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적으로 보여서 부러워요"
회사 점심시간이었다. 늘 이 시간이 되면 빌딩 숲 어딘가로부터 사람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이 거리에 이렇게 사람이 많았었나 싶을 정도로.
"안정적으로 보여서 부러워요."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이들은 반듯한 정장 차림에 목에는 사원증을 메고 있었다.
"그쵸, 저 사람들이야 말로 직장인 같네요."
"아니, 저사람들 말구요."
"그럼 누가요? 나요?"
그녀가 고개를 돌린 곳에 서있는건 분명한 나였다. 벤처로 시작한 작은 회사에서 일하는, 원래 디자인보다 더 심하게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일하는 나.
"회사야 어떻든 만족하며 일하시고 있고,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도 있으시고, 연애도 5년째라면서요."
지난 주만해도 그 프로젝트까진 무리라며 왈칵 눈물을 쏟아낸, 새벽 네시까지 마음에 드는 글이 써지지 않아 패배감 속에 잠을 설쳤던, 돌아오는 비행기표 따위는 예매도 안하고 해외 유학중인 연인을 기다리는 내가 안정적이라니, 손사래를 쳤다.
"안정적인건 절대 아니예요."
문득 호수 위를 유유히 누비는 백조가 생각났다. 언제였던가, 백조의 여유와 우아함을 시기한 어떤이는 백조는 사실 물밑에서 추하게 발버둥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에 폭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조는 여전히 아름답고 우아하다. 백조의 발버둥이란, 호수를 벗어나기 위한 추한 몸짓이 아니라 호수 안에서 살아내려는 의지고 노력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안정적인 삶이라는게 존재하기나할까. 점심의 햇살이 드리운 거리가 마치 빌딩 숲속, 백조의 호수 같았다. 잠시의 휴식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 이들이 걸고 있는 사원증에 적힌 기업의 이름이 무엇이건 모두 제각기의 발버둥을 치고 있겠지.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이들이 살아내는 삶이 아름답지 않다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오히려 쉼없는 발버둥에, 빌딩 숲속의 우리에게 우리 스스로는 경의를 표해야 하는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