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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채 출신이라는 꼬리표는 소중했었나 보다

사람들끼리 뭉치는 건 어쩔 수 없을까?

by 프리츠

첫 회사에는 공채로 입사해서 다녔었다. 이직을 위해 퇴사를 하던 때, 당시 그 회사의 경력직으로 들어왔던 선배 중에 공채로 다닌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아냐며 아깝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별로 중요한 말 같지 않았다. 현재 다니는 회사는 신생 회사라서 경력직 위주의 회사기 때문에 공채 자체가 자리 잡은 곳이 아니라서 더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문제는 없다. 다만 여기저기 "공채" 무리들이 보인다는 점 빼고는. 내가 그 집단에 속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렇게 글감이 된다.


어떤 '공채'들이 이 회사에서도 보일까?


1. 초기 멤버 그룹


동일하게 경력직으로 들어왔더라도 회사의 큰 이벤트 발생 전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 이후에 들어온 사람들로 나뉘는 모양이 있다. 아무래도 상대적 초기 멤버들은 팀의 리더로, 또는 팀의 주축으로 이미 그들만의 그룹을 형성한 상태다.


이 기준에 의하면 나도 상대적으로 이직해 온지 곧 만 4년이 되므로, 점차 고인물 그룹으로 분류되는 형국이다. Tier 1까지는 아니더라도 Tier 2라고 할까. 전 회사에서의 '공채 00기'가 마치 Tier 1이었을 것이다. 군대가 아닌데도 짬밥을 따지는 걸 보면 나누고 뭉치는 것은 사람들의 기본적인 성향인 듯하다.


2. 특정 회사 출신 그룹


또 조직에서는 성골/진골/6두품을 나누기도 한다. 이 회사도 신생 회사이긴 하지만 특정 회사 출신들이 똘똘 뭉쳐서 만든 곳으로 초기 멤버들은 위에서 말한 'Tier 1'이면서 성공 출신이다. 또 그들과의 연으로 들어온 그 회사 출신들은 늦게 합류했더라도 이미 짱짱한 권력을 얻은 상태로 회사에 쉽게 적응하고 여기저기 얼굴을 쉽게 들이민다.


회사 전체 단위가 아니라 일개 팀 내에서도 이미 고인물들이 서로 자기 회사 출신들을 선호해서 하나의 집단을 형성하려는 모양을 보기도 한다. 30명 모두 경력직으로 이뤄진 팀인데, 6명이 동일한 회사 출신이다. 이전 회사 동료가 없는 나로서는 소외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이전 회사 재직 시, '블라인드'라는 익명 소통 앱에서, 한 경력직으로 입사한 직원이 공채들끼리 따로 그룹 지어 주말 골프 치러 가는 행태가 사적 모임을 금지하는 회사의 인사 운용 정책에 위배된다는 비판의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표면적인 구호에 불과한 운용 정책일지 모르지만 같은 공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능력을 뒤로 한채 서로 밀어주고 끌어 준다면 조직이 건강하지 못할 것이다.)


그 글을 보고 했던 생각은, 별게 다 불만이네. 였다. 내가 골프 모임의 멤버는 아니었지만 같은 공채 출신 선배들이었으며, 내가 이미 공채이므로 이런 모임을 갖는 게 큰 문제가 될 부분은 아니라고 보았다. 왜냐? 그들끼리 친해서 간 거지. 부러우면 너도 인간관계 스킬을 발휘해서 친해져 보든가.


그런데 이제 반성을 좀 해본다. 인간관계 스킬을 발휘해서 내가 고인물 그룹에 들어가거나, 다니지도 않았던 회사 소속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는 걸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가 뛰어나지도 않거니와 수완이 아무리 좋더라도 구조적으로 접근이 불가능한 관계와 집단이 있다.


같은 공채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서로 얼굴 볼 횟수도 더 많고, 괜한 신뢰가 형성된다. 같은 회사에서 평생 볼 선후배, 형제자매들이므로 신뢰를 퍼주어도 아깝지 않을 사이가 되는 것이 공채 출신들 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처음으로 돌아와서 나는 이 회사의 초기 고인물이 되지도 못하고, 사람이 많거나 이미 권력을 잡은 특정 회사 출신도 못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뚜렷한 묘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이렇게 현상을 정리해 보면서 나를 포함해 여기저기서 소외되는 사람들을 한번 더 돌아보고, 감수성을 키워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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