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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THE RECORD May 15. 2019

학교에서 스타트업하기

책첵토크 시즌2 #06. 한성과학고 송석리 선생님과 함께(1)

책첵토크는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 또는 자료를 보고 대화하는 자리로 해당 주제를 깊이 있게 사고하는 호스트와 함께합니다. 책첵토크 시즌 2 여섯 번째 시간은 한성과학고등학교 송석리 선생님과 함께 책 <린스타트업>을 읽습니다. 과연 디자인씽킹의 방법으로 교육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특히 이번 책첵토크에는 학교 안에서 시작하는 변화를 상상하는 교육자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스스로를 '해적왕이 될 선생님'으로 소개한 송석리 선생님은 데이터 관련해 큰 무대에 여러 번 섰던 베테랑 교사입니다. 하지만 교직의 스토리를 스타트업의 정체성과 엮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이 자리가 처음이라며, 교육 콘텐츠를 만들고 확산시키기 위한 시도의 역사를 하나하나 짚어보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전합니다. 



#0. 꿈의 시작

 송석리 선생님(이하 송) : 군대에서 속도 중심의 전략들이 재미있었습니다. 제가 근무했던 선린인터넷고등학교는 IT에서는 유명한 학교 중 하나예요. 세계적인 CEO를 키우는 것이 학교의 목표였고, 스타트업 쪽에는 이 고등학교 출신들이 많아서 창업이 자연스럽게 느껴졌죠.


 군대에서 전역하던 2011년에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났어요. 그때 당시엔 아이폰을 쓰지 않아서 그저 유명한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죠. 그의 전기를 읽으면서 창업교육을 해야겠다는 확고한 생각이 들었어요. 당시 학교에는 보안, 소프트웨어 개발, 회계 경영, 디자인으로 4개 과가 있었지만 각 과 간의 유기적인 결합은 없었거든요. 그때 교장 선생님께서 제게 큰 영감을 주셨어요. 특히 시대의 흐름을 잘 읽으셨는데 언젠가 갑자기 포트폴리오 대회를 해야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미래에는 이걸로 아이들이 대학을 갈 거라고요. 3년 후에 정말로 학생들이 포트폴리오로 대학을 가는 걸 보면서 '3년 앞의 미래는 읽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 당시엔 특성화 고등학교 모델을 만든 지 얼마 안 됐을 때거든요. 스티브 잡스랑 비슷한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1. 스타트업 

스타트업이란 극심한 불확실성 속에서
신규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들려고 나온 조직이다.


 여기에 스타트업 대신 미래학교라는 단어를 대입해볼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다면, 교육 서비스를 만들어내는 제품으로서 학교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그 답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2013년부터 동그라미 재단 등 교육과 관련한 행사에 많이 참여하기 시작했어요. 노아의 방주에 빗대어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될 것이라고 했는데 2019년인 지금 시점에서 보면 몇 개의 용어가 다를 뿐 6년이 지난 지금까지 많이 바뀌지 않았어요. 하지만 여전히 믿고 있어요. 예상하지 못한 타이밍에 충격적인 미래가 펼쳐지리라고요. 그리고 저는 그 방주를 만드는 사람 중의 하나죠. 



 그런 제게 '골든 서클'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2007년에 기업가 정신과 관련한 책을 쓰자는 이야기가 있었지만 결국 쓰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그 덕분에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교육주제를 잡고 같이 할 사람들 10명을 모아 매일 아침 7시에 모여서 수업을 했어요. 그 후 2008년까지도 진로교육이 없었기에 가능하게 할 교육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죠. 군대에 가기 전 4개월 동안 '나는 어떤 교육을 하고 싶었던 걸까?'를 정리해왔던 것과도 맥이 닿았어요. 제가 꿈꾸는 학교이자 꿈꾸는 교육이었죠. 그 결과물이 <2008년도 기업가정신 마니아 교육과정 -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으로 만들어졌고 이후 <2012 기업가정신 특별교육 활동 보고서>를 만들기도 했어요. 


 당시 교육 콘텐츠를 가지고 소통할 방법을 찾으며 여러 채널을 접했어요. 싸이월드에서 시작해서 페이스북, 네이버 블로그도 다 해봤어요. 성인 대상으로 하기에도 괜찮더라고요. 그리고 마침 '체인지메이커'와 '아쇼카'를 알게 되었어요. 언젠가 아쇼카 펠로우가 되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보니 제게 굉장히 부족한 것이 있더라고요. 바로 스케일업이었어요. 강의를 열심히 해도 내가 빠지면 확산이 되지 않잖아요. 교육 콘텐츠라는 하나의 프로덕트로서 모델이 빈약하고 자생적이지 못하다는 한계를 깨닫게 되죠.  



#2. 스케일업

  2014년 서울 미래학교 프로젝트로 싱가포르에 갈 기회를 얻었어요. 학교를 매칭 해주다 보니 해외에서 온 다양한 학교를 만날 수 있었어요. 그곳에서 앞으로 벤치마킹을 한다면 핀란드 다음은 싱가포르라는 생각을 했죠. 이미 그곳에서는 학교에서 해커톤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리고 학교로 돌아와 그 해 해커톤을 만들었어요. 학교에서 열린 걸로는 최초였죠. 사실 2년 전에 학생들이 먼저 제안한 적이 있었어요. 우리나라에선 고등학교에서 시도하는 수준의 행사를 싱가포르에서는 중학생이 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세계를 무대로 쓴다는 감각이 느껴졌어요. 국가차원에서 드라이브를 거는 변화가 가능하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죠. 40대의 교장 선생님, 공교육을 은퇴하면 사교육으로 가는 싱가포르의 크고 작은 흐름들을 보며 비전이 있는 사람이 학교를 이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었어요. 


 그때 책 <디자인에 집중하라>라는 책에 푹 빠져있을 때였어요. 이 책을 읽으며 막연하게 생각했던 걸 수업하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바로 디자인씽킹 일주일 인텐시브 코스를 등록해 배웠어요. 그리고 한 학기에 일주일에 3시간 동안  '린스타트업은 무엇인가'에서 시작해서 프로젝트까지 이어지는 수업을 했어요.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의 반응이 좋았어요. 수업에서 일어나는 비판과 평가를 댓글로 했는데 거기서도 높은 수준의 배움이 가능하더라고요.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었죠. 훌륭한 학생들에게는 다음 단계의 교육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시작해 2015년에 논문 <디자인씽킹 프로세스를 적용해 학교 홈페이지 리디자인하기>을 썼어요. 이전엔 이론만 있고 사례는 없어서 이 프로세스를 적용한 수업사례를 남기자는 의도로 쓴 논문이었거든요. 핵심은 '린스타트업'을 적용하겠다는 거예요. 


 


 제게 이 논문이 의미 있는 건 수업사례 활용도가 높다는 평가예요. 스스로도 교육 콘텐츠를 스케일업 할 준비가 되어있는 상황이어야 하는데, 다음 단계라고 생각했던 디자인씽킹이 4-5년 후에 어떻게 확산될 수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거든요. 분명 수업에서 한 사람에게라도 의미가 있다면 충분히 가치 있는 교육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지만 저는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성공적인 스타트업 회사는 빠른 성장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제 콘텐츠도 그런 모습이기를 바랐어요. 제 아이디어가 세상에 얼마나 폭발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 궁금했죠.

 

내가 바라보는 미래의 가능성, 얼마나 가치 있을까?
'증명할 수 있을까?'에서 '증명해보자!'로.



#3. 자생적 확산과 지속 가능한 교육 콘텐츠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했어요. 제 페이스북 소개를 Let’s :D - digital, data, design 으로 썼어요. 제 미래는 'D'에 달려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2016년, 천재적인 제자들이 파이썬을 너무나 좋아하더라고요. 조짐이 나타나는 것에는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 저도 공부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파이썬으로 데이터 분석을 하는 방과 후 수업을 열었죠. 방과 후 수업은 망해도 되거든요. 마지막 수업에 만드는 프로토타입은 자기 프로젝트에 공공데이터를 가져와서 발표하는 시간이었어요. 여기서 하나의 수업 사이클을 돌릴 수 있다는 걸 확인했어요. 


 하지만 좋은 아이디어에 비해 아직 킬링 콘텐츠가 없다고 생각하던 차에 파이썬 페스티벌에서 스피커로 서게 됩니다. 인생에서는 정말 중요한 순간이었어요. 파이썬 커뮤니티를 매우 동경하고 있었던 제게 교사로 이루어진 커뮤니티가 아닌 곳에서 어떻게 참여할 수 있을지를 확인한 재밌는 도전이었어요. 이어서 2017년엔 1강짜리에서 30강까지 교육 콘텐츠를 나열해볼 수 있었어요. 수업을 하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상상했던 많은 콘텐츠를 놓고 보니 MVP를 뽑을 수 있겠더라고요. 이렇게 킬링 콘텐츠를 찾았어요. 


 이제 스케일업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때쯤 유튜브가 선전하기 시작했어요. 2시간짜리의 블록 수업마다 10분 동안은 수업을 돌아보는 과정을 꼭 제안해요. 새롭게 배운 것, 좋았던 것, 말하고 싶은 것을 물어보고 제 수업에 대해 바로 피드백을 받았어요. 그리고 반영하면 수업이 확 좋아져요. 유튜브도 그렇게 시작했어요. 처음에 시작했을 때도 반응이 좋았지만 자막을 넣었더니 폭발적이었어요. 이렇게 얻은 데이터를 구글 분석으로 같이 보기도 했어요. 



 제 프로덕트는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어요. 2018년에 EBS에서 운영하는 이솦에 강의를 등록했어요. 특히 ‘왕초보를 위한, 파이썬 병아리반!’이라는 이름이 강의를 먹여 살리고 있어요. 이 강의만 10대가 보는 비율이 높아요. 학생들이 바로 쓸 수 있는 콘텐츠라는 뜻이겠죠. 그리고 최근 책으로도 엮었어요. 콘텐츠로 스케일업하는 것을 보여주고 콘텐츠 프로바이더로의 역할을 하고 싶었어요. 중고등학교에서 데이터 분석, 교육과 관련해서 떠올리면 가장 먼저 저를 찾고 연결할 수 있도록요. 이 책으로 인해 스스로 팔리는 콘텐츠를 만들었다는 자신감과 수많은 기회가 연결되리라는 기대가 생겼어요. 또 다른 완전히 새로운 곳으로 저를 보내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4. 남겨진 숙제들 

선린인터넷고등학교라는 스타트업의 주니어였던 제게 남겨진 과제는,   

먼저 적합한 사람을 태우는 것이 중요하다. 관계를 잘하자.  

학교 밖의 신뢰와 네트워킹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페이스북을 통한 만남들도 중요하다. 세상에서 살자.

학교 안의 스타트업 문화를 만들자.

다음 10년의 공교육 모델은 무엇일까? 

 한성과학고등학교에서 부장교사가 되며, IMT Lab(인왕 마운틴 랩)을 만들었습니다. 자리에서 인왕산이 잘 보여서 지은 이름이에요. 융합교육을 억지로 하기보다는 세미나 형식으로 발생되는 새로운 이야기들을 잘 포착하려고 해요. 지금 학교를 이끌어가는 경험을 하고 있는 저는 언젠가 새로운 공교육 모델로의 변화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시리즈의 다음 글에는 책첵토커들의 대화 <시도해보는 3000만큼의 방법>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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