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일이라고 할 때, 그 여러 가지 의미
가끔 지인의 이직 프로세스 중에 레퍼런스 체크 연락이 올 때가 있다. 그중 기억나는 건 한 지원자가 A 프로젝트를 본인이 했다고 하는데, 그게 진짜 맞냐고 묻는 것이었다. 했다고 하면 했을 수도 있고 안 했다고 하면 안 했을 수도 있는데, 했다고 말하기 애매하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왜냐하면, 이직 프로세스 내의 업무 능력에 대한 검증 관점에서는 "업무를 했다"라고 말할 수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결국 어디론가 이직을 하긴 했다.)
회사를 다니다 보면 같은 업무를 자기가 했다고 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된다. 그들 나름의 사정을 한번 들어보자.
CEO 또는 임원의 입장
본인이 임기로 있는 중에 상품/서비스가 론칭을 하고,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났다면 CEO 덕분에 회사가 큰 발전을 이루고, 이익을 많이 냈다며 기사가 릴리즈 되곤 한다. 전임 CEO가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사업이었는데, 하필이면 CEO가 바뀐 지 몇 달 되지 않아 결과만 쏙 빼먹는 경우에도 후임 CEO의 성과로 포장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들이 했던 건 '의사결정'이다. 중요한 부분이다. 다양한 선택지 중에 리소스를 배분하고 집중을 무엇을 할 것인지, 동시에 어떤 기회비용을 감수할 것인지는 중요한 부분이다.
때로는 본인이 강하게 추진하지 않은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아래에서 자유롭게 추진했던 사업이 운 좋게 얻어걸려도, 그냥 자기 치적이 되는 경우도 있다.
프로젝트 주관 부서장의 입장
(때로는 부서장이 프로젝트 리더가 되기도 하나, 여기서는 프로젝트 리더는 별도로 있고 부서장은 실무 조직 단위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부서장을 상정한다.)
부서 내의 프로젝트를 같이 관리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업무를 하나하나 챙길 역할은 할 수 없는 위치이다. 대신 CEO와 임원에게 적절하게 프로젝트 상황을 보고하고, 지침을 지시받아 실무진에게 전달하게 되는 중간관리자의 입장이다. 또 부서 내에서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의 의사결정은 하게 된다. 역시나 이들도 프로젝트가 잘되면 "내가 했잖아"라고 말하게 되는 걸 종종 보게 된다.
전략팀의 입장
보통의 프로젝트 아이템은 해당 실무부서에서 아이디어 발의를 하여 추진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전사 전략적인 관점에서 제시된 아이디어가 올라와서 임원 회의체를 통해 해당 부서로 아이템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전략팀은 말 그래도 머리만 굴렸는데, 실제 손발은 다른 부서에서 움직이게 하는 경우가 된다. "내 아이디어대로 아이템 나왔어."
실제 아이디어를 구현해 내야 하는 다른 실무부서 직원들로부터 말로만 일한다고 미움을 받기가 쉽다.
해당 프로젝트 리더의 입장
부서 내의 시니어일 수도 있지만, 직접 프로젝트 아이템을 발굴한 경우 리더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 사람이야말로 '프로젝트=본인'이라는 생각으로 업무를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일정/퀄리티 등 프로젝트의 모든 측면에서의 최종 책임감을 느끼며 일을 하고 가장 스트레스에 크게 노출된다. 물론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끝나도 가장 큰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수상, 평가, 승진 등)
프로젝트 실무자의 입장
프로젝트의 세세한 부분을 다 챙겨나가야 한다. '나'의 역량 하나하나가 프로젝트의 퀄리티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친다. 잘 맞는 프로젝트 리더와 함께 한다면 새로운 아이템을 만들어 낸다는 과정 그 자체가 즐거움이 된다. 프로젝트 팀 내에서 불화가 있다면 또 그 자체로 회사 업무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게 되는 역량을 쌓는 좋은 기회로 삼아 볼 수도 있다. 어쨌든 업무적으로 성장할 좋은 기회를 얻게 된 것이고, 미래의 프로젝트 리더를 꿈꾸는 레벨이다.
운영 담당자의 입장
지금 오늘도 상품/서비스 또는 프로젝트 산출물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내가 없으면 유지 보수가 되지 않는다. 각종 민원 대응, 정산 처리 등 후선 업무들. 프로젝트 성과에 대한 논공행상은 이미 모두 완료되었지만, 프로젝트 아이템의 유지를 위해서는 '내'가 없으면 안 된다. 내가 가장 빛을 보지도 못하면서 고생만 하고 있다.
다시 서두로 돌아가서, 이직하려는 회사의 입장에 따라 다르겠지만 시니어 정도의 직원을 뽑는다면 위의 프로젝트 리더, 프로젝트 실무자 정도의 역할을 한 사람을 찾을 것이다. 왜냐하면 새 회사에서도 바로 프로젝트에 투입할 즉시 전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반면 위의 지인의 경우 언급된 프로젝트가 거의 끝날 쯤 참여했고, 추후 운영 담당자 역할을 주로 했었기 때문에 시원하게 그 사람이 그 일을 했다고 말하기 어려웠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