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함이 주는 씁쓸함
'박하사탕'은 세계적인 영화제에서 상이란 상을 다 휩쓴 이창동 감독의 작품입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뭔가 모르게 무겁습니다. 청년의 불안을 비유적이면서도 직설적으로 드러낸 '버닝', 인간의 신앙에 대해 질문을 던진 '밀양' 등 인간이 살아가며 마주하는 부조리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에 참 무겁습니다.
그의 영화에 대한 개인적 평가는 일상적인 삶과 모습 가운데 참 시리도록 날카로운 칼을 숨겨놓는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타보면 이제껏 사회 속 동물인 필자가 애쓰며 입은 사회적 '가식'을 발가 벗기는 기분을 줍니다.
성공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 이 가운데 한 개인이 지닌 연약함 가운데 한 없이 약한 '순수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초록물고기'로 씁쓸한 현실을 신랄하게 보여준 그는 박하사탕이라는 희대의 명작을 세계에 던집니다.
줄거리는 대충 이렇습니다. 어떤 미친 아저씨가 동호회 모임을 가서 온갖 추태를 부리고, 기차선로에 올라가 다가오는 기차를 마주 보며 이렇게 외치죠. "나 다시 돌아갈래"
그리고 영화는 보는 사람 참 부럽게, 아무렇지 않게 영화는 참 쉽게 시간을 돌립니다. 문소리의 남편을 만나는 시간, 자신도 외도를 했음에도 자신이 내팽개쳤던 아내의 외도를 보고 온갖 폭력을 부리던 시간, 자신이 경찰일 때 아무렇지 않게 폭력을 쓰며 대학생들을 잡던 시간, 첫 경찰 근무 때 주변 형사들은 사람들을 고문하지만, 그러지 못했던 그의 순수했던 시간, 군에서의 어쩔 수 없는 명령으로 내려간 광주에서의 시간, 자신의 순수한 꿈이 있었던 시절과 문소리와의 만남이 있었던 시간. 이 영화를 보면, 한국의 현대사 가운데 아무 힘없던 인간이 괴물로 변해가고 결국에 후회하는 씁쓸한 장면을 대면할 수 있습니다.
설경구의 찌질한 연기는 일품이고, 악과 같은 그의 모습 속에서 어쩔 수없이 잊혔던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아련한 연기에 괜스레 착잡해집니다. 이 영화의 잔인한 결말을 더 잔인하게 보시려는 분들에게 하나의 철학 개념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는 헤겔의 변증법의 수많은 특징 속에서 나는 '상호연관성'이라는 개념을 가져오고 싶습니다.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는 상호작용을 합니다. 인간은 고립된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인 존재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나무의 관계가 있습니다. 씨앗이 있고 싹이 납니다. 싹이 나고 뿌리가 생기고, 줄기와 잎 그리고 꽃 열매가 생기죠. 이 각각의 단계는 전단계를 삭제하고 등장하는 것이 아닌, 전단계를 딛고 더 나아갑니다. 즉, 지양(Aufhebung)하고 있는 거지요.
인간의 삶도, 세계의 흐름도 그렇지 않나요? 전체는 유기체적으로 개인과 관계를 맺고 있지 않나요? 이러한 생각과 속에 영화는 칼을 던집니다. 개인의 삶의 모습을 다 본 관객, 세계 속에서 어쩔 수없이 선택했던 그를 보기도 하고, 세계 가운데 비본래적 실존의 끝을 보여주는 그의 모습. 꼬시기도 하고 아리기도 한 이율배반적인 상황에 저는 아직도 답하지 못하겠네요.
분명 과거에는 극 중 설경구처럼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치며, 시간을 돌리고 싶었는데 이제는 돌아가는 것도 무섭습니다. 순수했던 내 모습을 볼까 봐. 과거와 달리. 현재의 저는 때가 많이 낀 추잡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박하사탕처럼 이러한 쌉쌀함을 느끼시고 싶은 분이 있다면 이 영화 꼭 추천합니다!
나 다시 돌아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