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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시집가! 엄마 귀찮으니까 자꾸 집에 오지 말고!

논리도 근거도 엉망진창인 모진 말.

"너 결혼 언제 할래? 엄마는 너 때 애가 둘이었어!"

휴일 내내 집에 쳐박혀 있는 다큰 딸이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맛있는 밥 잘 먹고 갑자기 왠 딴지인지.


"몰라, 엄마. 난 엄마가 되는게 무서워. 한 2-3년은 못할것 같아."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은척 넘어가려는데,


"난 너 빨리 시집 가버렸으면 좋겠어!"

왠일인지 엄마는 날선 목소리로 다그치기 시작했다. 


"빨리 시집가! 엄마 귀찮으니까 자꾸 집에 오지 말고!"

논리도 근거도 엉망진창인 모진 말. 


 우리 모녀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저녁 먹기 전에는 홈쇼핑에서 배송온 택배 박스를 가운데 두고 한참 화장품 품평회도 열고, 방금 전까지도 이리 안기고 저리 안기며 화기애애 다정다감한 대화를 주고 받았는데. 결혼얘기만 나오면 먼저 저렇게 날이 서서 난리다. 모질게 굴어서 나를 떼어내려나 보다. 내가 언제까지고 엄마아빠랑 산다고 할까봐, 일부러 괴롭히나보다. 결혼이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도, 그렇다고 내가 결혼을 걱정할 만큼 늦은 나이도 아닌데.


 내가 알아서 할게, 대충 얼버무리고 도망쳐온 내 방. 괜히 서러웠다. 나는 엄마가 보고 있어도 그리운데, 엄마는 내가 그립지 않나. 엄마는 귀찮은 딸 보내 놓고나면 정말 자유롭고 행복할 것 같나.




그 밤 새벽 세시, 속이 거북하다 했더니 복통이 밀려왔다. 아마도 저녁에 먹은게 체한 모양이었다.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냉장고며 구급상자며 평소 약이 있을 만한 곳을 다 뒤졌는데 평소에는 흔한 소화제 한알이 보이지 않는다.


"뭐하니?"


내가 부산스럽게 군 탓에 아빠가 잠에서 깨셨다 보다. 아빠에게 끙끙거리며 배가 아프다 하니 아빠는 온 집안 불을 다 켜고 소화제를 찾으신다. 죄송한 마음에 되었다고, 거기 찾아봤다고, 좀 괜찮아 지는것 같다고, 참으면 참을 수 있을 것도 같다 했다. 나는 정말 괜찮으니 아빠 그냥 주무시라며 아침 까지만 참아볼 심산으로 방으로 돌아왔다.


침대로 돌아와 한컷 웅크려 있는데.


"지은아!"


 아빠다. 결국 깊숙히 넣어 두었던 여행 가방 속까지 뒤적거리시면서 까지 소화제를 찾아내신 아빠. 




 이른 아침,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에 잠에서 깼다. 나는 휴가인 날이었는데, 출근 준비를 마친 엄마와 아빠가 아침식사를 하며 식탁에서 나누시는 이야기였다. 내 약을 찾아주다가 잠을 다 깨서 날이 새도록 뒤척였다는 아빠의 이야기와 내가 쓴 책을 누군가가 호평을 했다며 내 얘기가 한참인 엄마. 두 사람이 마주 앉은 식탁은 내 얘기로 온통 범벅이다.


 아직도 뒤돌면 넘어지진 않을까 걱정되는 딸이면서도, 두 분다 나를 보내려고 애써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계신듯 하다. 엄마는 이왕 받아들일거 빨리 받아들이고 떼어내려 노력하면서, 아빠는 함께 할 수 있는 남은 시간을 좀 더 가까이 아빠로서 계시려 노력하면서. 다 큰 어른들이 너무 속이 훤해서 딸은 마음이 아린다. 나는 아직 엄마아빠의 어린 딸이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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