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여름 일기
허은실 시인의 <목 없는 나날>이라는 시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타인을 견디는 것과 외로움을 견디는 일 어떤 것이 더 난해한가" 나는 외로움을 견디는 쪽이다. 가령 회사에서 타인을 견디는 것은 업무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회식 자리에는 가능한 참석하지 않는다. (회식도 업무의 하나야, 라고 내게 고나리를 하는 동료가 있다면, 메모장을 열고 굴림 30포인트로 맞춘 뒤 꺼져!라고 적어 보여 준다.)
가정에서도 예외는 아닌데, 내가 생각하는 타인에는 가족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우리 가족은 적당히 안전한 개인 구역을 가질 수 있고, 아주 최소한의 '함께'를 경험한다. 가사노동도 적절히 분배하고 있어서 누군가의 희생으로 폭발하는 말다툼 조차 극도로 적다. 가끔 우당탕탕 시끌벅적하는 가족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
어찌 되었든간에 나와 도무지 맞지 않는 타인을 피하다 보니, 이제는 어느 모임에도 나가지 않게 되었고, 회사에서도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 동료조차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익숙하지 않은 누군가라면 만나자고 해도 핑계를 대며 피하게 된, 나는 사실 종종 외롭다. 야근하고, 퇴근하는 택시 안에서 누구든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진다. 갑자기 한가해진 오후에 누구든 만나러 가고 싶다.
하지만, 다시 또 익숙해져야 한다면 얼마나 견뎌야 할까. 그 또는 그녀를, 상처받는 것만큼 충분히 사랑할 수 있을까. 이번 생은 그른 것 같다. 다음 생에는 바위가 되어, 걸터앉든, 발에 채이든, 뭐든 견디는 것으로 도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