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개념 : 자율
아들은 한국 나이 8살. 세상의 많은 규칙을 이해해 가는 나이다. 아직도 왜 꼭 그렇게 해야 하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해대지만, 그래도 이유 없이 따라야 할 것들이 있다는 것을 이해는 해가는 모양이다.
그렇게 규칙들을 하나둘 익혀가면서 세상을 파악해 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규칙의 편리함도 어느 정도 익혀가는 모양이다. 모든 순간마다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때로는 불편하기도 하다. 그냥 해도 괜찮은 것들이 많다. 가령 밥을 뜨려면 포크보다는 숟가락이 편하다. 밥을 먹을 때마다 무엇으로 밥을 먹을지 생각할 필요는 없다.
아들에게 자주 말하게 된다.
- "00야, 여기서는 이렇게 해야 돼."
- "그냥 이때는 이렇게 하면 돼."
또 어떨 때는 이렇게 말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 "어, 아까는 저렇게 말했는데, 이때는 이렇게 해야 돼."
아들은 조금 혼란스러운 모양이다. 규칙이 고정적인 것은 아니고 그 규칙까지도 상황에 따라 놓이는 경우가 있다는 점에 대해서 말이다. 오히려 '규칙의 규칙'이라고 할만한 게 있다면 아래 같은 것이 아닐까.
- 규칙은 모든 상황에 고정적인 것은 아니고 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 규칙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 규칙은 강력한 것도 있지만, 꼭 지키지 않아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도 있다.
규칙의 편리함을 이해하면서도, 규칙은 새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알았는지, 아들은 스스로 규칙을 자꾸 만들어 내려고 한다. 겨울에 가족끼리 사이판 PIC로 여행을 갔을 때다. (여러 비슷한 사례 중 한 가지만 이야기한다.)
- 00야, 유수풀은 (한 바퀴 도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까) 딱 2바퀴씩만 타고 또 나가자.
- 그치, 아빠 말 되지. 1바퀴는 너무 짧고, 3바퀴는 오래 걸리니까 2바퀴 타면 딱 좋아. 유수풀은 2바퀴만 타기!
다음에 또 유수풀에 왔는데, 1바퀴만 타고서 식사시간이 다가와서, 내가 먼저 나가려고 하니
- 아빠, 유수풀 2바퀴 타는 건데?
- 아 그래? (이상한 규칙이네.) 그런데 이제 밥 먹으러 가려면 빨리 가서 줄 서야 해서 지금 가야 좋아.
유수풀 2바퀴 규칙은 이렇게 와해되었다. 아들도 배울 것이다. 규칙은 만들어지고 무너지고 또 만들지 않은 규칙도 있다는 것을.
칸트가 이야기한 '자율'이라는 것이 있다. 자유가 아닌 자율인데, 스스로(자) 세운 법칙(율)이라는 뜻이다. 스스로 모든 규칙을 세운다는 의미는 아니다. 세상의 수많은 규칙을 각자가 새로 만들 필요는 없다.
이미 사회에 세워진 수많은 규칙들을 참고하면 된다. 대신에 이미 있는 규칙들이라고 하더라도, 그것들을 규칙이라는 이유만으로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 것이 핵심이다.
행동의 관점에서는 그 규칙을 아무 생각 않고 따르기만 하는 사람과, 그 규칙이 왜 그러한지 배경을 이해하고 충분히 공감해서 따르는 사람 간에 차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규칙에 따른 동일한 행동을 하더라도 그 규칙을 스스로가 세운 규칙으로 삼고서 행하는 사람은 (칸트적인 의미에서) 더 윤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나아가 명확한 규칙이 부재한 상황 속에서도 기존에 따르던 규칙의 근간에 놓인 원리를 바탕으로 충분히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배양할 수 있을 것이다.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수많은 규칙들을 더 배울 것이다. 때로는 규칙이 불편하고 강제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아들은 이미 '자율'적인 인간으로 자라는 과정 속에 들어간 것으로 보여서 마음이 놓인다.
'유수풀 2바퀴 규칙'처럼 아빠가 2바퀴 타자고 하는 말을 스스로의 규칙으로 만들어보는 것처럼, 외부의 규칙을 스스로의 규칙으로 생각해 보고 전환하는 '자율' 훈련 모습을 자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