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고 선택권을 높이는' 교사 커뮤니티를 소개합니다.
씨프로그램은 지난 5년간 러닝랩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필요한 배움에 대한 여러 시도를 지켜봐 왔습니다. 동시에 의미 있는 실험이 지속되기 위해서 필요한 자원과 환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습니다. 수많은 만남과 고민 끝에 러닝랩 펠로우십을 시작합니다. 러닝랩 펠로우십은 다음 세대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배움의 환경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팀을 대상으로 다양한 지원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유쓰망고는 학습자 중심 배움을 실천하는 것을 미션으로 삼는 교사들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전국 단위 확장을 목표로 하는 망고T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앞으로 러닝랩 펠로우십을 통해 전국 곳곳에서 학습자 중심 배움을 실천하는 교사 모임을 찾고 각 네트워크를 연결 지어 학습자 중심 배움의 환경을 확장하는 데에 기반을 닦을 예정입니다. 그 과정의 첫 기록으로 유쓰망고가 만난 전국 곳곳의 교사 네트워크를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미래를 주도할 아이들에게 어떤 교사가 필요할까? 가르치고 배우는 형태, 배워야 할 지식이 달라짐에 따라 교사들의 역할이 달라지고 있다. 책 <디퍼 러닝(Deeper Leanring)>에서는 학생들에게 피드백을 제공하고, 학생들이 스스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도우며, 도전적인 목표를 제시하는 ‘액티베이터로서의 교사’로 변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액티베이터(Activator), 즉 학생들을 제 기능대로 움직이게 하고, 발휘하도록 작동시키는 역할이 강조된다.
유쓰망고가 주목하는 부분은 한국에도 교사의 역할과 배움의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교사들의 네트워크가 전국 곳곳에 있다는 것이다. 유쓰망고는 학습자 중심 배움을 실천하는 데에 교사가 중요한 역할을 하며, 이들이 디퍼 러닝의 관점을 갖고 청소년을 만나고 이런 관점이 학교 전반의 문화로 자리 잡을 때 교육의 변화가 생길 것이라 믿는다.
‘망고T 프로젝트’는 11월부터 6개월간 디퍼 러닝의 6가지 요소*를 가장 잘 보여주는 교사 모임을 찾고 각 모임이 학습자 중심 배움의 실현을 위해 추구하는 요소는 무엇인지, 현장에서 작동하는 기술과 전략은 무엇인지 배우는 여정을 시작한다.
*디퍼러닝 6가지 요소
모든 학생들이 성공할 수 있게 하라 (Set Up Every Student for Success)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고 선택권을 높여라 (Increase Student Voice and Choice)
또래 간 배움을 장려하라 (Encourage Peer-to-Peer Learning)
학생들의 배움을 공개하라 (Make Student Work Public)
배움의 과정에 집중하라 (Focus on the Process of Learning)
현실 세계와 연결하라 (Make Learning Relevant)
그 첫 번째 주인공은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고 선택권을 높여라 (Increase Student Voice and Choice)'의 실천을 엿볼 수 있는 광주 PBL* Planet(이하 ‘플래닛’)이다.
*PBL(Project-based Learning): 프로젝트 기반 수업. 지식 전달 위주의 강의식 수업이 아닌, 실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주제를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통해 관련 지식을 배우게 하는 교수법
PBL Planet의 대표인 성덕초 교사 박재찬 선생님은 2018년 전라도 광주의 2~30대 젊은 초등교사 10명과 함께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배움의 주도권을 넘겨줄 수 있을까?’를 논의하다 플래닛을 결성했다. 전문적 교원학습공동체로 운영되고 있는 플래닛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전문적 교원학습공동체: 전문적 학습공동체는 교원의 전문성을 신장시키고 협력적 문화를 형성하여 학생중심 교육과 학교교육의 질을 높이는 학교혁신 일반화 정책의 하나이다. (출처: 경기도교육청)
PBL 탐험가들은 궁금했습니다.
아무것도 일궈지지 않고, 아무것도 세워지지 않은 행성을 찾았습니다. 우리는 학생들이 배움의 주인이 되어 자기 주도적으로 배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PBL 속 학생들은 자신의 필요와 목적에 따라 스스로 배웁니다. 친구들과 함께 경험하며 배움의 기쁨을 맛보는 이곳은 PBL Planet입니다.
수업을 마친 선생님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장소는 때마다 다르지만 오후 5시면 어김없이 플래닛 멤버들이 약속 장소에 도착해 있다. 두어 시간가량 진행되는 모임에서 프로젝트 수업에 관한 책 읽고 성찰하기, 현재 진행 중인 각자의 수업 현황 공유하기, 계획 중인 프로젝트 주제 선정과 실천 다짐하기 등을 하다 보면 금방 헤어질 시간이 된다. 격주로 모임을 진행하는 플래닛은 꽤나 자주 모임에도 불구하고 늘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만큼 나누고 싶은, 배우고 싶은 것들이 많은 이유일 것이다.
유쓰망고가 플래닛을 만나러 간 날은 일주일 후에 광주교대부설초등학교에서 진행할 구대현 선생님의 공개수업에 관한 논의가 한창이었다. 플래닛 멤버이기도 한 구대현 선생님은 한 학기 동안 ‘로봇과 인공지능’이라는 주제로 아이들과 꾸려왔던 프로젝트 수업을 공개하기로 했다. 그런데 아직 수업 명칭을 정하지 못했다. 구대현 선생님은 물론 플래닛 멤버들, 꽤나 심각하다. 코딩을 이용한 로봇 조정하기, 인공지능과 로봇의 작동원리 이해하기 등 여기저기서 제목 짓기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한 선생님이 묻는다. “아이들한테는 물어보셨어요?”
그렇다. 프로젝트의 처음부터 끝까지 아이들에게 묻고 논의하면서 수업을 완성해 가는 것. 그것이 PBL 플래닛의 원칙 중 하나다. 더불어, 유쓰망고가 최근 시작한 디퍼러닝 무브먼트의 6가지 요소 중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고 선택권 높이기’(유쓰망고 디퍼 러닝 연재 글 <선택권으로 깊이 더하기> 참고) 와도 일치하는 방향이다.
공개수업은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다. 40분 혹은 45분 동안 1분의 공백 없이 꽉 짜인 알찬 수업을 보여줘야 한다. 그래야 보는 사람들의 만족도가 높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참석자들의 착석 위치, 음료와 다과, 수업 평가지와 볼펜, 더불어 그날의 옷차림까지 세심하게 준비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플래닛 멤버들의 공개 수업 관련한 논의가 어째 심상치 않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잘 보여 줄 것인가’, ‘보여줄 수 있는 결과물들은 얼마큼 준비되어 있는가’를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은 가상의 현실인 이 상황에 얼마나 몰입하는가’에 대해 설전을 벌이고 있다.
구대현 선생님의 경우, PBL 수업 운영 3년 차지만 여전히 교사가 설정해 주는 ‘문제적 상황’과 아이들 스스로 문제를 찾아 설정하는 ‘프로젝트 선택’에 관해 고민하고 있었다. 플래닛의 다른 선생님들 역시 비슷한 딜레마가 있었다. 학생들의 참여를 높이는 방안으로 프로젝트 수업을 선택했으나, 프로젝트 수업이라고 해서 아이들이 무조건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억지스러운 상황을 전제로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할 경우, 프로젝트 수업의 효과가 발휘되지 못하고 방법과 절차만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플래닛 멤버들은 재미와 흥미로 아이들의 참여율이 높아졌다고 해서 동일한 배움의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니니 이 또한 경계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일부 교사 중에는 프로젝트 수업을 ‘아이들끼리 뭔가를 하도록 내버려 두면 저절로 굴러가는 수업’이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프로젝트 수업을 가장해 교실 안에서 아이들이 ‘방치’되는 경우다. 더불어, 세밀하게 계획이 잘 되어 있는 프로젝트 수업이라 하더라도 학생들의 배경지식과 인지능력을 교사가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체크하지 않고, 기초 지식에 대한 습득 없이 재미로만 끝나는 것에도 유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지식과 참여 사이의 간극을 줄일 수 있는 역할은 온전히 교사의 몫! 계획 단계에서부터 학생들의 특성과 개별적 분석이 반드시 필요하다.
강의식 수업이 아닌 프로젝트 수업을 한다는 것은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모험이다. 완전히 교실을 뒤집는 일이기 때문이다. 매끄러운 진행을 했지만 완전히 망해버리는 수업이 될 수도 있다. 예측 불가능한 수업,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 수업을 하는 이유는 뭘까?
프로젝트 수업을 택한 많은 교사들은 강의식 수업을 진행할 때보다 훨씬 더 많은 교과 연구와 수업 준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젝트 수업을 진행하는 이유는 미래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역량을 길러주기 위함이라는 전형적인 답을 하면서도 자신을 위해 택한 길이라 고백하는 교사들이 적지 않다. 교사의 수업 만족감과 높은 자존감, 성취감과 행복감은 교실 현장에, 아이들에게 전이되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수업을 한다는 것은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두려우면서도 설레는 도전이다. 새로운 방식의 배움, 결과나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과정의 어디쯤에서 함께 만들어 가는 수업. 말하지 않던 친구가 입을 떼기도 하고, 고민이라고는 1도 없어 보이던 친구가 골똘히 관찰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무기력해 보이던 친구가 그 시간만큼은 활력을 쏟고 몰입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이유에서 교사들은 프로젝트 수업을 택한 것에 대해 점차 긍정적인 확신 해 나간다.
프로젝트 수업만이 완전하고 완벽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교사가 결정하고 학생들은 충실히 수행하는 기존의 교육 방식에는 늘 아쉬움이 있었다고 플래닛 멤버들은 토로한다. 교사 주도의 PBL은 일방적인 강의식 수업과 다를 바 없다. 문제를 풀어가는 형식이 시험지가 아닌 활동으로 치환됐을 뿐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플래닛 멤버들은 학생들에게 더 많은 권한과 책임을 주기 위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끊임없이 한다.
이 프로젝트는 지금 누구에 의해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있는가?
결정된 사항은 서로의 의견이 충분히 수용된 것인가?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행동을 결정하고 있는가?
물론, 어렵다. 자기결정권을 가져보지 못한 친구들에게 권한을 주는 행위는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의사결정, 자기관리, 자기성찰 등을 훈련하지 않는다면 사회에 나가 어떤 결정들을 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결국 지금의 연습은 학습을 더 잘하기 위한 훈련이 아닌 ‘삶을 살아가는 힘을 길어 주기 위한 것’ 임을 플래닛에서 만난 교사들은 알고 있었다.
'말은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고, 사람은 태어나면 서울로 보낸다'라는 말이 있다. 대한민국 인구 중 7~80%가 서울에 거주하고 있으니, 지역 불균형이 심하다는 이야기는 이제 진부할 정도이다. 그 지역에서 태어나 자라고 교육받은 친구들이라면 지역을 기반으로 자신들이 살아갈 지역을 디자인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첫 번째 콘텐츠로 소개한 광주 PBL 플래닛은 더욱 의미 있었다. 광주, 전라 지역 출신의 교사들이 지역의 아이들을 배움의 주체로 길러 내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내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에 갈 마음은 없다고, 해외나 타 지역에 배울 것들이 많다면 배움을 다시 가지고 고향으로 오겠다는 선생님들. 지역을 지키고 있는 선생님들이 있다면, 분명 아이들은 돌아올 것이다. 아니, 그곳에 남아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디자인하며 살아가는 아이들이 많아질 것이다. 광주라는 행성에서 또 다른 별들이 빛나고 있음을 느낀다. 플래닛을 만났던 날 활발하게 논의했던 구대현 선생님의 공개수업 후 인터뷰 기록을 남기며 글을 마무리한다.
글. 유쓰망고 전략기획디렉터 허경진
편집. 씨프로그램 러닝펀드 매니저 문숙희
구대현 선생님 인터뷰: PBL 공개 수업 그 후
유쓰망고가 플래닛을 만났던 날 활발하게 논의를 나눴던 공개수업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진행하며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를 물었다.
Q. 이번 PBL 수업에서 새롭게 깨달은 점이 있다면?
교사가 적당히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소재만으로는 아이들을 동기부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번 수업의 주제는 ‘햄스터 로봇’으로 충분히 흥미로운 주제라 생각했다. 하지만, 교사는 성취 기준 달성을 항상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재미만을 기준으로 결정할 수 없다. 이는 결국 아이들이 완전히 재미있어할 소재가 아닌 ‘조금 재미있을 법한 소재’를 선택하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고민과 반성이 든다.
Q. 수업을 설계할 때 가장 고려한 점이 무엇인가?
PBL을 하면서 학생들에게 필요한 요소를 적절히 주면, 직접 가르치지 않아도 어떻게든 배운다는 것을 알았다. 학생들이 로봇을 움직이고 작동하기 위해 내 유튜브 영상 강의도 많이 봤지만, 그것 못지않게 서로에게 배우는 것이 많다. 수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야 그거 어떻게 하냐?"다. 영상을 보는 것보다 얼른 친구에게 물어 배우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그래서 PBL을 설계할 때는 스스로 배울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이번 햄스터 로봇 PBL은 솔직히 실패다.
Q. 이번 수업이 실패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업에서 의도한 바는 인공지능이나 로봇에 대해 아이들이 생각의 변화를 갖기를 바랐는데, 두드러지지 않았다. 최종 결과물도 만족스럽지 않았는데, 지금까지 수업에서 해온 내용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일 진행한 수업 내용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서, 단편적인 배움으로 남음 것 같아 아쉬웠다. 단편적인 배움에 머물지 않고 내가 배운 것들을 연결시키는 근육을 기르는 방법이 PBL이라 생각한다. 이번 수업을 통해 학생 스스로 관심과 흥미가 있는 분야에서 시작하는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PBL Planet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 PBL 플래닛 공식 홈페이지: http://pblplanet.org/
- 박재찬 선생님이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달리쌤의 5분 교육학>, 블로그 <달리플래닛>
- 구대현 선생님이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 <알파쿠의 유튜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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