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 베유의 한 문장 그리고 소고
사람들은 어떤 것이 좋다고 믿기 때문에 그쪽으로 향한다. 그 다음엔 그것이 필요해졌기 때문에 계속 묶여 있게 된다.
-시몬 베유, 중력과 은총-
저는 종교인입니다. 종교인으로 저를 항상 의심하고, 제 자신에 대한 혐오가 큰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종교는 '생명'과 함께 '마력'도 존재하고 있기에 어느 순간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절망 가운데 죽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이것이 정말 '삶'의 의미를 위한 것인지, 내 욕심인지 묻는 순간이 하루에도 몇 번인지 모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엇인가 경험할 때 주변에 있는 타자에 의해 시몬 베유가 말하는 '그쪽'이 좋다는 소식을 듣고, '그쪽'을 찾아갑니다. 처음 듣고, 만나고, 경험한 '그쪽'은 새롭습니다. 그렇기에 참으로 좋고,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하지만, 좋음과 아름다움을 느꼈으면 자연스레 떠나며 더 풍성함을 찾아가야 함이거늘 '마력'의 '그쪽'은 인간이 그 자리에만 서있게 만듭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쪽'을 품고, '그쪽'에 서있으면서 좋음과 아름다움을 발견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역동성'이 주가 되어야 할 '삶'은 그 힘을 잃어버리고, 망상은 날개를 편 게 되지요.
즉, 누군가 '그쪽'을 찾았다고, 발견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만 움직여야 할 '그쪽'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재단하고 그대로 내버려 둠으로 썩습니다.
'그쪽'만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삶'은 '역동성'을 찾으래야 찾을 수 없고, 머릿속에서만 넘쳐난 '망상' 가운데 살게 된다는 것이죠.
이러한 '망상' 가운데 살아가는 이들을 왜 이렇게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을까요.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저도 똑같았다는 '경험'을 최근에 했습니다.
미국의 이민단속국의 정신 나간 행태가 세상에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두 사람이 죽음을 맞이했고, 자유의 나라라 말하던 미국의 많은 사람이 자유를 억압당한 채 두려움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저는 '종교'가 이러한 억압을 푼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술, 문화'가 '종교'의 역할을 대체하고 있음이 속상하게 느껴질 뿐입니다.
올해 미국의 국기라고 말해지는 '미식축구'의 가장 큰 행사인 '슈퍼볼'이 열렸습니다. 수많은 사람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 행사 가운데 슈퍼볼 하프타임쇼는 그 해 가장 유명한 가수가 공연을 하지요. 이번에는 스페인어 앨범으로 최초 그래미를 수상한 배드 버니가 공연을 했습니다. 사실 영어도 능숙하지 못한 저에게 스페인어는 더욱 어렵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히 이해되었습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외치는! '그쪽'에 묶인 채로 가만히 앉아 있는 저를 깨워주는 하나의 퍼포먼스를 그가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아메리카 가운데 신의 축복이 있기를 바라며 '미국'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메리카' 대륙에 있는 나라를 말합니다. 언제부터인가 아메리카는 대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쪽'에 있는 저에게 있어 '아메키라'는 '미국'이라는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아메리카'는 그 국가가 아니라 대륙이라고 배웠고, 그것이 정확한 정의였음을 깨달았지요. 참 제가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하여튼 인간이란 존재는 '그쪽'에 있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그쪽'에 있으면 생각을 안 해도 되고,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쪽'은 인간의 삶 가운데 '망상'과 '부패화'로 다가옵니다. 그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그쪽'이 썩으면 '그쪽'만 의지하던 '인간'도 썩게 되지요.
혹시나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이 소고를 읽는 여러분들도 '그쪽'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레 묻습니다. 내가 가진 기준이라 할 수 있는 '앎'의 '수동성'에 빠져서 말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죠.
저는 종교인으로 이 세상 모두가 '그쪽'에 살면서 '역동성'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삶'의 역동성 풍성히 즐기기를 눈을 감고 중얼거리겠습니다.
이 가운데 계속해서 '그쪽'이라 불리는 곳을 찾기도 하며 버리기도 하시길, 즐거운 삶을 살아가시길 그리고 사람을 살리는 '삶'을 사시길 그저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