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시필사
조용히 조용을 다한다
기웃거리던 햇볕이 방 한쪽을 백색으로 오려낼 때
길게 누워 다음 생애에 발끝을 댄다
고무줄만 밟아도 죽었다고 했던 어린 날처럼
나는 나대로
극락조는 극락조대로
먼지는 먼지대로 조용히 조용을 다한다
「먼지가 보이는 아침」, 김소연, 『수학자의 아침』
끔찍한 기분을 안고 나를 돌보지 않던 시간이었다. 친구는 그런 나를 끌어 안고는 엉엉 울면서 양산 고향집에 데려가 밥을 먹이고 잠을 재웠다. 내가 머물던 곳은 2층 옥탑방이었는데, 천장은 낮았지만 비스듬한 창문이 있었다.
꼬박꼬박 소박한 상을 받아 먹고 뒹굴거리다 보니 마음에도 살이 붙어, 슬픔 대신 심심한 기분이 들었다. 그제야 1평 남짓 되는 그 방을 쭈욱 둘러 보던, 그 때, 그 비스듬한 창문에 들어온 빛 속에 떠도는 먼지들. 아, 먼지가 되고 싶다. 쌓여있다가도 훅 불면 그냥 날아가버리는 먼지. 산산히 흩어지는 먼지. 좆도 아닌 먼지. 털어버리면 그만인 먼지. 그래, 먼지가 되자,며 자리를 털고 일어선 순간이었다.
「먼지가 보이는 아침」이 실린 시집 『수학자의 아침』 맨 앞 장 김소연 시인은 “애도를 멎게 하는 자장가가 되고 싶다”고 썼다. 그날에서 한참 후에야, 이 시를 읽었다.
그때는 알 수 없었다. 최선을 다하는 먼지가 있다는 것을. 나는 한없이 가벼운 사람이 되고자 하였으나, 이조차도 최선을 다하지 않고는 부족하다는 것을. 지금 생각해보니, 그 와글와글한 먼지들 때문에, "조용을 조용히" 다하는 먼지들 덕분에, “다음 생애에 발끝을” 댈 생각조차 없었으나 조용히 기운을 차릴 수 있었던 듯 싶다.
#먼지가보이는아침 #김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