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칭 주인공 시점 또는 전지적 작가 시점
소설을 고를 때 꼭 일부분을 읽어보고 고른다. 첫인상부터 재미있는지가 중요하진 않다. 짧게 읽어보고도 재미가 느껴질 책을 원하면 추리 소설이 적당하다. 그보다는 서술 시점을 본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이면 가장 좋고, 전지적 작가 시점까지는 그래도 손이 간다. 그 외의 시점인 (1인칭/3인칭) 관찰자 시점은 손이 가지 않다. 내가 소설을 통해 보고자 하는 것은 인물 내면의 치열한 고민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요즘 소설은 시점이 변화하기도 하고, 전형적이지도 않은 경우가 더러 있는 듯하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이나 전지적 작가 시점과 같은 구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한 인물이 되어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다.
물론 소설의 플롯이나 사건이 재밌어도 좋다. 당연한 말이다. 그렇지만 플롯이 밋밋해도 사건이 다양하지 않아도 충분히 재밌을 수 있다. 한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본다는 관음증적인 잠재 욕망도 은근히 채울 수 있다.
소설(의 인물)을 통해 얻고 기대하는 부분은 이전 글 <소설 예찬>에 썼듯,
다사다난하고 골치 아픈 인생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위안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여러 실마리의 가능성
등이 있었는데, 그래서 인물 내면이 잘 드러나는 서술 방식을 자주 본다.
그리고 그 인물의 인식이 일그러져 있을수록 더 좋다. 독자인 나는 그 사람이 잘못 파악하고 있다는 게 보이지만, 그 사람에게는 너무나 완벽한 하나의 세계이다. (우리는 동일한 물리적 공간에서 살 지라도, 모두 자기의 인식 틀로 만들어진 각자의 '세계'에 살고 있다.) 그러다가 결국 주인공은 자기의 인식과 실상의 괴리를 느끼게 되고 다양한 형태의 반응들을 보이게 된다. 이것이 우리가 매일 겪는 삶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이 와도 세상의 모든 실상을 자기 혼자 다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다 어느 정도 일그러진 시각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소설을 통해 열심히 다른 삶에 기웃거리며 내 삶을 돌아보다 보면, 삶에 도움을 얻을지도 모를 일이다. 뭐 얻지 못해도 좋다. 그 자체로 재미있는 삶의 모습을 봤다는 것만으로도 대만족이다. 가성비 좋은 방법이다.
마지막으로 인물의 내면이 주로 드러나는 소설 중 재미있었던 3권을 골라 보았다. 이 글이 이야기하는 취향과 비슷하시다거나 공감이 되셨다면 일독을 권한다. (조만간 이 소설들에 대해서도 개별로 다뤄볼 예정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참고로, [농담]에 관해서는 이미 글로 다룬 바 있다.
https://brunch.co.kr/@onthefritz/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