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학생이 성공할 수 있게 하는' 교사 커뮤니티를 소개합니다.
명절을 맞아 가족들이 모이면, 아직도 뭇 어른들이 용돈을 주며 하는 덕담이 있다. ‘공부 열심히 해라’와 ‘커서 성공해라’. 그 외에도 학습과 관련해 수많은 덕담이 있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성공한다’는 공식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 깊이 자리 잡혀 있는 듯하다. 10~20여 년 전이라면 통했을 법한 이 공식. 전교에서 상위권 등수를 유지하고 이름값 높은 대학에 들어가 대기업에 입사하면, 그것이 곧 성공으로 귀결되는 공식에 우리는 반문해야 한다. 공부를 잘하면 성공하는 삶을 사는 것인가?
‘성공’의 모습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을 전제할 때 우리는 “모든 학생이 성공할 수 있게 하라”라는 문장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다. 모든 학생이 각자의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어야 배움이 일어난다. 즉, 교사는 모든 학생들의 잠재력을 믿고, 그들 역시 자신의 잠재력을 믿고 발견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야 한다. 망고T프로젝트 두 번째 글에서는 모든 학생이 성공할 수 있는 배움의 환경을 만들기 위한 방법을 엿볼 수 있는 전남 학습자중심교육연구회(회장 박희진, 이하 ‘연구회’)를 소개한다.
연구회는 ‘어떻게 하면 학생의 학습이 잘 일어날 수 있게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서 시작했다. 2017년 박희진 선생님을 중심으로 지역에 몇몇 교사로 시작한 모임이 올해로 3년 차, 현재는 30여 명에 달하는 회원이 함께 하고 있다. 신규교사부터 경력이 긴 교사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섞여 학습자 중심 수업의 개념과 오해, 과정 중심 평가, 학급경영 등 ‘학생’이 주체가 되는 교실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에 대해 탐구하며 연구회를 성장시켜 왔다.
유쓰망고가 연구회를 만나기 위해 순천으로 향한 날은 순천 왕지초 손상원 선생님의 무역 놀이 수업 실습이 한창이었다. 5~6학년 사회 시간 ‘무역과 우리 경제’ 수업을 놀이로 풀어낸 수업으로 학생들이 각자 역할을 맡는 롤 플레잉(role playing)으로 진행된다. 교사의 개입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학생들의 자유도를 최대한 높여 줬을 때, 우리 모둠에서 보유하지 못한 자원을 얻기 위한 아이들의 기상천외한 아이디어와 세일즈로 난관을 헤쳐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손상원 선생님은 놀이 수업을 자주 활용하는 이유와 그 노하우를 전해줬다.
통상적인 개념 전달 방법을 한번 비틀어 사용하면 그게 바로 놀이가 됩니다. 반전과 비틀기만 잘 활용해도 아이들에게 또 다른 몰입과 역동을 일으킬 수 있죠. 모든 아이들의 동기를 유발하고 나와 지식의 연결점을 찾게 할 수 있는 방법이에요. - 순천왕지초 교사 손상원
수업 중 놀이를 적용하는 것은 학생 참여도를 높이고, 직접 몸으로 체득함으로써 설명이 복잡한 상황에 대해 이해도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무역 놀이 같은 경우는 개인마다 보유하고 있는 역량에 따라 모둠에서의 역할을 나누기 때문에 자신의 역할에 더 몰입하게 된다. 세일즈를 하는 친구, 자원을 가공하는 친구, 판로를 개척하는 친구 등 모둠에서의 역할에 빠져들게 되면 어느새 몸으로 지식을 익히게 된다.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흥미롭고 재미난 수업, 교사에게는 어떨까? 우선, 품이 많이 든다. 교과 내용을 놀이로 풀어내는 작업부터 놀이 재료 선택, 모둠 구성, 시간대별 놀이 환경 재배치 등 치밀한 수업 설계를 하지 않으면 도떼기시장이 되기 십상이다. 놀이 수업을 꺼리는 교사는 주로 놀이를 잘 몰라서, 아이들의 경쟁심만 부추겨서, 진도를 나가기에도 시간이 빠듯해서 등의 이유를 든다. 집에 있을 때도 늘 수업 준비를 한다는 손상원 선생님은 왜 이런 번거로운 수업을 자주 활용할까?
연구회 회원들은 학생 개개인의 성취감과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교실에서 개별화 수업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놀이 수업은 학생 참여도, 재미, 흥미만으로 성공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교사가 학생 개개인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갖추어야 가능한 고도화된 수업 설계의 과정이 있다. 수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실시간 피드백과 질문을 통해 학생 간 의사소통을 촉진하고, 개개인의 속도에 따라 목표에 도달할 수 있도록 각자의 방식으로 성취를 표현할 수 있는 수업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연구회 회원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다.
교사는 수업을 잘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항상 고민하고 연구하죠.
그런데도 자신의 수업을 쉽게 공개하기
어려워하는 이유는 스스로 교육에 대한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학생을 좋은 학습자로 키워내고 싶은
마음만은 간절하죠.
순천부영초 교사이자 교원대 강사로 활동하고있는 박희진 선생님의 말이다. 선생님은 이번 세미나에서 학습자중심교육에 관해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흔히 초등교육에서 학습자 중심 배움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은연중에 학습자 중심 배움을 프로젝트 수업으로 한정시키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수업은 개인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이나 관심사를 중심으로 직접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주체가 학습자인 것이 분명히 눈에 보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학습자중심교육의 형태는 다양하다.
교과과정을 중심으로 하는 개별화 수업도 학습자중심교육의 한 방법이다. 앞서 소개한 손상원 선생님의 사회 시간이 그렇다. 놀이나 체험을 통해 모든 학생이 개념을 소화하고 스스로 사고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는 방식이다. 교사가 주도하는 놀이 수업이 아니라, 학생들과 함께 만들어간다. 학습자중심교육은 학생이 중심에 있는 배움이다. 학생이 주도적으로 사고하고, 질문하는 과정으로도 충분히 배움의 주체가 될 수 있다.
학습자중심교육을 새로운 교수법으로 오해하거나 착각하는 경우를 흔하게 보는데, 이는 교사의 교육 철학이다. 연구회는 아래와 같이 학습자중심교육의 세 가지 방향을 세웠다.
1. 수업은 학습자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2. 교사는 학습자 개개인의 학습동기를 고려해야 한다.
3. 교사는 학습을 촉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학습자의 개인차에 따라 교사의 행위가 달라져야 함’을 늘 염두에 둔다. 유쓰망고가 전하고자 하는 디퍼 러닝의 요소 중 ‘모든 학생들이 성공할 수 있게 하라’ (참고 글: 디퍼 러닝 연재글(1) N명의 청소년을 위한 하나의 교육을 찾아서)라는 명제와 닮았다. 언어가 다를 뿐 결국 ‘한 학생이 살아감에 있어 성공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어떻게 학습 훈련이 되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결을 같이하고 있다. 이를 실천하기 위해 우선 되어야 하는 것은 학습자에 대한 이해다.
아래 질문은 연구회 회원들이 학기 초에 새롭게 만나게 되는 아이들을 알아가기 위해 만든 설문지다. 누구와 살고 있는가, 학교에서 가장 친한 친구 이름 쓰기, 알레르기가 있는 음식 안내 등의 내용만 담긴 가정통신문의 질문과는 사뭇 다르다.
- 나는 공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 나는 올해 / 이번 학기에 무엇을 기대하나요?
- 나는 정말로 무엇을 배우고 싶은가요?
- 학교에서 나를 짜증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 공부에 대해 걱정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 선생님이 나에 대해 무엇을 알기를 원하나요?
- 학교에서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나요?
- 공부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나를 자극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 올해 목표는 무엇인가요?
- 공부할 때 선생님이 나를 어떻게 도와주면 좋을까요?
질문을 통해 각 학생이 어떤 목표의식을 가졌는지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는지 어떤 동기부여가 필요한지 등을 확인한다. 이는 개별 학생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한 시작점이 된다. 학습자를 ‘반(Class)’ 단위로 바라보지 않고 개개인으로 바라보는 태도와 이를 뒷받침할 기술을 갖추었을 때 학습자중심교육을 실현하는 개별화 수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시작하며 ‘열심히 공부해서 성공하자’라는 표현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성공이 뭔지 그 성공을 위해 어떤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나를 위한 안내를 받은 경험이 없다. 사회가 정한 성공의 기준에 따라 무작정 열심히 해야 할 공부를 해나갈 뿐이다. 내가 정의한 성취의 기쁨을 맛볼 새도 없이 말이다.
학생들이 배움의 주체가 되었을 때, 새롭게 알게 되는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배운 것을 곱씹고(깊이 생각하기), 질문하고(탐구하기), 생활에서 적용(실제 세상과 연결하기) 해 보지 않는다면 그것은 죽은 지식이다. 학생에게 필요한 배움이었는지의 여부 역시 이 과정을 거쳐 학생이 결정해야 한다. 이 날 방문한 연구회 세미나에는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있었다. 초등 교사를 꿈꾸는 학생들이 연구회 선생님들이 쓴 <학습자중심교육 진짜 공부를 하다>라는 책을 읽고,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세미나에 참여한 것이다. 자신의 배움을 찾아 나선 이들이야말로 ‘학습자 중심 배움’을 실현하고 있는 거 아닐까.
이제 열심히 공부해라는 말 대신 ‘관심 있는 것을 탐구해봐’, 성공하라는 말 대신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봐’라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하기를 권한다. 아는 것을 온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학생들이 드러나기를 바란다.
글. 유쓰망고 전략기획디렉터 허경진
편집. 씨프로그램 러닝펀드 매니저 문숙희
전남 학습자중심교육연구회 더 알아보기
‘어떻게 하면 학습자중심교육을 할 수 있을까’, ‘좋은 학습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과 연구를 하는 연구회. <미래교육 미래학교>, <학습자중심교육 진짜 공부를 하다> 등의 책도 출판했다. 올 연말에는 6세부터 9세까지 배움의 머리를 키우는 <학교 적응 놀이> 책도 출간된다.
[참고링크] 희진 쌤의 지식창고 블로그 https://heejinssam.blog.me/220002219529
연구회가 제안하는 ‘학습자중심교육, 이렇게 해 보자!’
1. 교사의 역할 변화를 위해
- 학생이 학습 과제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하기
- 학생들이 많은 발견을 할 수 있도록 교사는 최대한 말을 적게 하기
- 학생의 참여와 동기를 자극하는 주의 깊은 수업 설계 하기
- 학생 상호 간 배우도록 격려 및 학습 촉진할 긍정적인 분위기 창조하기
- 학습을 증진할 평가방법 활용하기
2. 학습에서 교사와 학생의 힘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 학생이 수업 활동 설계 참여 및 수업 참여 방법을 설정하게 하기
- 학생이 학습과정과 학습량에 대한 선택할 수 있게 하기
3. 학습 내용이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서 활용하는 것으로 바뀌기 위해
- 학습할 수 있는 방법(학습전략) 개발하기
- 보조자료를 사용하여 할 수 있는 학습 전략 개발하기
- 동료와 함께 학습하는 방법에 대해 배우기
4. 학생들에게 학습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하기 위해
- 학습을 위한 학생의 책임을 강조하는 학급 풍토 조성하기
- 학급 풍토 문제에 대해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게 하기
5. 진정한 평가에 대한 목적과 과정을 생각해 보기 위해
- 학습을 장려하기 위해 평가의 목적 이용하기
- 학생의 평가에 대한 스트레스 낮추기
- 평가결과를 학습에 대한 접근으로 활용하기
경진커의 탐방 노트
순천만의 갈대숲이 황홀하게 흔들리는 계절이었다. 한반도 땅끝마을 해남, 전교생 38명인 송호초가 첫 발령지인 김한결 선생님은 지난 3년간 아이들과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고 하셨다. 미술을 전공한 김한결 선생님은 아이들이 마음껏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는 캔버스로 학교 건물 외벽과 담벼락을 택했다. 교직원들과의 마찰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운동장에서도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풍경을 한껏 느끼며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고 싶었단다.
‘우리들의 시선으로 명화 보기’는 김 선생님 수업에서 흔한 활동이다. 우리에게 미술시간은 르네상스, 인상파, 초현실주의 등 미술의 역사를 배우는 시간으로 몹시 지루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런데 김 선생님의 수업은 다르다. 아이들은 그림을 통해 ‘보고, 느끼고, 그 감정 그대로를 내 것으로 가져오기’를 한다. 그림 읽어보기, 느낌 말하기, 그림에서 재미난 요소 찾아보기 등 그야말로 ‘우리들만의 시선’으로 재해석된다. 학습자중심교육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내 수준, 성향, 관심에 맞춰 보고, 그리기, 말하기, 쓰기 등의 표현을 해 낼 수 있는 것.
김한결 선생님과 그림을 그리고, 명화를 본 친구들이 훗날 그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며 살아갈지가 기대된다. 그 짧고 강렬한 시간을 통해 세계를 뒤흔드는 아티스트가 탄생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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