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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수 Oct 09. 2018

<골든아워 1,2>중증외상센터의 기록

    이국종 교수님. 존경합니다.



"중증외상은 국민이 사망하는 3대 원인 중 하나로, 전체 사망의 10 퍼센트에 육박합니다. 특히 40대 이전의 젊은 층에서는 최고로 많은 사망 원인입니다. 노동자, 농민과 같은 블루칼라 계급이 집중적으로 타격을 입습니다. 병원을 경영하는 입장으로 보면 수익은커녕 적자의 온상이라 기피합니다. 많은 대학병원들이 암이나 심장혈관 질환처럼 만성병에 집중하는 상황에서 중증외상 환자 치료를 담당할 시설은 거의 없고 적절한 의료진 양성도 힘듭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려고 국가적 중증 외상 의료 시스템을 기존의 일반적인 병원이나 응급실 운영 체계와는 분리해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있습니다만, 한국에서는 여러 가지 이유로 논의가 더는 진행되지 않습니다."(골든아워 1,  P122)


 이국종 교수는 중증외상 분야 외과 전문의이자, 중증외상 치료 권위자이다. 이국종 교수가 이끄는 외상외과 의료팀은 국내 최고 수준으로 꼽힌다. 2011년 그의 의료팀이 아덴만 여명 작전으로 부상당한 석해균 선장을 살려내면서 중증외상 치료의 특수성과 중요성이 세상에 알려졌으며 이는 2012년 전국 거점 지역에 권역외상센터를 설립하고 국가가 행적적, 재정적으로 지원하도록 하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통과되는 계기가 되었었다.


이국종 교수는 열악한 한국 의료계 현실에 굴하지 않고, 팀원들과 현장의 소방대원들의 피와 땀들의 소중한 기록들을 남기기 위해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세월이 지나 또 다른 정신 나간 의사가 이 분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 시스템을 다시 만들어보고자 마음먹는다면 이 기록은 분명 큰 도움이 될 꺼라 기대하며 그 기록의 일환으로 이 책을 세상에 내보인다며 서문에 적고 있다.


 실은. 이 책의 1권, 첫 번째 장은 '정경원에게'라며 시작된다. 

 정경원 교수는 부산대학교 병원에서 외과 수련을 마치고 아주대학교 병원 외상센터에 합류한 사람이다. 그는 이국종 교수의 수술법과 환자 진료법을 배우며 혹독한 수련과정을 거쳤으며 수많은 환자들을 살려내며 이국종 교수와 함께 중증외상센터를 지켜오고 있는 그의 오른팔이다. 부디 그가 힘을 내어 이국종 교수의 바람대로 후에 이 일을 잘 이끌어 나가길 기대한다.




 이국종 교수의 왼쪽 눈은 거의 실명 상태이며 오른쪽 어깨는 헬기를 타고 이동하며 활동하던 중에 부서져 으스러졌었다. 왼쪽 다리도 성하지 못해 수술을 받았고 그 스스로 외과의사로서의 시간이 많지 않다고 느끼며 초조해한다.


 아덴만 여명 작전의 석해균 선장을 살려낸 일화로도 유명하다.

"피랍된 배의 선장은 고의적으로 선박의 항로를 지연시켰다. 침로를 바꾸며 지그재그로 운항했고 배의 엔진도 일부러 망가뜨렸다. 최영함이 선박을 따라잡을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려 한 것인데, 말 그대로 목숨을 건 일이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해적들의 살기 어린 구타가 반복됐으나 선장은 버텼다. 전직 해군 부사관 출신이라는 선장은 도적들에 맞서 몸을 던져 시간을 벌었고, 그사이 해군은 다음을 준비했다. 본국으로부터의 직접 지원이나 근해에 배치되어 있는 연합해군으로부터의 전력 지원은 없었다. 최영함을 이끄는 조영주 함장은 피땀을 흘리며 고독한 싸움을 이어갔다... 해군의 진압에 분노한 해적 하나가 석해균 선장을 향해 총탄을 쏟아부었다. 여섯 발의 총탄이 석 선장의 몸에 박히거나 몸을 뚫고 나갔다. 그중 세 발이 체간부를 관통했고 부스러진 총탄의 파편이 대장과 간을 포함한 내장을 갈가리 부스러뜨렸다. 관통상을 당한 왼쪽 팔을 비롯해 양다리가 모두 으스러져 덜그덕거렸다..."(골든아워 1, P211)


 급박한 상황에 석선장을 구하러 파견될 의료팀은 원래 이국종 교수팀이 아니었다. 정부에서 결정하면 국방부와 연결된 국내 의료 팀이 오만으로 파견된 예정이었지만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던 선장의 생사를 부담스러워 한 의료팀은 그 상황을 피해버렸다. 

 가기로 했던 의료진이 갈 수 없게 되었고, 누군가는 가야 하는 그 상황에 외교부 사무관의 전화 한통.

 당신이 가 줄 수 있겠는가. 

 그 한마디에 죽든 살든 석선장을 고국으로 데려오기 위해 그는 떠났다.

 시한폭탄 같은 석선장을 국내로 데려오기 위해 헬기를 직접 수소문하고. 정부의 승인을 기다리자니 한 달은 걸릴 것 같은 그 상황에 그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결단을 내린다. 한시가 위급한 상황에 구할 수 있는 헬기마저 여의치 않자 본인이 그 비용을 책임지겠으니 헬기를 보내달라고 사인을 하고 만 것.

 그 비용은 38만 불. 한국돈으로 4억이 넘는 돈이었다. 

 그가 속해 있는 병원조차 그를 외면하고 있었고, 정부조차 상황의 길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중증외상과 관련한 의료 업무는 공공의료의 한 복판에 서 있는 일이고, 국가 세금을 징수하는 데 있어 중요한 예산 투입처에 해당한다. 나는 그것을 또렷하게 알고 있다. 그러나 이 일은 오랜 시간 나와 팀원들의 희생에 기대어 굴러왔다. 그 같은 현실만으로도 나는 지겨웠다. 국가가 진정으로 지원하지 않으면 정리하면 그만이다. 나는 2003년 이래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럼에도 나보다 별반 사정이 나을 것 없어 보이는 사람들이 나를 기억하며 병원에 돈을 보내왔다. 

 그들은 그 돈이 내가 있는 외상외과 앞으로 오는 줄로 아는 듯했다. 정부나 병원은 부서 운영비를 지원해줘야 했으나 지원은 거의 없었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빈곤의 간극을 메우기 전에 그 기부금은 한여름 팥빙수처럼 녹아내려 증발했다. 사람들은 인스턴트식품을 보내주기도 했고 제 팔에 굵은 수혈용 주삿바늘을 찔려가며 모아놓은 헌혈증까지 보내왔다. 나는 경악했다. 내가 이 일을 하는 한 사람들에게 점점 더 못할 짓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 모골이 송연해졌다."(골든아워 1, P330)


 "'외상'이 몸에 가해진 물리적 충격에 의해 손상된 모든 것을 의미할 때, '중증외상'은 생명이 위독할 수 있는 외상으로 반드시 '수술적 치료' 및 집중치료가 필요한 상태를 뜻한다. 어딘가에 부딪히고 깔리거나 떨어져서 혹은 무엇인가에 관통당해 사지와 뼈들이 으스러지고 장기가 터져나가는 경우들이다. 이때 환자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헬리콥터를 이용해서라도 이송은 신속해야 하고, 이송 중 적절한 처치가 이루어져야 하며, 최종 치료를 담당할 의료기관에 도달해야 한다. 도착과 동시에 빠른 진단, 수술, 집중치료가 이어져야 하므로 수술방과 중환자실이 받쳐줘야 하며, 최종 치료를 담당할 의료기관에 도달해야 한다. 마취과부터 혈액은행, 의료진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의 의료 지원도 신속히 투입되어야만 한다. 그것이 중증외상 환자들에 대한 '치료원칙'이다."(골든아워 1, P46)


 그가 이끌어오고 있는 중증외상센터는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내왔다. 

 중증외상을 입고 실려오는 환자를 살리기 위해 쓰이는 혈액과 의료장비, 약 등의 비용들은 병원에 엄청난 적자를 안겨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수술을 하면 할수록 그 적자규모는 더 커졌다고 한다. 병원 내에서조차 그에게 모진 말을 쏟아 냈고 그와 함께 고생하는 그의 동료들조차 하나둘씩 쓰러져 나갈 때 그는 더욱 힘들어졌다. 

 누구나 중증외상의 환자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중증외상센터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기까지의 시간들이 어쩌면 그에게 '불가능'의 현실로 다가오고야 말았나 보다. 


 "내가 외상외과라는, 한국에서 정착할 수 없어 보이는 괴이한 일을 할 때마다 나와 연관된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문제를 알고도 그만두지 못했고, 문제의 본질이 다른 곳에 있음을 알면서도 그것은 내 권한 밖의 일이었으므로, 나는 늘 진퇴양난 속이었다." (골든아워 2, P263)


 "사립대학 병원은 국가의 지원을 받지 않았고, 지원이 없으므로 그곳의 병원에 소속된 의사는 사기업의 직장인과 같다. 회의석상이나 보직교수들과의 면담에서 어떤 취급을 받을지의 여부는 의사 개별의 수익 규모를 기반으로 한다. 그것과 무관하게 잘 지내는 방법은 원내 정치력에 있다. 나는 그 모든 것에 아둔했다. 학교에서 주는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내가 학교에 일부러 불이익을 안길 생각은 없었다. 외상외과 의사로서 교과서적으로 치료하면 환자가 살 가능성이 높아지르모 원칙대로 하려 했을 뿐이다. 그러나 중증외상 환자 치료 원칙은 환자의 생환에는 도움이 되어도 병원의 이익은 되지 못했다. 일할수록 폭증하는 적자 규모는 내가 평생 구경도 못할 액수였다."(골든아워 1, P60)


 개인의 기부를 오히려 만류하는 그의 태도가 못내 아쉽고 서운했다. 이국종 교수의 대쪽 같은 성품을 짐작은 하겠으나 개인들이 그의 행보에 응원의 마음으로 보내려는 그 기부금은 당신이 살려내려는 그 환자의 목숨 값이 될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죽어가는 환자에게 쏟아붓는 혈액, 약, 의료기구들, 헬기 유지비용, 비행장비, 하다못해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빠듯한 수술일정 가운데 의사들이 든든히 먹게 될 따뜻한 밥 한 끼라도 되어주길 바라는 그 마음에서 보낸다는 걸 왜 몰라주실까.


웃으시는 사진이 잘 없어서 어렵게 찾아낸 사진입니다. 귀여우시죠. ㅎㅎㅎ


 "나는 헬리콥터를 이용한 이송 체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일개 지방 병원의 외과 의사가 원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죽지 않아도 될 환자를 죽지 않게 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필요했고, 그 의지를 실현시킬 '정책'이 필요했으며, 관련된 자들의 '합의'가 필요했다. 그러나 정책을 누가 만드는지는 알 수 없었고, 확실한 정책은 보이지 않았다. 보이지 않아서 나는 그들의 실체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도 결정적인 제약과 한심한 조치들은 늘 보이지 않는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정부로부터 몰려왔다." (골든아워 1, P149)


오우. 제가 사랑하는 두 남자. 어쩐지 비슷?




그가 왜 잘 웃지 않는지. 이제야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출동장비를 점검했다. 대부분 표면에 흠이 많고 틈새에는 피에 전 모래 먼지가 피딱지처럼 말라붙어 있었다. 몇 개의 모니터는 액정이 깨져나갔다. 외상 통제실 안에서 장비를 모두 꺼내 펼쳐놓고 깨진 부위를 확인하고 닦았다. 작동이 불안정한 모니터와 심장제세동기를 의용공학팀으로 내려 보내 정비를 받게 했다. LCD 스크린이 달린 장비들은 보호 필름을 덧씌웠다. 출동 때의 낣은 줄은 교체하게 했다. 찢어진 출동 배낭을 직물실에 수선 보낼 때 어깨끈 둘레에 보강 천을 대어달라고도 부탁했다. 무거운 장비 무게에 어깨끈이 자주 헤졌다. 핏물에 젖고 헤진 비행복을 폐기하고 싶었으나 새로 구입할 비용이 없어 그대로 두었다."(골든아워 2, P141)


 그가 목숨 걸고 알지 못하는 이를 구하러 헬기에 오를 때, 그가 탄 헬기가 일으키는 소음으로 인해 주변 주민들이 수없이 민원을 넣는다고 했다. 등산하러 간 사람의 김밥에 모레가 들어갔다며. 시끄러워 잠을 잘 수가 없다며. 심지어 그가 있는 병원의 다른 교수들조차 수업에 방해가 된다며 그의 행보를 '쇼'라고 폄하했다. 


 

"의사라면 말술을 먹고 정신을 놓아도 다른 의사에게 함부로 욕하지 않는다. 거짓과 비방으로 가득한 글을 공개적으로 뿌려대는 것 또한 하지 않는다. 의료계 바닥은 신문지 한 장 펼쳐놓은 것마냥 좁아서 그 같은 짓을 아무에게나 잘못하면 매장당하기 십상이다. 술기운은 술기운을 발휘할 만할 때,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기 좋은 상황에서 발휘된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욕설을 들으며 내 비루한 위치를 생각했다."(골든아워 2, P239)




"나는 단 한 번이라도 중증외상센터의 세계적인 표준을 한국에 심어보고 싶었다. 아주대학병원 중증외상센터가 문을 닫고 한국의 중증외상센터 사업이 종료되고 나서도, 다음 세대 의사들 중 누군가가 다시 중증외상센터를 만들어보려 할 수도 있다. 그때를 위해 우리가 남겨 놓은 진료기록들이 화석같이 전해지기를 바랐다. 

 우리의 기록들은 마치 내가 2002년 처음 외상외과 전임강사로 발령받았을 당시 찾았던, 한 한국계 미국인 외상외과의사가 3년간 고군분투하다가 사라지며 남긴 기록과도 같을 것이다. 그 당시 나는 그 기록들을 들춰보며, 외상외과가 어떤 임상과인지를 더듬어 갈 수 있었다."(골든아워 2, P299)




 그의 말들을 옮겨 적다 허기가 져서 밥을 많이 먹었다.

 햇반이라도 한 박스 보내려다 손이 오그라든다. 

 내가 그의 손을 잡고 불끈 쥐며 '파이팅'이라도 외쳐주고 싶지만. 비루한 내 처지에 그에게 보낼 현실적인 힘이 존재하지 않음이 슬프다.

 부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공감하며 그에게 힘을 보탤 수 있기를.

 이 책이 다시 그에게 칼이 되어 돌아가지 않기를.

 비루한 나는 이렇게나마 그에게 응원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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