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하고싶은날에 쓰여진 일기 by. 따끈따끈 이작가
“장례식장이 어디에요?”
숱 없이 희끗한 머리의 둥글둥글한 아저씨가 내게 물었다. 그는 옅은 남색의 얇은 바람막이를 입고 있었는데, 해가 지는 반대 쪽 저녁하늘을 꼭 닮은 빛깔이었다.
“바로 앞에요.”
반사적으로 대답 한 후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순박한 표정으로 희미한 미소를 띄고 있었다. 나는 퉁명스러웠던 내 목소리를 주워 담고 싶었다. 검은 투피스의 나는 오후 2시의 여름, 맞지 않는 검은 구두에 발을 우겨 넣은 채 언덕을 오르던 중이었으므로 결코 악의란 없었다. 그는 무언가 나에게 더 말을 걸고 싶은 눈치였지만, 이내 그만 두었고 나보다 조금 빨리 앞서 걸었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걷자니, 무슨 말이라도 걸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들었지만, 이내 그만 두었다.
1층 로비에 들어섰다. 힘이 되어 주고 싶어 무작정 달려오긴 했으나, 힘이 될 리가 없다는 생각에 목적지를 잃고 로비를 서성였다. 로비 한 구석이 하얀 꽃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무심코 만져본 꽃잎들이 촉촉하고 싱그러워 위화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조화가 어울리는 것도 아니다 싶지만, 살아있음에도 창백한 표정들이 위로 되기는커녕 사무치도록 쓸쓸했다.
창가 쪽, 의자들이 놓여 있던 곳에서 울음 소리가 났다. 바라 본 곳엔 검은 한복을 입은 아주머니가 서럽게 울고 있었다. 그녀를 지탱하여 서 있는 사람은 아까의 그 아저씨였다. 그는 그녀를 안고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눈물이 흐르는 것을 참으려는 듯 부릅뜬 눈이 발갛게 물들었다. 순간 애써 외면했던 나의 감정과 마주해야 했다. 아까의 그는 분명 나에게 말을 걸고 싶어 했었고 나는 그를 외면했다. 그의 마음을 더 깊이 들여다 볼 용기가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는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에 일부러 길을 잃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주변을 서성이다 검은 옷을 갖춰 입은 내 모습에 현실을 깨닫고는, 사실 이렇게 묻고 싶었을 거다. 본인이 향해야 하는 곳이 장례식장이 맞느냐고. 사실 나는 애써 미소 짓던 그의 표정에서 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아픔을 읽었었다. 지금 너무 슬픈 이별을 마주하러 가는 길인데, 또 너무 슬퍼하는 이들을 안아주어야 하는데 두렵고 무섭다고, 다 큰 어른이 아이 같은 눈으로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원래의 목적지를 찾아 들어갔다. 두 눈 꼭 감았다. 이름 모를 신을 찾아 떠나간 이를 좋은 곳으로 모셔달라고, 남겨진 이들의 마음은 위로해 달라고, 인간이 위로할 수 없는 영역의 일을 신이 벌였으니, 책임을 져달라 진심으로 빌었다. 씩씩하고 밝은 이의 붉어진 눈이 낯설어 너무 마음이 아팠다. 몇 번을 반복해도 익숙해 지지 않는 슬픔에 어설픈 모습으로 조문을 마쳤다. 돌아 나와 혼자 걷던 길 위에서 왈칵 울음이 터졌다.
신이 있다면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이들의 아픈 마음을 조각 조각 떼어다가 이렇게 찾아오는 이들에게 나눠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아저씨도 나도 분명 그럴 작정이었는데, 그게 안 되는 것이, 그 아픈 마음을 한 조각도 나눠가질 수 없는 것이 그게 참 분하고 아팠다. 내가 가지고 있는 문장 중에는 영원한 이별의 슬픔을 위로 할 수 있는 것이 단 한 자도 없다는 것이 한심하고 한심했다.
빈털터리가 된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