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할아버지와 프라하에서 하룻밤?

by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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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시간 후 프라하에 무사히 착륙한 것을 안도하며 난 손뼉를 치며 환호했다. 옆에 다소곳이 앉아계시던 외국인 할머니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의 호들갑에 귀엽다는 듯 박장대소이시다.

이른 아침 숙소에서 흘러나와 무작정 걸었다. 나의 이정표는 발길 닿는 대로다. 흐르는 물이 되어볼 작정이었다. 흐르며 흡착되고 아니면 되돌아가면 되고 무엇이 문제겠는가.

아침 햇살 맞으며 이국적인 성당에 들어가 본다. 최대한 처음 온 티 내지 않으려 애쓰는 마음과 다르게 몸을 구긴 모양새로. 거리에서부터 나를 응시하는 시선을 그곳에서 다시 마주했다. 누추한 행색의 할아버지가 멀찍이서 다가온다. 쭈뼛쭈뼛 수줍은 미소를 머금은 체로.


자연스럽게 아침 인사를 건내보았다.

낯선 곳에서 상대가 가진 경계의 허물을 벗기는 가장 큰 무기는 미소니까.

서로 해치지 않을거야 라는 거래, 아니 무언의 강요이다.


아뿔사. 체코어다. 영어가 도통 통하지 않는 두 번째 할아버지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성당에서 아침 청소를 하는 청년의 통역 덕에 건너 건너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자신이 프라하를 아주 잘 아는 현지인이니 동행하며 동네 소개를 해줘도 되겠냐고 신사답게 물었던 것이다.

젊은이였다면 꿍꿍이를 의심하며 단번에 철벽을 쳤을 나였지만, 뭔지 모를 이끌림에 두려움의 허들을 잠시 낮춰보았다.

관광지라 어느 곳에나 사람이 많고 이 벌건 대낮에 말을 타고 다니는 경찰도 많지 않는가!

그래도 맘 한 구석에는 의심과 경계심의 회로를 상대에게 들키지 않는 범위에서 가동시키는 나란 여자다. 알 수 없는 인력에 이끌려 할아버지와의 이색적인 동행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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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도 나는 것 같고 행색이 뭔가 거리의 자유인(노숙인) 느낌이어서 잠시 불안했다. 하지만 준비 없이 왔던 터에 옳다구나 싶기도 하였다. 가이드 치고는 언어의 소통이 다이렉트가 아니다. 나는 영어로, 거리의 할아버지는 체코어를 하며 각자 자기말만 하는 소통 아닌 소통을 이어갔다. 서로 몸짓 말짓으로 이야기하다 길거리 누구나 붙잡고 통역을 부탁하며 각자의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었다. 서로의 말을 더디더라도 이해하려고 집중하는 그 순간. 놀라웠다. 나도 모르게 그의 심중까지 들어보려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자신의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모신 성당에 나를 데려갔다. 관광객이라고는 나 하나이고 현지인들만이 미사를 드리는 성당이었다. 사람들이 미사가 끝나고 줄을 서기에 얼떨결에 나도 덩달아 합류했다. 신부님이 주시는 동그란 것을 받아 입에 녹이는 것 같다. 줄을 서는 나에게 체코어로 자꾸 뭐라 물어보기에 알았다고 대충 대답했다. 앞 사람들 보고 따라해야하기에.


지금 생각해보니 세례를 받았냐고 물었던 것 같다. 난 씹지 말고 녹이라는 말로 이해하고 자신 있게 오케이 사인을 했던 것이다.

진중하고 엄숙한 분위기 속에 할아버지께서 장황한 설명을 하신다. 자세히 알 수 없는 말이다. 촉촉한 눈가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자신의 부모님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지만 표정으로 호응을 하고 대화를 이어가는 신기한 경험이다.

이런 순간에는 서로의 말을 길게 듣고 다른 언어로 호응하지만, 표정과 기운으로 서로를 이해하는 알 수 없는 상호작용이다.


성당에서 나와서 거리를 구경하다 소피를 보겠다고 한다. 공중화장실을 가겠다는 걸로 이해하고 오케이 사인을 했다. 중세 벽돌 건물들을 내 손길로 쓰다듬으며 어슬렁거리다 깜짝 놀라버렸다. 건물 벽에다 소피를 보시고 계신 게 아닌가. 그것도 사람들 다 다니는 길거리에서! 뜨악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지금이 도망갈 타이밍인가? 이곳의 자연스러운 문화인가? 노숙인의 삶을 존중해야하는 건가? 오만가지 생각이 오고가는 찰라.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씻지 않은 손바닥으로 내 어깨를 툭툭 치며 기다려줘서 고맙다고 한다. 오 마이 갓~!

그 뒤로도 벽에 소변 칠은 몇 번 더 이어졌다. 그 후로 나는 시키지도 않은 망을 보았다.

뭐라고 따질 새도 없이 그 자유인께서 이번엔 배가 고프다고 하신다. 난 아직 체코 돈으로 환전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더군다나 달러 뭉탱이를 내 뱃속 깊이 복대로 이중 잠금한 상태라 아무 데서나 돈을 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도 배가 고팠지만 체코 돈이 아직 없다고 불쌍하게 말을 하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손짓하고 어딘가로 홀연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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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쉬를 하러 가신건가. 두리번거릴 찰라 손에 빵 쪼가리와 술병을 두 손 가득 들고 오셨다.

빵을 3인분이 넘게 사오다니! 많이 고프셨나. 우린 근처 공원에서 잠시 새참 시간을 가졌다. 벌건 대낮에 빵 쪼가리에 병나발을 불고 있는 이 이국적인 자태란. 물론 난 병나발은 마다하고 곁눈질로 빵의 유통기한을 빠르게 확인했다.

1인분은 비둘기들의 만찬이다. 세상에 비둘기 새참까지 챙기다니.

발그스레한 볼을 한껏 치켜세우며, 사람 좋은 미소로 비둘기와 한 참 대화를 하신다.

서로들 오래 알고지낸 사이 같다.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서 천문시계를 보고 성당들과 까를교를 걷다보니 어느 덧 해가 저물어 갈 시간이다. 이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쉐프였다고 한다. 자신이 젊을 때 쉐프로 일했던 레스토랑이 이곳에 있다고 했다. 체코의 전통음식인 굴라쉬를 가장 잘 만들었다고. 한나절의 여행이 감사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내가 이른 저녁을 대접하겠다고 그 곳으로 가자하였다.

고기와 전통음식 그리고 체코 맥주를 대접하며 감사를 전했다. 그런데 아까부터 자꾸 무엇을 물어 보는 듯 하는 뉘앙스를 반복하기에 식당 종업원의 통역서비스를 쓰니 밥을 먹고 있는데 저녁을 또 함께 먹겠니? 하는 질문이다. 이건 무슨 의미?? ‘어두워지면 우린 빠빠이에요’

급하게 전화기를 들고 약간의 연기를 곁들였다. 30분 후에 한국인 친구들을 여기서 만나기로 하였다고 웃으면서 칼 거절하였다. 모든 게 자연스러웠다.


이번엔 내가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서로가 가장 좋은 기억만 간직한 채로.

한 블록 빠르게 전진한 뒤 뒤돌아보니 할아버지는 거리에 아예 쭈그리고 앉아 들개와 조우하여 한 참 이야기 중이시다. 아마도 그는 만물과 소통을 하는 진정한 자유인이지 않았을까.

한나절 간의 여행은 더없이 신선하고 파닥거리는 시간이었다. 한 순간도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었기에 더더욱. 프라하의 중세거리를 거닐며 자유인 할아버지와 연결되던 시간들.

스스로의 문제에 매몰되어 타인에게 건네는 친절도 사치라고 느껴지는 때가 있었다. 그러한 시기라도 타인에게 호감을 가지고 교감할 수 있는 ‘열정’은 스스로를, 그리고 주위의 생을 진동시키는 힘이 있음을 믿는다. 기꺼이 마음의 품을 내어주고, 단절이 아닌 연결 속에서 파릇파릇한 생의 감각이 무심코 깨어나기도 한다.

소통에 대해 더욱 확장된 시선이 녹여진 돌담 거리들이 아직도 마음에 선하다.

요즘도 어느 누구라도 잡고 이야기 나누시겠지. 꿈꾸는 듯 한 시선을 한껏 붉은 볼에 띄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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