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학습은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까요?
삼인행 필유아사 三人行 必有我師, 공자의 <논어> 중에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그 가운데 반드시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라는 고사 성어가 있다. 세 사람만 모여도 항상 서로에게 배울 점이 있으니, 그중 좋은 점은 골라 따르고, 좋지 않은 것은 거울삼아 고쳐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서는 배움이 일어나는 법. 내 옆에 있는 누구라도 스승이 될 수 있다.
망고T프로젝트 세 번째 글에서는 내 옆에 있는 친구로부터 배우고 함께 학습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또래 간 배움’을 몸소 실천하는 충남지역 교사모임인 배움의 숲 나무학교(대표 이우경, 이하 ‘나무학교’)에서 만난 학생 또래 배움 사례를 소개한다.
아이를 키우는 교사는 숙박 연수나 주말 연수에 쉽게 참여하기 어렵다.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서’가 가장 큰 이유다. 듣고 싶은 연수장에 아이를 돌봐줄 누군가가 있다면, 주저 없이 배움에 참여할 교사가 많다. 이런 문제를 파악하고 진행된 연수가 있다. 천안청수고(교장 이하영)에서 열린 ‘제4회 나무학교 수업 축제’가 그것이다. 이곳에서 유독 왁자지껄한 교실은 학습하는 교사를 위한 자녀 돌봄 교실로 운영되고 있었다. 유아부터 초등 고학년까지 한 교실에 모여 한창 놀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돌봄 교사가 앳되다. 누구일까 궁금했지만, 호기심을 잠시 접어두고 축제가 열리는 대강당에 들어섰다.
대강당에는 100여 개의 부스가 있었고 교사들의 열기로 꽉 메워져 있었다. 말 그대로 축제 그 자체였다. 다채로운 부스 중 코너에 있는 작은 부스가 눈에 띈다. 역시나 돌봄교실의 선생님과 비슷한 또래처럼 보이는 선생님들이 교육학 관련 자료를 전시해 놓았고, ‘교사 격려’ 코너라고 쓰여있었다. 현장에서 사진을 찍고 바로 인화해 스스로에게 격려하고 싶은 말을 적으라는 안내를 하고 있었다. 부스를 운영하는 팀이 10명쯤 되어서 많은 편이었는데, 잔뜩 긴장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서 호기심이 생겼다. 신규 교사인가?
그리고 그 이유를 찾았다. 돌봄 교실의 교사와 교사 격려 코너를 운영하고 있는 팀 모두 고등학생들이었다. 돌봄 교실 교사는 청수고 유아교육 동아리 친구들을 비롯해 유치원 교사를 꿈꾸는 예비 교원들이었다. 교사 격려 코너 운영 팀 역시 천안지역의 고등학생들로 ‘교육학 클러스터 수업’을 이수한 학생들이었다. 실질적으로 교사가 무엇을 고민하고 있는지, 어떠한 내용들을 배우고 싶어 하는지 알아보자는 목적으로 부스를 운영했다고 한다. 이 친구들 역시 교사가 되기를 꿈꾸고 있었다.
나무학교 2기 출신인 청수고 국어교사 백순우 선생님(이하 백 선생님)은 교사를 꿈꾸는 고등학생들에게 ‘교육학은 재미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알려 주고 싶었다. 마침 충청남도교육청에서 고교학점제를 기반으로 운영되는 지역 공동교육과정을 개설할 학교를 찾았다. 이 사업은 ‘고교학점제 클러스터 과정’이라고 불리는데, 하나의 학교에서 개설이 어려운 전문 과목을 인근 학교 3~5개교가 함께 개설하는 것으로 교과교실제의 학교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클러스터 과정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형태로 진행 가능하다.
백 선생님은 이 과정을 활용해 매주 화요일 저녁 3시간(18:30~21:30)씩 34차시 교육과정을 운영했다. 개별 및 모둠 프로젝트, 협동학습, 토의토론, 발표 등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을 통해 철저하게 학습자 중심의 배움을 만들었다. 본인의 관심사와 진로를 기반으로 자발적으로 신청한 과정이다 보니 중간 이탈자는 없었다.
백 선생님은 교육철학, 교육사, 교육사회학, 학습이론, 현대사회와 교육, 교육 문제 해결 등의 어려운 주제를 재미있게 배울 방법들을 고민했고 그중 하나로 관심 있는 교육사상가를 모둠별로 선택해 깊이 있게 탐구하는 활동을 했다. 사상가의 출생과 자라온 환경, 교육사상가가 되기까지 영향을 미쳤던 개인 안팎의 요소 찾기 등 기본적인 자료 조사를 한 뒤 그 내용을 바탕으로 실제 그 인물이 되어 여러 문제를 고민하고 선택하는 경험을 했다. 이어서 그 사상가의 철학을 현 한국 교육에 적용해 보고 우리 교육의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활동으로 연결했다. 참여한 친구들 모두 그 과정에 푹 빠져 조사하고, 사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려워하기보단 즐기는 모습을 자주 목격할 수 있었다
공동교육과정으로 교육학을 배운 15명의 학생들은 교사가 되면 국어, 사회문화, 영어, 체육 등 다양한 과목을 가르치고 싶다고 했다. 고등학교 교과에는 철학 수업이 없지만 철학을 가르치고 싶다는 친구도 있었다. 다른 과목을 선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교육학을 선택한 까닭을 물어보니, 대부분 이전에 또래 학습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4학년 때 배우는 ‘분수의 나눗셈’을 잘 못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처음엔 친구를 가르쳐 준다는 게 부끄럽기도 하고, 친구 자존심이 상할까 봐 조심스러웠는데, 어느 순간 ‘어떻게 하면 나눗셈을 쉽게 알려주지?’라는 것을 제가 고민하고 있더라고요. - 천안 중앙고 안유진 학생
다른 친구들 역시 비슷한 고백이 이어졌다. 혼자만 이해한 내용을 모둠원에게 설명해주며 개념이 더욱 명확해지고, 같은 주제로 친구들과 의견을 주고받으며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가르침’의 경험을 통해 교육에 대한 흥미가 생겼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관심이 깊어져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또래학습의 친구의 학습을 도우면서 동시에 개인의 학습 이해도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실제 교실 현장은 정해진 국가 수준 교육과정을 일정 시간 안에 이수해야 하기 때문에 교사가 각 학습자 수준에 맞춰 개별화 수업을 진행하기에는 녹록지 않다. 교사는 보통의 학생들이라는 기준을 세우고 그에 맞춰 수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모두 다른 학생들이 앉아있는 교실에서 ‘평균적인 학습’은 있을 수 없다. 이런 간극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또래 학습이 적극 권장되기도 한다. 또래 학습을 하면 배경지식이 비슷한 또래들 사이에서 통하는 언어와 예시로 설명하기 때문에 개념을 효과적으로 익힐 수 있다. 또한, 질문에 대한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끝없이 물으며 탐구가 가능하다. 질문하고 논의하고 협력하는 훈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다. 가르침이 양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경험은 관계 안에서 역동적인 배움이 가능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또래 간 배움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가장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학생들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물론 수업시간에도 또래 학습이 가능하지만, 자신의 관심사에 기반해서 선택한 주제별로 학생들이 모일 때 배움의 깊이는 깊어진다. 또한, 또래 학습을 지도하는 교사가 학생들과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을 때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교육학이라는 어려운 주제로 아이들과 생활한 백 선생님은 교사 스스로 하고 싶은 프로젝트가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수학을 가르치지만 그림책을 좋아할 수 있고, 영어를 가르치지만 자동차에 관심이 있을 수 있다. 교사가 가르치는 교과목과 연결된 교육과정을 열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벗어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백 선생님은 국어 과목을 가르치지만 교육학을 좋아하고, 후배 교사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에 과감히 교육학 수업을 열 수 있었다.
교육계에 훌륭한 후배들이 많이
유입되었으면 좋겠어요.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삶
꽤 멋진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교육 안에서 자아실현하는
후배 교사로 다시 만나기를 바랍니다.
- 청수고 국어교사 백순우
그는 작년 처음 진행해 본 교육학 프로젝트 같은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직접 교육 문제를 발견하고 개선안까지 만들어 낼 수 있기를 바랐다. 이러한 형태의 수업이 지속된다면 학생이 기획하고 진행하는 ‘또래가 여는 수업’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충남 나무학교 더 알아보기
"나무학교는 어디에 있는 학교인가요?"
"선생님의 마음속에요!"
‘배움의 숲 나무학교’ 이우경 대표(온양중 국어교사)는 누군가 학교의 위치를 물어 올 때면 선생님의 가슴속에 있는 뜨거운 열정이 나무학교의 존재라고 답변한다. 마음속에 존재하는 학교이기 때문에 누군가 허물어 버릴 수 없는 학교, 낡거나 노후되지 않는 학교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충남지역 교사들의 자발적 배움 공동체 나무학교는 ‘교사들 스스로 공부하고 서로 나누며 성장’하는 것을 목표한다. 한마디로 교사들의 또래학습이 일어나는 커뮤니티다. 2016년에 시작된 나무학교는 기수제로 운영된다. 지난해까지 16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올해 5기 40여 명의 교사를 선발했다. 나무학교의 연수생 선발 조건은 까다롭지만 조건은 간단하다. 자발성과 능동성이다.
연간 커리큘럼은 그 해 기수가 논의해 구성하고, 주말마다 시간을 내어 연수에 참여한다. 연수에서 학습한 내용은 현장에 적용하고 실천한 내용을 발표해야만 한다. 과정이 쉽지 않기에 배움에 열의가 있는 선생님들이 나무학교에 모이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기본 과정을 졸업한 교사들의 자발적인 모임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나무학교 졸업생들은 10여 개의 소모임과 지역별 학습 모임으로 그 또래학습을 지속하고 있다.
나무학교 내에서는 부모코칭 연구, 생활교육연구소, PBL 센터, 수업 기행단, 독서단, 담쟁이의 마음 등 분과 활동도 활발하다. 특별히 올해는 ‘배움 중심 수업 시작하기’를 주제로 집중 연수도 준비 중이며, 편집팀을 구성해 그간 나무학교의 수업 사례들을 기록물로 남길 예정이다.
가르침에 목마름이 있다면, 아이들의 성장을 돕기 위해 전문가가 되고 싶은 열망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나무학교로 GO!
<나무학교 관련 사이트 소개>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groups/namuschool/
- 유튜브 ‘에듀스페이스’ https://www.youtube.com/channel/UCZUkDORe_07Qq8Z55EBPR8Q- 회원가입 https://www.ihappynanum.com/Nanum/B/HSWWLXJCR8
경진커의 탐방 노트
마을의 느티나무처럼 묵묵히 있는 듯 없는 듯 든든한 존재가 되고 싶었으나 오히려 많은 영양분을 흡수하고 쭉쭉 성장하였기에 졸업장을 수여합니다. – 느티나무 김초롱
봄, 여름, 가을, 겨울 쉼 없이 변화하며 성장하는 벚나무처럼 행복한 마음과 열정으로 달린 당신을 응원하며 졸업장을 수여합니다. – 벚나무 강유미
나무학교 4기 졸업생들이 받은 졸업장의 내용이다. 일반적인 졸업장이 아니다. 각각의 내용이 모두 다르다. 배우고자 하는 열정 하나로 1년간 한 주도 빠짐없이 주말마다 나무학교에 출석한 교사들은 스스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글귀를 졸업장에 직접 작성했다. 누군가는 쉼 없이 달려온 자신에게 칭찬을 하기도, 힘들었지만 끝까지 견딘 자신을 대견해하기도, 배움을 실천하며 성장한 자신의 모습을 성찰하는 내용들로 채워졌다.
학교에 입학한 선생님들은 자신에게 걸맞은 영혼의 나무를 정한다. 그게 자신의 이름이 된다. 그리고 다짐한다. 아이들을 품어줄 수 있는 풍성한 나무로, 꿀맛 같은 열매를 맺는 나무로 성장하겠노라고. 그렇게 나무학교 선생님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물을 대주며 함께 성장해 간다.
글. 유쓰망고 전략기획디렉터 허경진
편집. 씨프로그램 러닝펀드 매니저 문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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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랩 펠로우십(Learning Lab Fellowship)이란
씨프로그램은 지난 2년간 러닝랩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필요한 배움에 대한 여러 시도를 지켜봐 왔습니다. 동시에 의미 있는 실험이 지속되기 위해서 필요한 자원과 환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도 많았습니다. 수많은 만남과 고민 끝에 러닝랩 펠로우십을 시작합니다. 러닝랩 펠로우십은 다음 세대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필요한 배움의 환경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 아이디어를 실행하는 팀을 대상으로 다양한 지원을 제공할 예정입니다.
유쓰망고는 학습자 중심 배움을 실천하는 것을 미션으로 삼는 교사들의 네트워크를 만들고 전국 단위 확장을 목표로 하는 망고T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앞으로 러닝랩 펠로우십을 통해 전국 곳곳에서 학습자 중심 배움을 실천하는 교사 모임을 발굴하고 각 모임을 연결 지어 학습자 중심 배움의 환경을 확장하는 데에 기반을 닦을 예정입니다. 그 과정의 첫 기록으로 유쓰망고가 만난 교사 모임 중 ‘디퍼 러닝(Deeper Leanring)’ 6가지 요소를 가장 잘 보여주는 교사 모임을 2019년 11월부터 6개월간 매달 한편씩 시리즈로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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