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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츠 Dec 01. 2023

밀란 쿤데라, [농담]; 그리고 망각

망각 덕분에 인생이 살만하게 유지된다

소설 줄거리를 정리한 글은 이미 너무 많다. 대신 이 글의 주제를 위해 간단하게 요약해 본다. (그래도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


루드비크는 대학생으로서 공산당 조직의 일원이다. 한 여학생과의 우편 서신을 주고받으며 '농담'을 전달했는데, 이 농담에 의해 대학생 신분에서 쫓겨나게 되고 광산으로 노동 교화를 받으러 가게 된다. 당에 반대하는 사상을 적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루드비크의 관점에서 앞뒤 맥락을 고려하면 단순한 장난과 놀림에 불과한 농담이었다. 하지만 앞뒤 맥락 없이 제 3자가, 공산당에의 충성이라는 잣대를 기준으로 보게 되면 문제 소지가 충분한 농담이었다.


(어떤 농담인지는 직접 책을 통해 살펴보시길!)


이 농담을 한 사유로 대학 사회에서 추방시킬 것인지에 대한 검토를 하는 위원회의 장(제마네크)에게 루드비크는 일말의 기대를 한다. 개인적인 교분이 있는 관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기 좋게 위원회의 결정에 의해 광산행이 확정된다. 그리고는 인생이 망가져버렸다.


루드비크는 광산에서의 노동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하고 있는 와중에, 좋은 기회를 맞아 제마네크에게 복수를 할 좋은 기회를 포착한다. 우선 그의 부인을 꾀어 성관계를 맺어 1차적인 복수는 했으리라 보였다. 그러던 중 둘은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교수가 되어있는 제마네크는 이미 부인보다 더 젊고 예쁜 다른 대학생 여자친구를 두고 있었다. 게다가 과거 루드비크의 삶을 끝장낸 결정에 대한 일말의 생각이나 기억, 의식조차 없는 듯 보인다. 그냥 오랜만에 만난 친구일 뿐이다. 루드비크가 자기 부인을 범했다는 사실을 아는 듯 하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다. 루드비크는 결국 이렇게 생각한다. 복수가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다음은 그의 생각이다.


그렇다,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사람들 대부분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 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 등을) 고쳐 볼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다. 이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진실은 오히려 정반대다. 모든 것은 잊히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 (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일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지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힐 것이다.


복수를 직접 하진 못했지만, 이렇게 정리함으로써 복수가 끝났다. 해결하지는 못했지만 해소됐다. 루드비크 본인이 잊은 것은 아니었지만 제마네크의 망각 덕분에 사태가 종결됐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종종 든다. 혼자 한 이불킥하게 만드는 실수들, 주위 사람들과의 좋지 못했던 관계, 질병의 고통 등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방금 겪은 일 마냥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남아있는 상태라면 얼마나 괴로울까. 다행히도 우리는 잊어버린다. 그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를 얻는다. 그렇게 나아갈 수 있게 된다.


가장 좋은 것은 부정적인 생각이나 근심 걱정들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 상태일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냥 인간이 그런 건지 내가 그런 건진 몰라도 머릿속에 "나쁨 상자"라는 것이 있고 그곳은 절대 비어질 수 없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아, 이것만 해결되면 진짜 편할 텐데라고 생각하다가도 진짜 해결되고 나면 금세 다른 것들이 "나쁨 상자"를 채운다. 이제 그냥 받아들인다. 상자가 빌 일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대신 상자를 잘 어루만지면서 관리할 수 있음에, 그 상자 때문에 무너지지 않을 수 있도록 노력하는 힘을 얻었다고 자부하며 살려고 한다.


어둠이 있어야 밝음이 있다고 했다. 어둠을 몰아내려 하기보다는 어둠이 밝음을 아예 없애지는 않게, 그래서 밝음을 더 빛나 보일 수 있도록 잘 관리해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어려움을 열심히 잊어버리고, 내일엔 또 다른 나쁜 것들이 다가오더라도 웃으며 자리를 내어줘야겠다. 또 금방 잊혀질테니까.



* 참고 문헌

밀란 쿤데라, [농담] (방미경 역, 민음사, 1999)


Image by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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