 경력이 필요 없는 일들이었고, 차마 선택하지 못한 채 포기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