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첵토크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ON THE RECORD Apr 23. 2019

우리 모두에게 인간이 되는 법을
가르쳐 주세요

책첵토크 시즌2 #05 인디고서원 청소년 교육팀장 유진재 님과 함께(3)

책첵토크는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 또는 자료를 보고 대화하는 자리로 해당 주제를 깊이 있게 사고하는 호스트와 함께합니다. 책첵토크 시즌 2 다섯 번째 시간은 청소년을 위한 인문학 서점 인디고서원에서 청소년 토론의 장 정세청세(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를 열어가고 있는 유진재 팀장과 함께 계간지 <인디고잉>을 함께 읽었습니다. 그 대화의 기록을 전합니다.


*이번 책첵토크를 준비하는 이야기와 앞선 대화를 먼저 읽어보세요.

(1) SKY캐슬을 무너뜨리는 정의와 희망의 힘


*'정세청세'가 더 궁금하다면 브런치를 읽어보세요.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청소년, 세계와 소통하다

내가 대한민국 고3임에도 정세청세를 하는 이유 



인디고서원 청소년 교육 팀장 유진재 님(아래 진) : '어떻게 청소년들이 이렇게 쓸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하세요. 그런데 과연 청소년기보다 지금이 더 정의로운가요. 청소년들에게는 압박에서 벗어나는 공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정의로운 이야기들을 하기 시작하면 스스로 훨씬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역사를 돌아봐도 마찬가지로 힘을 청소년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책첵토커(아래 책) : 인디고잉 62호 안에 청소년이 쓴 글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 모두에게 인간이 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다음 세대를 살아갈 청소년들에게, 이 시대를 마무리할 어른들에게 타자에게 손을 내미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행동인지 가르쳐 주십시오. 연필을 내려놓고서, 일거리를 내려놓고서 주위 사람들에게 미소 한번 지어주는 것이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모두에게 알려 주십시오.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만 이 공동체가, 이 세계가 유지될 수 있을 것입니다. 
- <인디고잉>62호 74 p 

 이 글을 읽고 떠올린 건 우리도 모르기 때문에 알려주지 못했다는 거예요. 진정한 배움이 이루어지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고민을 시작해봅니다. 그 시작점은 이미 아이들이 진정한 배움을 꼭 필요로 하고 있고, 스스로 또 잘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분명 모두는 아니겠지만 목소리를 내는 아이들을 통해서 깨닫게 됩니다. 


책 : 지금부터는 어떤 형식으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양적으로 팽창한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진 : <다라야의 지하 비밀 도서관>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시리아의 전쟁 폭격 속에서도 책을 읽고 고민하는 지하 공간이 생긴 거죠. 우리가 하는 건 일종의 혁명이자 인간성을 지키기 위함이 아닐까요.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경험들이 인간답게 고민하는 경험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러면 이 세계에서 다라야의 비밀 도서관과 같은 곳이 필요한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고 같이 공부하는 청소년들에게 물어봤더니 북한 아이들, 아프리카, 중앙 서남아시아의 굶주린 어린이들, 북극곰이라는 다양한 답이 나왔지만 절반 이상은 대한민국 청소년을 짚었습니다. 그런 공간을 학교 안에서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그렇게 동아리 정세청세가 시작되었습니다. 



책 : 청소년들 사이에서 확장이 되는 모습을 보며 언제 충분히 확장되고 있다고 느끼시나요? 또는 어떤 부분이 바뀌면 더 확장될 거라 생각하시나요?  


진 : 아우라가 계속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인디고서원이 수업부터 30년을 지속해오며 많은 청소년들이 거쳐갔지만 '모두가 정의로운 사람이 되었는가' 자문해보기도 합니다. 답답할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우라는 분명히 이어집니다. 삶에서 변화를 일으키려고 하는 모습에서요. 슬라보예 지젝은 프랑스 68 혁명이 각국에서 모인 청년들의 가슴에서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자유와 해방과 같은 가치는 그 장소에 있는 것이기도 하지만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가슴에서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책 : 인디고 서원은 인문학 교육 또는 가치교육이 목표인지, 한 번이라도 토론을 경험하고 사유의 힘을 키워주는 것이 목표인지 궁금합니다. 


진 : 타샤의 정원처럼 그라운드(ground)입니다. 인디고 서원이라는 씨앗을 뿌렸을 뿐이죠. 부지런한 정원사처럼 필요하다면 양분도 주면서 자연스럽게 토양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인디고 서원의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이라는 건 어느 정도 종속변수라고 생각합니다. 부산을 예로 들면, 동부산과 서부산 사이에 교육 환경에 따른 교육격차가 큽니다. 사실 이럴 때 어떤 교육을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공동의 문제임은 분명합니다. 함께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가에 대해 공적인 토대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도 책을 읽어보지 않았거나 자기 생각을 말해보지 않은 친구들도 많습니다. 인문학이 주는 언어의 힘은 설명할 수 있는 힘에 있기에 상대방에게 설명하면서 공적인 차원으로 가는 디딤돌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내 삶으로 가져올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것이죠. 



책 : 해보는 경험을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인디고잉의 청소년들의 목소리들이 행동해야 한다는 것으로 맺는 것을 보고 이미 충분한 사유와 행동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삶에서의 실천과 연결하는 기획이나 사례가 있었나요? 


 : 정세청세도 그 기획으로 시작했습니다. 교사와의 이야기가 필요할 때에는 교대를 찾아가기도, 학교를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레타 툰베리(글 <SKY캐슬을 무너뜨리는 정의와 희망의 힘>을 참고해보세요. 편집자 주)도 누군가 시켜서 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잠재력을 터트리는 자기 동기의 지점이 있었을 거예요. 저도 청소년들을 가까이 보면서 잠재성을 늘 느낍니다. 필요할 때 도와주는 역할을 하고 있고요. 


: 아이들은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살고 있습니다. 양구라는 지역은 겨울이 되면 눈이 엄청 많이 오는데 그때마다 차가 움직이지 못하니 중3쯤 되면 집에 있는 트랙터를 가져와서 눈을 쓸어요. 농사를 짓는 것도 힘들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죠.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기도 하고요. 자질은 똑같다고 생각하지만 역량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량의 차이를 만드는 건 어른의 역할이고요. 하고 싶은 것을 끌어내는 방법은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대학생 언니 오빠 같은 또래와의 대화입니다. 그렇게 이야기하다 보면 이런 아이디어도 나옵니다. 각 집의 가정사와 환경, 성향을 꿰고 있는 한 친구가 온 마을 친구들의 옷을 코디해 주고 싶다며, 가격에서 스타일까지 상세하게 추천합니다. 그렇게 친구들을 모아 꽤 반응이 좋았어요. 하지만 결국엔 부모님의 반대라는 장벽에 부딪혀 그만두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자신에 대한 관심을 갖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결국 어른들이 가로막죠. 같은 이유로 동아리를 교체하는 경우도 많이 봤고요. 마음을 이끌어내는 씨앗의 꽃을 어떻게 틔워줄 수 있을지 고민됩니다. 


책 : 청소년들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모이는 정세청세 같은 공동체가 없어요. 씨앗이 움을 틔우는 데에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 선생님이 있었어요. 책 <희망의 인문학>에 미국에서의 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한 마약 중독자가 감옥에 들어가며 '어떻게 하면 삶이 달라졌을까?'라는 의문을 던지며 '도시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것을 가르쳐줬으면 바뀌었을 것.'이라 답합니다. 사실 빈민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영혼을 풍부하게 하는 인문학이 아니었을까요? 우리가 영혼의 빈민이 아닌가에 대해 토론을 하다가 선생님께서 숙제를 내줄 테니 프로젝트를 해보라고 하셨고 그렇게 만들게 된 것이 정세청세입니다. 여기서 그쳤다면 사실 정세청세가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어요. 몇 번의 부침을 겪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매우 확고하게 맞다는 확신과 믿음을 주고 각각의 자리에서 리더십을 발휘해 주셨어요. 튼튼한 기둥이었죠. 

 청년이 되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비전에 대해서 5분 이상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변의 청년들을 만나며 정세청세가 가야 하는 지점에 대해 확고해졌어요. 밤에 회의하고 아침부터 전국을 다니는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가는 방향이 맞다고 하는 믿음이 있을 때 제가 만나는 청소년들은 훨씬 더 많은 힘을 받아요. 내 뒤에 누가 있다는 든든한 울타리 같은 거죠. 그런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책 : 게임으로 정세청세의 가치교육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게임을 재미를 위해서 하는 활동이라고 생각하지만 '게임 인문학'이라는 장르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게임과 영화의 차이를 떠올릴 수 있는 지점이 있습니다. 영화는 사람이 정해져 있어 내가 아닌 타자에게 이입하는 반면 게임은 환경이 있고 내가 들어가서 선택하고 경험합니다. 게임에 대한 가치를 다시 볼 수 있는 대목이죠. 스스로의 선택에 반응하는 것을 보면서 이해하는 과정과 다양한 환경에 대한 시공간의 제약에 부딪히는 경험과 자신이 있는 곳으로 환경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에 더 적극적이고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게임이 교육의 가치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을 통해서 삶을 디자인하는 것을 넘어서 사회구조와 상황을 게임의 한 모델로 만들어서 문제를 게임으로 풀고 현실에 적용해보면 어떨까요? 현실에서의 시행착오와 리소스는 타격이 크지만, 게임은 여러 번 실험해볼 수 있으니까요. 


 : 좋은 학교가 될 수 도 있겠어요. 


책첵토커들은 다음 세대를 만나며 어떤 고민을 하고 있나요? 

저 또한 힘을 줘서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가치에 자연스럽게 공감하는 환경과, 이를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고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저 해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시작하면 주변의 문제를 발견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정세청세의 청소년들이 정말 귀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의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면 행동하고 실천해도 속 없는 프로젝트가 되기 마련이거든요. 프로젝트에 앞서 나로 시작하는 동기부여의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사이에 1년을 쉬어간다고 하면 생각보다 단절을 두려워하는 친구들을 많지 않아요. 사실 이런 시간이 정말로 필요한 친구들에게는 잘 닿지 못한다는 거예요. 부모님께서 수없이 상담을 하고도 앞만 보고 달려야 하는 시기에 1년을 멈추는 선택을 어려워하시기도 하고요. 1년 동안의 불안을 견디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상과 현재의 행복을 많이 느끼게 하는 거예요. 경쟁만 하고 숨 막히게 사느라 정작 자신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지 못했어요. 그런 시간을 최대한 많이 가져보는 거예요.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걸 도구로 하기도 하고, 형식보단 자발적인 활동들로 가득 채우는 거죠. 시간을 선택한 아이들에게 더 많은 경험을 주려고 해요. 
새터민을 만나는 경험을 처음 하는 친구들은 너무 다른 것 같아 불편해하다가도 이런 경험 이후엔 프로그램에 새터민이라는 키워드를 꼭 넣으며 협업을 시작하기도 하더라고요. 상상을 현실로 만들 때 작은 계기들을 쌓아가려고 해요. 



변화를 위한 도구를 만드는 분, 커뮤니티를 만드는 분, 중고등학교 사이 1년 방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분, 영어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셨던 분, 홈스쿨링을 하는 학부모, 의미 있는 해외 교육과 학교 사례를 알리는 분, 아이들의 다양성과 창의성을 지지하는 단체를 운영하는 분, 교육을 전공하는 분, 교육 정책을 고민하는 분, 농산어촌 청소년들을 만나는 분까지. 다음 세대를 만나는 다양한 스펙트럼 속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책첵토커분들을 응원합니다. 




매주 수요일 온더레코드의 뉴스레터가 새로운 배움을 전합니다.

온더레코드의 소식이 궁금하거나, 자극이 필요하다면 아래 링크를 클릭해보세요.

http://bit.ly/ontherecord-weekly

매거진의 이전글 난쟁이가 공을 쏘아 올린 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