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더러워졌을 때, 마음을 정리해 가는 과정
구체적인 사안의 상황을 나열해서 내가 얼마나 무례한 말을 들어 봤었는지에 대한 공감을 얻으려는 글을 써두었다가 말았다. 글쟁이가 되는 것은 주위 사람들을 팔아서 되는 과정이라고 하던데 괜히 글을 썼다가 당사자가 읽고서, 따지러 오면 어쩌나 싶어 금세 소심해진다.
상황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글은 자극적이겠지만 브런치에 올릴 글보다는 일기는 일기장에.
무례한 말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었고, 어떻게 극복해 가게 될까?
1. (당황) 갑자기, 허를 찌르는 말을 듣는다.
순간 이상한 말을 듣는다. 어리버리 해진다. 이게 진짜 입에서 나온 말인가? 방귀인가? 나를 향한 말인가? 대체 어떤 의도인가? 이걸 어떻게 받아치든지, 아니면 좋게 좋게 넘겨야 할지? 찰나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2. (황당)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앉아있지? 어이가 없다.
제대로 받아쳤든 받아치지 못했든 발화자의 의도가 괘씸해진다. 실수일 수도 있다. 만약 실수라면 사과를 했을 것이다. 사람은 잘못을 하니까. 나도 뭐, 실언을 하고 사과를 해본 적이 없진 않다. 그런데 일언반구도 없다면. 황당하다. 이 사람 뭐지?
[별책부록] 당황과 황당의 차이
- 당황 : 길을 걸으며 약하게 방귀만 뀌려고 했는데, 갑자기 큰 것이 나온다.
- 황당 : 배가 아파서 변기에 앉았는데, 중요한 것은 안 나오고 방귀만 나온다.
3. (스멀스멀) 그 사람 얼굴을 보거나, 비슷한 상황에 마주치거나, 혼자 누워 있을 때 수시로 그 말을 들었던 순간과 답답함이 떠오른다.
샤워를 할 때, 잠자리에 들기 전, 새벽녘 눈이 떠졌을 때 막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사람 얼굴을 보면 불쾌해진다. 짜증 난다. 피하고 싶어 진다. 얼마 간은 그 사람과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게 상책이다.
4. (감히) 나를 아는 사람이 그런 말을 눈앞에서 나에게 한다고?
발언의 심각성 따라 다르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 말이라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안 된다. 어떻게 그런 말을? 혹여 사과를 받았어도 그 말을 들은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 정도까지 오면 짜증은 최고조로 오르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사그라들기 일보 직전이라는 뜻이 될 수도 있다. 이 글은 최고조에 올라서 쓰기 시작했고 쓰기 시작하니 가라앉기 시작한다. 글을 쓰자. 또 그 사람에 대한 기대를 낮추니 맘이 가벼워진다.
5. (출구) 왜 나만 짜증 나지? 말의 피해자는 나인데?
정작 그러한 말을 한 사람은 기억을 못 할지도 모른다. 3자가 봤을 때는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중요한 사실은 어쨌든 나는 괴로웠었다는 점이고, 내가 그렇게 느꼈다는 사실은 거짓이 아니다. 예민했든 아니든 그렇게 생각을 해 버린 나의 사고 과정은 온당한 것이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자. 애초부터 원인은 내게 없었다. 여기까지 오면 나만 신경 쓰고 있다는 게 억울해져 갈 때쯤에 이르렀다.
다행히도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기도 하거니와, 또 다른 이슈들로 이번 일은 그냥 넘어가게 된다. 다음에는 조금 더 바로 그 자리에서 침묵이든, 맞받아치든 더 현명하게 대처해 보도록 하자.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과 관계가 예상되는 자리에 굳이 '모름지기 직장인이라면 적절히 사회생활을 해야 한다'라는 관념을 좇아 참석하지 말지어다.
물론 나도 가끔 누군가에게 무례했던 언행을 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이 참에 한번 또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