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장아장 히말라야 2

by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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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산뜻한 스프링을 무릎에 장착하고 날다람쥐가 되어 잘도 올라간다. 산행 고수인 그 꼬마아가씨와 보폭을 맞출 재간이 내겐 없다. 다 각자의 속도감으로 리듬을 타면서 춤추듯 올라가면 그만이다. 20킬로가 넘는 배낭의 무게와 고도를 높일수록 팅팅 부어가는 몸뚱이를 이고 지고 가자니 어둠이 다가올 즈음엔 온 몸의 관절과 근육이 저마다 아우성이다.


머리만한 별들을 띄우고 자는 새까만 밤 시간은 미세한 판자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이 어찌나 매섭던지. 바람도 추워서 어디라도 들어와서 자고 가는 건지.. 청명한 그 곳의 하늘처럼 머릿속이 맑디 맑은 상태로 바람을 덮고 잠을 뒤척이며 밤을 재워본다.


롯지에서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과 조우할 때가 있다. 그들은 단체에 걸맞게 전문 쉐프가 차려준 백숙에 알록달록한 반찬으로 체력을 보충하고, 난 그들의 반찬을 굴비삼아 조촐한 나만의 식사를 하곤 했다. 어떤 날은 한국에서 가져온 깻잎김치와 컵라면을 먹고 있자니 ‘중국에는 없는 게 없구먼’하고 일행들끼리 눈짓하며 껄껄 웃으시고, 난 애써 미소로 화답해본다. 굶주린 자의 배고픈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실은 낮에 걸을 때 발이 치이던 모락모락 갓 구운 소똥 덩어리들이 초코 빵으로 보일정도였단 말이다.)

고도가 올라갈수록 기온은 급격히 내려가지만, 손에 닿을 듯 다가오는 새하얀 속살의 히말라야 자태는 이미 나에게 거룩하고 비현실적이다. 산신령이라도 나올 법 한 개울물과 안개사이를 건너가니 드디어 M.B.C(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가 나타났다. 거기서 리아를 다시 만났다. 하루 일찍 도착했단다. 쉼을 갖은 탓인지, 이미 시바 신에게 신 내림이라도 받은 것인지 더욱 신비로운 표정으로 나를 반긴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이 저마다 무언가에 감화된 표정 일색이다. 보는 곳마다 ‘우와’가 절로 나오는 시야 속으로 녹아들자니 말하지 않아도 그들의 마음에 공명되는 듯 서로 눈이 마주치면 자연스레 미소로 화답하게 된다.

손에 닿을 듯 보이는 마차푸차레 산은 해발 고도 7000m가까이 되는 산으로 생김새가 유독 눈에 띄어 포카라 시내에서부터 나를 홀리던 산이었다. 그 산을 이렇게 가까이서 마주하다니.

산은 가까이 다가가도 그 산속에 아예 폭 들어가지 않는 한 실상 멀리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생김새가 영험하여 힌두교 인들이 ‘감히 미물인 인간이 이 산엘 간다고?’ 하며 입산 금지 시킨 산이기도 하다고. 한동안 산 멍을 때린다. 입이 스스로 벌어진 체로. 시선 두는 모든 곳이 경이롭다. 그 간의 고생이 마음속에서 아름답게 각색되는 순간이다.


멍해지는 것이 장소의 기운도 있지만, 스멀스멀 올라오는 고산 증의 증상이기도 했다.

고도가 높아갈수록 경험해보지 못한 고도에서 나의 몸뚱이는 자꾸 이상한 신호를 보낸다.

술 왕창 먹었을 때의 두통과 속의 울렁 울렁거리는 메스꺼움이 한동안 지속되어 그들의 특효 처방 음식인 생강차와 마늘 스프를 자주 들이키려 하지만 나의 몸들은 처음 접하는 고도에 적잖이 놀란 눈치다.

산소가 부족하여 많은 움직임을 하면 어지러우니 멍 때리거나 눕거나 엎드렸다가 다시 ‘우와’를 외치는 느릿한 폴레 폴레의 시간이다.

약간은 비몽사몽 무의식의 길을 걷는 느낌이다.

나의 셀파 오바마에게 그 분이 오신 것 같다고 살짝 알려주었다.


그가 미간에 주름을 만들며 넌지시 말한다.

다년간의 경험으로 체득한 유일한 특효약이 있다고. 그건 즉시 하산이란다. 고도를 지금보다 낮춰야 해결된다고. 어떤 명의가 와도 못 고친다고 귀띔해준다. 고치러 온 의사마저 고산병에 걸려버리니 명의가 소용없다나.

아니 고지가 눈앞인데 하산을 하라니!!

난 사실 카트만두 약국에서 고산증 예방약이라 불리는 비아그라를 구입했다. 하지만 이름이 주는 무서움(?)과 부작용이 두려워 먹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단지 소지하는 것만으로도 부적처럼 고산병을 크게 물리쳐 줄 줄 알았지.


하산할 정도는 아니라고 안심시키고 다음 코스인 안나프루나 베이스캠프에 가서 새벽이라도 몸 상태가 안 좋으면 고도를 낮춰야하니 하산할 수 있게 자신에게 알려달라는 그이다.

그 말을 들으니 고맙기도 하지만, 칠흑같이 껌껌한 그 새벽에 둘이 내려가는 모습을 상상하자니 더욱더 무서움이 머릿속에서 증폭되는 것 같기도 하다. 무서움을 넘어 오싹하다.


그는 정말로 걱정이 되어서 하는 말이었다. 실제로 1년 전에 자신과 함께한 외국인이 고산 증에 비틀거려 다리를 다쳐서 하산하는 내내 엎거나 부축하고 내려와 생고생을 했다고 여러 번 이야기 해주었다. 같은 말을 3번째 들을 때에는 절대로 다치면 안 된다는 무언의 압박 같아서 걱정하지 말라고 내 몸은 내가 챙긴다고 안심을 시켜두었다.


고도 4000m가 넘는 안나프루나 베이스캠프에서의 밤은 무척이나 설렜다. 고양이만한 쥐가 등반 객들의 가방을 노린다고 하여 조금의 행동식량이 든 가방을 꽉 잠가두고 혹여 나를 물진 않을까 싶어 전신을 미라처럼 꽁꽁 싸매고 누웠다. 밤 12시가 넘으니 그들의 음성을 가미한 달리기는 기어코 시작이 되었고, 나는 내 눈에만 띄지 말아달라고 눈을 질끈 감고 애써 기도했다. 밤새 화장실을 가지 않는 것도 그곳에서는 큰 행운인데, 그 날 밤 고산 증은 고도에 올랐고 몸의 위아래 구멍에서 무언의 반응이 오려고 자꾸 몸을 일깨운다.


눈을 감아도 빙빙 도는 느낌에 어디든 쏟아질 듯하여 참고 참다 미라를 풀어 헤치고 랜턴을 이마에 장착하고 푸세식 화장실로 향하였다. 눈이 쌓인 살얼음판이라 잘못 헛디디면 그대로 언 똥밭을 구를 판이다. (이날의 아찔한 두려움이 간혹 꿈에 나와 그때의 감각을 재생시켜주곤 한다. 이놈의 기억이란..)


남아있는 집중력을 최대한 모아서 언 바닥을 매트리스 삼지 않으려고, 사지에 힘을 주어 벽을 잡고 가까스로 일을 해결하고 살아 돌아와서 밖의 하늘을 보니 별들이 빼곡한 하늘이 경이롭다.

아무 생각 없이 감동이 밀려온다. 이토록 아름다운 광경을 보았나 싶었다.

새삼 별이 녹은 물을 하늘에 부어버린 듯 한 풍경이다.


얼어버릴 것 같은 추위에 금세 침낭 속으로 몸을 말아 넣고, 밤새 한 숨을 못자고 고산증과 싸웠다. 시름시름 앓아가는 몸뚱이를 일으켜 아침에 밖을 나가보았다. 까무러치게 놀라웠다.

이걸 보려고 이곳에 왔구나 싶다. 황금색 샛노란 햇살이 하얀 산맥에 물든 빛깔이 여기가 도대체 어느 행성인가 싶어서 한동안 어리둥절하고 신비로워서 놀라움 섞인 감탄사만 쉴 새 없이 내뱉었다.


그 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 듯 한 진한 감동과 감탄으로 몇 번의 생을 연장할만한 에너지를 두둑하게 챙긴 기분이다. 자연의 존재자체로 다가오는 깊숙한 울림은 흡사 종교의 영성과도 비슷하여 생의 다채로운 감각을 빳빳이 일으켜 세우며 다가오지 않은 미래까지도 치유하기에 충분한 세상 자애로운 볕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