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첵토크 시즌2 #01. 책 <미래의 교육을 설계한다>를 읽고 (2)
2019년 2월 8일, 책첵토크가 돌아왔습니다. 하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4개월 간 책을 함께 읽고 대화를 나눴던 시즌 1과는 다르게 생각할 거리가 많은 책 또는 자료를 보고 대화하는 자리로 해당 주제를 깊이 있게 사고하는 호스트와 함께합니다. 그 첫 시작으로 벤처기부펀드 C Program의 엄윤미 대표와 함께 책 <미래의 교육을 설계한다>를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 첫 번째 질문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재구성해 전합니다.
*책첵토크 시즌2 대화를 준비하는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1) 미래의 교육을 설계한다 를 먼저 읽어보세요.
자, 이제 대화를 시작해볼까요? 그 첫 번째 질문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가 제시하는 ‘새 교육’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역량 중심 교육)의 비전에 동의하시나요? 만약 동의하지 않으신다면, 어떤 부분에 동의하지 않으시거나, 생각을 덧붙이고 싶으신가요?
한 반의 급훈부터 새 정부의 슬로건까지. 새로운 시작에는 미래에 이루고자 하는 모습에 대한 선언과 다짐이 있습니다. 상상하는 미래의 모습에 따라 선언과 다짐은 다를 거예요.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제안일 수도, 상상을 북돋아주는 독려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변화하는 시대에 교육에 필요한 새로운 비전은 무엇일까요?
바뀌는 시대에는 분명 새로운 비전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었지만,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는 몸담고 있는 곳마다 다른 문제입니다. 지금은 이미 공교육에서 맞지 않는 수많은 케이스들을 봐왔기 때문에 미래를 상상해줄 비전을 이야기해야 할 때라는 점을 짚었습니다. 특히 비전이 깃발의 역할을 한다면 어딘가에 깃발을 꼽고 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P-TECH는 변하는 세상에서 기업이 어떤 인재를 필요로 하는 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학교 현장에서 과정과 방법론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깃발이 꽂힌 곳까지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 기업에서는 방향성을 제시하는 동반자로서 에코시스템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중요한 것은 한 인간으로서 학생의 성장에 이 지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는 거죠.
그렇다면 혁신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혁신에 거는 기대와 포부가 너무 크다. 엑셀에 가로 쓰기를 백 년 했다가 세로 쓰기를 시작하는 것처럼 현재를 작은 것부터라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 노예를 해방시키는 것 이전에 학생들에게 주저함을 주는 것이 하나가 될 수 있다. 표 한 장으로 대통령을 뽑지만 총장을 뽑을 때는 학생들에게 표를 안 주지 않나. 기업에 오래 있으면서 작은 것이 콘텐츠가 되도록 만들어왔다. 혁신이라는 이름이 거창해 보여도 작은 것부터다.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목표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보고 싶은 것을 만들어 보도록 하는 것이 임파워먼트이고 거창한 것을 바꾸는 것이 혁신이 아니라 작은 것부터 바꾸는 것이 혁신이라는 점을 짚었습니다. 종종 어른들은 목표를 미리 설정하는 오류를 범합니다. 저자가 그런 실수를 했다는 의견도 있었고요. 기존 교육의 패러다임이 유효하지 않을 때 교육자의 네트워크 안에서는 강력하게 말하는 것은 효과적인 방법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 안에서 목적성이 뚜렷한 활동을 만들면 폭력적일 수 있습니다.
저자는 목적성 없이 호기심에 따라 학습하는 행위의 가능성이라는 교육의 목적을 세상에 기여하는 것으로 치환해버리면서 아카데미의 강점을 너무 낮추더라. 나를 건드리는 현실의 문제를 만나게 되면 뻗어나가는 정도가 달라진다. 똑같은 아이도 학교와 회사에서의 모습이 다르듯 현실의 경험과 맞닿아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실제 삶과 교육을 어떻게 연결하는가는 중요한 주제다. 프로젝트의 핵심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교육자들과 교육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할 때 더 나은 세상까지 닿지 않을까.
이 책에서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역량 중심 교육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보니 세상에서의 배움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 방법으로 프로젝트 수업을 채택하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정말로 학교에서 주는 배움이 유효하지 않은 걸까요? 이론이 실전에서 똑같이 쓰이지는 않지만 생각을 발전시키는 다양한 방법을 배우기도 합니다. 수학의 증명이 얼마나 정확한지나 국어의 비문학 읽기를 빠르게 읽는지로 평가받지는 않지만 현업에서 리서치를 할 때나 보고서를 쓸 때 꽤 유용한 것 같습니다.
현실세계를 가장 가까이서 만나는 학교인 대학에서 경영에 대해 배우거나 취업준비를 위해 프로젝트를 하는 경우는 어떨까요? 현실세계에서 학생들의 배움이 유의미하다면 배움의 책임을 학교에만 물을 수 있을까요? 학교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학교에서 학생들의 성장을 정체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Real-World와의 연계가 놀라운 것은 강의실 안에서 회사 시뮬레이션을 하는데 목표와 과정이 주어지는 환경에 따라 학생들이 달라진다. 반면 학교는 아직 너무 조심스러워서 그저 학년이 낮다고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아닌지, 학년의 갭을 설정해두고 성장을 지연시키는 것은 아닌지 고민된다. 학생들 스스로 현실세계에서 필요한 것을 발견해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학교에서의 배움이 목마릅니다. 시험을 치기 위해 칠판에 적힌 내용을 열심히 외우고, 주어진 과제를 성실히 하고, 시험을 잘 치는 것. 모두 학교로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빈틈은 아이들 스스로 선택해서 충분히 망해본 경험이 없었던 게 아닐까요? 현실에서는 매일 망합니다. 작은 실수부터 때론 큰 프로젝트까지. 리크루팅에서도 문제 해결 능력은 빠지지 않는 단어입니다. 비즈니스 세팅을 할 때는 성공과 실패가 있겠지만 그 걸로만 평가를 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어떤 성장을 했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하죠.
결론적으로 성공적인 목표를 이루지 못한 엔딩도 좋은 엔딩이 될 수 있다. 지표로는 안된 것이 더 많지만 지식을 쌓아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교육에서는 굉장히 혹독하게 평가한다고 생각한다.
실패하고 여기서 다시 배우는 경험을 주기 위해선 학교를 넘어선 바깥세상과의 연계가 꼭 필요합니다. 스스로 삶과의 연계를 인식할 수 있도록 그냥 해보면서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예요. 사실 이런 것이 가능해진 건 학교 주변의 상황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학교는 많은 것들이 연결된 사회의 네트워크 중 하나이고 이런 환경이 있을 때와 없을 때는 학교의 역할이 극명하게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막상 아이들과 프로젝트를 할 때 가장 어려운 때는 언제였나요? 아이들도 선생님도 주제와 목표를 설정할 때를 꼽습니다. 내 안의 호기심에서 시작해야 하는데, 이 호기심을 이루는 요소가 워낙 다양해서 뾰족한 방법 없이 헤매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종종 좋은 프로젝트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닭을 키워도 프로젝트가 될 수 있지 않나요?
이 책을 함께 읽던 한 아이가 내게 "꼭 프로젝트를 해야 하나요? 닭 키우면 프로젝트 아닌가요?"라고 하더라. 학교가 아이들이 다양한 실험들, 하고 싶은 것을 해보는 공방 같은 곳이 되면 어떨까.
결국 내 마음에서 시작된 프로젝트가 아니라 정해진 프로젝트 안에서 길을 찾아야 할 때는 과정이 더디고 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아이들에게 좋은 방향은 만드는 즐거움에서 얻는 자신감으로 끝나야 합니다. 바로, 임파워먼트죠. 뭐든 만들고 완성해보고 '나는 이런 걸 만들 수 있는 사람이야'라고 느낄 수 있도록요.
사회참여는 프로젝트 수행이 아니다. 이런 기회들은 아동노동에 대한 공동의 트라우마와 K-12에 막혀 격리되어 있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자신의 프로젝트를 찾도록 도와주는 것이 임파워먼트일 수 있다. 사회를 바꾸자고 이야기하는 것도 주입식이다. 세상을 못 바꾸는 사람으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몫을 찾아가도록 해야 한다.
이미 프로젝트 학습을 시도해보려는 교육자분들은 막막했던 경험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선 사례나 매뉴얼이 없는 경우도 많고, 있다 하더라도 너무 오래되었거나 바로 현장에 적용할 수 없는 외국의 것이기도 하고요. 잘되든 안되든 프로젝트 학습에 대한 케이스를 보여주고 프로젝트로 성장한 아이들과 교육자를 연결하면서 확신을 주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그런 플랫폼이 있다면 의심이 기동력이 될 수 있을까요?
세상과 학교가 더 많이 연결되어 유튜브, 마인크래프트 등 학교 밖에도 수많은 선생님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지하면서 학교에 모인 아이들을 가르치는 역할이라는 프레임이 바뀌면, 교육자의 역할은 어떻게 바뀔까요? 아이들의 호기심에서 시작해 원하는 배움을 닿을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해주고 길을 보여주는 사람, 역량 강화자가 아닐까요?
역량 강화자의 역할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습니다. 신뢰와 발견입니다. 아이들을 어느 수준으로 보고 믿고 맡길 것인가는 역량 강화자의 신뢰에 달려있습니다. 아이들과 프로젝트를 하면서도 잘 따라오지 못하는 친구가 있을 때 조급해집니다. 그리고 상담을 시작하죠. 여러분이 역량 강화자라면 얼마나 믿고 기다려줄 수 있나요? 두 번째는 아이들이 스스로 성찰하면서 성장의 지점을 발견하게 하는 것입니다.
역량 강화자의 역할이 정말 방대하다고 생각한다. 아무런 보상도 출결도 없이 청소년들이 성장의 느낌만으로 프로그램에 오게 할 수 있을까 우려했지만 성공했다. 이때 성찰이 정말 중요한 건 성장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역량 강화자가 성찰을 이끌면 청소년들 스스로 '뭘 배워야겠다'라는 답이 나온다. 분명히 과정 중에 소외되는 아이들도 있는데 포기하지 않고 보듬어 줄 수 있도록 씨알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듯 역량 강화자에게는 여러 가지 강화를 할 수 있는 역할이 필요하다. 예비교사에게도 임용고시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런 점을 가르쳐준다면 교사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역량 강화자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스스로 임파워러가 될 수 있는 새로운 교육의 기회가 필요합니다. 정작 교실에서 가능한가는 다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행정처리로 수업에 집중할 수 없는 근무환경과 사업을 해볼 수 있는 예산이 있더라도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해 발목을 붙잡습니다. 이때 네트워크를 조직하는 등, 실행력을 높여줄 방법을 시도해본다면 변화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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