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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리츠 Nov 10. 2024

아들이 제 자식을 낳아 준다면

부모가 바라는 자식의 가장 큰 효도

나는 다행히도 결혼을 하고 아기도 낳았다. 어느새 무척 자라 벌써 유치원에 다니는 아들이 있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결혼도 안 해, 또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를 안 낳는 부부를 종종 보기가 쉽다. 문득 나의 아들이 결혼을 안 한다면? 또 아이를 안 낳는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에 빠져 들었다.


아들이 결혼을 하지 않고, 아기를 낳지 않는다면 나에게도, 또 우리 부부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실제로 아들이 어떤 행동-결혼을 할지, 말지-을 할지, 그리고 그런 행동을 한다면 어떤 생각-부모로부터의 영향이든 또는 다른 영향이든-에서 하는 것일지는 먼 미래의 일일 것이다. 그런데 가끔 인터넷을 돌아다니다 보면,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는 사유로 다음 것들을 보곤 한다.


가령, 다음 같은 것들이다.

(1) 우리 세대는 단군 이래, 부모 세대보다 부를 축적하지 못하고 더 가난한 유일한 세대이다

(2) 삶이 이렇게 힘든데 이런 삶을 내 아이를 낳아서까지 겪게 하고 싶지 않다


(2)를 보면서, 아들이 앞으로 살면서 삶을 힘들게 느껴 결혼 및 출산까지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삶만의 끝을 바라며 살게 된다면 부모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무리 부모가 열심히 하더라도 자식은 별도의 독립적인 인격체이므로 본인만의 사고를 할 수 있고, 그 방향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어지진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의 생각은 들게 해줘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 삶에 힘든 순간이 오더라도, 그것은 순간이고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나에게 있다는 믿음

- 힘든 것은 혼자서도 극복할 수 있지만 함께 극복할 때 더 쉽게 극복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생각


이런 믿음과 생각으로 아들이 살아갈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부모로서의 내 책임과 역할을 다 했다는 뿌듯함이 들 것이다. 물론 이런 내면의 생각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이상 말로 듣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만약 아들이 장성하여 비혼주의로 나아가지 않고 결혼과 육아로 이어지는 삶을 기꺼이 선택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면 스스로 뿌듯해하고 있을 그림이 그려진다.


종종 손주를 낳아주는 것이 부모님에게 하는 큰 효도라고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렇게 여겨지는 이유가 여럿 있을 것이다.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한 가정을 꾸리고, 평범한 일상을 누려가며 사는 삶을 사는 자식의 모습을 보는 뿌듯함.  그리고 그 자체로 귀여운 아이를, 그것도 본인과 똑 닮은 아이를 보여준다는 것은 그 자체로도 큰 즐거움이 된다.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해서, 내 자식이 자식을 낳아준다면 그것은 나의 육아에 대한 온전한 보상을 받는다는 느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그래도 자식에게 이 삶을 살만한 곳으로 느껴지게는 키워줬구나. 내가 가정과 삶을 통해 보여준 모습이 그래도 자식으로 하여금 자기 가족을 꾸리게 끔 나아갈 정도로는 해 주었구나.


물론 아들 스스로 느끼기에도 만족스러운 가족 경험을 주었다고 하더라도, 아들이 곧 결혼과 육아를 반드시 하는 것은 아닐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아들에게 이 삶이 살만하고, 가족을 꾸리며 사는 행복의 소중함과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것을 소홀히 할 이유가 되진 않을 것이다.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아들이 독립적인 사람으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해볼 뿐이다.



Image by MabelAmber on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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