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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THE RECORD Apr 03. 2019

#26. 나만의 이야기를 쓰는 방법

2018년 11월 27일. 온더레코드 weekly

 저는 광안리 바닷가로 가는 골목을 좋아합니다. 넓은 바다가 보이는 풍경보다는 걸어갈 수록 골목을 채우는 바다의 모습이 더 마음이 갑니다. 왜 그런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서울로 오기 전까지 한 동네에 오래 살면서 그 길을 참 숱하게 걸었습니다. 뻐근한 날 목욕탕을 갈 때도, 힘들었던 날 친구와 맥주 한 잔 하러 갈 때도, 그저 걸으러 갈 때도 그 골목을 지났습니다. 켜켜이 쌓인 시간들 위로 길에서 나눈 이야기와 기억이 그득합니다. 세상에 단 하나 뿐인 이야기가 된 것이죠. 

 제주도에서의 셋째 날엔 특별한 이야기를 들으러 곶자왈 환상숲에 갔습니다. 어릴 때부터 나무를 하러 곶자왈을 드나들었던 소녀는 자라서 숲 해설사가 되었고, 이야기 속엔 수십 년 동안 사람들과 같이 살아온 숲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내가 마음에 두는 장소를 한번 떠올려보세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함께요. 나만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방법은 여기서 시작합니다. 세 매니저가 다녀간 날이 한 겹 더 쌓인 숲의 이야기로 러닝트립의 마지막 이야기를 전합니다. 

온더레코드에서 
황혜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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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곶자왈은 나무, 덩굴식물, 암석이 뒤섞여 수풀처럼 이룬 곳을 일컫는 제주도방언입니다. 숲해설사님의 어머니께선 나무하러 곶자왈에 갈 때는 조심하라는 주의를 항상 주셨다고 해요. 세 매니저가 방문했던 지금의 곶자왈 환상숲은 걷기 좋도록 바위를 흙으로 메운 길이 있지만, 주변에 그늘 진 곳 아래로 덩굴 식물과 나무가 햇빛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는 치열한 생존이 있었습니다. 덩굴이 자리 잡은 곳과 뻗은 모양은 어느 하나도 닮은 것이 없어서 곶자왈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들만의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처음 가는 낯선 곳에 있을 때 우리는 쉽게 스마트폰을 켜 지도를 살펴봅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에서도 길을 알 수 없는 곳, 숲에서는 앞서 간 사람들의 흔적을 잘 살펴야 합니다. 곶자왈 환상숲에서는 들어가는 곳을 알려주는 발자국부터 나무 뿌리 사이에 쪽지처럼 적힌 이야기까지 곳곳에 그 흔적이 있습니다. 이야기들을 읽다 보면 공간은 전과 달리 보이고, 어느새 다른 곳에 도착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제주도의 다른 책방에서도, 다시 돌아온 온더레코드에서도 공간을 100% 즐기기 위한 작은 장치들이 있습니다. 주인장의 한마디, 앞서 간 사람들의 후기, 책 속의 한 줄, 카테고리 들.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 낯설고 어려울수록 이런 장치들은 중요합니다. 공간에 이렇다 저렇다 모두 적어두지 않아도 동선을 따라 끝에 도달했을 때 남는 영감과 자극이 삶을 바꾸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일 고민합니다. 온더레코드를 충분히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어떤 영감과 자극이 숨어있을지 말이죠." 

"나무의 가시가 난 방향을 자세히 보신 적 있나요? 저는 이날 처음으로 자세히 들여다 봤는데요. 어떤 나무는 하늘로, 어떤 나무는 땅으로 가시를 냈습니다. 가시의 방향이 다른 이유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장 필요한 방향으로 자랐기 때문입니다. 열매를 지키기 위해서는 하늘로 가시를 내고, 사람의 손을 피하기 위해서는 땅으로 가시를 냅니다. 숲에 그냥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무는 늘 이유 있는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방향은 늘 나를 지키기 위한 것이고 숲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숲을 위해 나를 조금 내어주는 나무도 곳곳에서 볼 수 있었거든요. 

저는 다음세대가 나무처럼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지키며 성장하는 방법을 알면 좋겠고 우리가 같이 살기 위한 세상을 고민하며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우선 저부터 나무 같은 사람이 되어보겠습니다. 울창해질 그 날을 기대하며."

"곶자왈에서는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없습니다. 자연이 가장 자연스러울 수 있도록 내버려 두는 것 뿐입니다. 키 작은 나무가 해를 보지 못한다고 해서 큰 나무를 잘라내지 않습니다. 물이 닿지 않는다고 해서 물을 길어다 주지도 않고요. 하지만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는 큰 나무들이 뿌리채 뽑혀 쓰러져 있습니다. 새로운 물길이 생기고, 작은 나무들은 쓰러진 나무 위에 뿌리를 뻗고 자라납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성장의 스토리는 숲의 가이드를 통해 전하고 있지요.

어쩌면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기대하는 것은 이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 매일같이 자르고 털어 만든 작고 예쁜 정원이 아니라 울창하고 신비로운 숲으로 커나가기를요. 대신 숲의 이야기를 전하는 가이드 처럼 누구든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작은 잎사귀의 모양을 발견하고, 흙이 없는 곳에서 바위를 감아 자라났다 읽어주는 사람이 함께 한다면 모든 아이들의 삶에도 스토리가 생기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가장 자신다울 수 있도록 내버려 둔다는 것은 어떤 시선과 마음이 필요한 일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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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아가는 길 : 제주 제주시 한경면 녹차분재로 594-1 

- 여는 시간 : 매일 오전 9시부터 6시까지 (일요일 오전에는 쉽니다. 숲해설은 매 정시마다 진행되지만 동절기 마지막 해설은 16시입니다.) 

- 유용한 tip : 어느 시간대에 방문해도 좋은 곳입니다. 다만 흙길을 걸어야 하니 운동화를 신는 것을 추천합니다.  


환상숲 더 알아보기



"협재 해수욕장에서 도로를 따라 조금 걷다보면 컨테이너 건물이 모여 작은 길이 난 곳이 보입니다. 색색깔의 컨테이너마다 옷집, 커피집, 음식점이 있어서 마치 한 마을 같습니다. 누가 있어도 오래 다닌 길처럼 쉽게 익숙해지는 길입니다. 저는 매번 이 곳에서 따뜻한 니트를 사옵니다. 옷을 입을 때마다 저도 보는 사람도 제주를 닮은 옷이라고 해서 자연히 이 곳을 떠올리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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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아가는 길 : 제주 제주시 한림읍 한림로 335 (협재 해수욕장과 가깝습니다) 

- 여는 시간 : 매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9시까지

- 유용한 tip : 제주에 둘러보면 빈티지 옷가게들이 곳곳에 있어요. 이 곳도 그 중 하나입니다. 일교차가 심한 제주에서 옷을 충분히 챙겨오지 않았다면 한번 들러보세요. 이 곳의 특별한 분위기는 덤이랍니다. 



제주의 가을엔 돌담 사이에 갈대가 빼곡한 풍경을 흔히 볼 수 있죠. 그런 제주에도 핑크뮬리가 가득한 곳이 있습니다. 바로 카페 마노르블랑입니다. 잠시 커피 한 잔을 하러 들렀다가도 사진을 한참 찍다 보면 일정 중에 가장 많은 사진을 이 한 곳에서 찍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우리가 그랬거든요. 제주에 없었지만, 그 어느 곳보다 제주와 가장 잘 어울리는 풍경을 만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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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찾아가는 길 :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일주서로 2100번길 46 (주차공간이 매우 넓은 곳입니다.) 

- 여는 시간 : 12시부터 8시까지. 목요일 휴무. (가끔 수요일도 쉽니다. 인스타그램으로 휴무일을 먼저 확인하세요)

- 유용한 tip : 동쪽에서 남쪽의 산방산이나 서귀포로 향하다 들르면 좋은 곳입니다.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탁 트인 풍경을 높은 곳에서 볼 수 있어요.  



"매일같이 고민하는 일상에 조금 다른 영감이 필요해서 떠난 트립이었습니다. 많은 곳을 다녔고, 충분히 느낀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영감이라는 건 새로운 곳에 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지식이나 정보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요.) 일상 속의 찰나와 그 순간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제주도에서도 늘 일상을 공유하는 러닝랩 매니저 분들과 함께 했기 때문에 영감을 잔뜩 받아 재미있는 상상을 해볼 수 있었어요. 우리는 앞으로 무얼 얼만큼, 어떻게 하게 될까요?"





"친구들과 종종 가던 제주도는 그저 평화롭고 쉼이 있는 곳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러닝트립으로 다시 온 제주에는 제주라는 땅을 아끼는 사람들의 멋진 공간이 있었습니다. 제주도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찾아내고 공간으로 만들고 그 안을 다시 채우는 일이 반복되는 곳. 하지만 반복해서 닳는 것이 아니라 그 때마다 다른 이야기들이 쌓이고 있습니다. 함께 만드는 스토리텔링의 힘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 온더레코드에서만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을 찾아내고 온더레코드라는 공간으로 만들고 이 곳을 채우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5년 후,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요. 지금도 곶자왈의 숲은 더 넓어지고 있고 미래책방의 책은 바뀌고 있습니다. 왓집은 아직 더 둘러볼 동네가 남았고, 온더레코드는 더 많은 교육자를 만나고 싶습니다."




"온더레코드 문을 열고 꼬박 8개월을 쉼 없이 달리고 떠난 러닝트립이었어요. 솔직히 출발할 때는 기대보다는 남겨두고 온 일에 대한 걱정이 앞섰고요. 그렇게 주어진 제주도 2박 3일은 정말 안 갔으면 어쩔뻔했죠..?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새로운 영감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는데, 제주에서 마주치는 풍경 그리고 팀과 나눈 대화들은 새로운 배움을 다른 방식으로 고민할 틈을 만들어준 것 같아요. 한 해를 마무리해가는 이 시점에 정말 필요한 시간이었습니다. 10월쯤 떠나는 러닝트립을 이 글을 읽는 여러분께도 추천하며. 다음 러닝트립을 기대해주세요!? 벌써 내년 러닝트립을 고대합니다."

지난 시리즈를 읽어보세요.
[러닝트립 1편] 세 매니저가 제주로 떠난 이유
[러닝트립 2편] 여행 vs 삶의 공간, 제주시내 다시보기
[러닝트립 3편] 콘텐츠로 말하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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