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필사, 육호수
어떤 꿈에선 내가 정말 일곱 살이었다
그런 날엔 일곱 살로 깨어나
착하게 이불을 개고
문법 수업을 듣고
국밥을 먹고
신문을 보고
사랑을 했다
그러나 일곱 살의 나는
시를 못 써서
의자에 앉아 한꺼번에
나이를 먹어야 했다
꾸역꾸역
울음이 쏟아졌다
눈에서 그림자가 쏟아졌다고
일곱 살이 아닌 내가 받아 적었다
'일곱 살의 그림자가 나를 따라오고', 육호수, 시집 <나는 오늘 혼자 바다에 갈 수 있어요(아침달)>에서
손으로 삐뚤빼뚤 글씨를 처음 써본 게 일곱 살 정도가 아닐까 싶다. 시 필사를 하면 일곱 살이 되는 기분이 든다. 펜을 쥐고 뭘 따라 써본 적이 없으니 한 문장 간신히 쓰고 나서도 이내 힘이 빠진다.
이 시를 읽으면서 일곱 살에서 마흔이 된 나를 생각했다. 이렇게 글도 쓰고, 이불 개는 법도 배우고, 공부 하고, 사랑도 하면서 나이를 먹었구나, 이런 생각. 그리고 이제 시는 쓰지 못하게 되었구나 하면서. 가끔 슬퍼하면서.
다시 시작한 시 필사. 일곱 살의 나를 만나 백일 후에는 그림자가 많은 어른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