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천국을 빼앗아 갔다
동방의 낙원,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
요르단을 거쳐 시리아에 도착했다. 요르단에서 인도까지 육로로 갈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시리아는 고대 로마와 기독교, 이슬람 문화와 뗄 수 없는 곳이다. 하지만 역사를 좋아하는 나도 웬일인지 시리아 여행은 영 내키지가 않았다. 그동안 언론이 보여줬던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이었다. 시리아는 뭔가 보수적인 나라일것같았다.
이렇게 '기대감 제로'의 시리아 여행이 시작됐다.
요르단 암만에서 시리아행 국제버스를 탔다. 하루에도 수시로 운행하는 버스로, 4시간이면 다마스쿠스에 도착한다. 수도와 수도가 이렇게 가까운 나라도 드물 듯하다.
국경 개념이 없는 한국인은 버스로 국경을 넘을 때마다 설레는 건 어쩔 수 없다.
황톳빛 사막 풍경이 조금씩 푸른 나무들로 바뀌기 시작했다. 어느새 요르단 국경이다. 간단한 출국 심사를 끝내고 면세점에 들렀다. 국경 면세점이 신기했지만 딱히 살건 없었다. 다시 버스를 타야 시리아 국경을 넘을 수 있다. 땅에 금이 그어진 것도 아닌데 나라가 바뀐다는 게 다시 봐도 새롭다.
입국심사대는 굉장히 한산했다. 33달러의 입국비를 내니, 출입국 공무원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큰 눈, 선이 굵은 중동 사람의 미소가 시리아의 첫인상이었다.
다마스쿠스에서 가장 번화한 알마르제 광장으로 향했다. 택시에서 보는 다마스쿠스는 예상외로 활기차고 신선했다.
만일 지상의 낙원이 있으면 의심할 바 없이 다마스쿠스이며
만일 천상의 낙원이 있다면 다마스쿠스가 가히 비견될 것이다.
12세기 한 여행가는 다마스쿠스를 이렇게 찬양했다. 이 말의 의미는 다마스쿠스에 도착하는 순간 깨닫게 된다.
아라비아 나이트의 작은 궁전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다. 4인용 도미토리인데, 60대 프랑스 여성과 30대 네덜란드 남자가 이미 묵고 있었다. 이슬람 국가에 남녀 혼숙 게스트하우스도 있다니 다마스쿠스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짐을 풀고 숙소 옆 카페로 향했다.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카페도 작은 궁전 같다. 삼삼오오 이야기를 나누는 젊은이들이 보였다. 흔한 도시의 풍경이다. 하지만 그 사이로 줄담배를 피워대는 여성들이 눈에 띄었다. 흡연 여성에 대한 편견은 없지만, 왠지 히잡을 쓴 여성과 담배는 도통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하지만 여행 내내 길에서도 담배를 피워대는 여성들을 자주 봤다. 이제껏 이슬람 국가에 대한 나의 생각이 얼마나 편협됐는지.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다마스쿠스는 굳이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발길 닿는 데로 다녀도 행복한 곳이다. 천년이 넘는 건물과 미로 같은 골목들을 걷다 보면 잠시 중세시대로 간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낮에는 혼자 보물 찾기하듯 다마스쿠스 거리를 걷다가 들어왔다. 게스트하우스에 오면 프랑스 여성과 네덜란드 남성 여행자에게 다마스쿠스 예찬론을 들었다. 둘다 이곳 매력에 푹 빠져 다음 여행지도 잊고 있었다. 놀라운 건 다마스쿠스에서 만난 여행자들 대부분 '다마스쿠스 열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마스쿠스는 기원전 3,500년 전부터 인류가 산 가장 오래된 도시로, 구약성서에도 등장한다. 지금은 야경을 보러 가는 카슌산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이 피신한 곳이라 전해진다. 사도바울과도 인연이 있다. 원래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데 앞장섰던 바울은 다마스쿠스에서 시력을 잃는데 그리스도교인 아나니아스를 통해 시력을 찾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된다.
다마스쿠스는 수천 년간 여러 민족의 침략을 받아왔다. 지배자가 바뀌며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헬레니즘 문화, 비잔틴, 이슬람 문명 등이 차례로 들어왔고, 다마스쿠스는 이 모든 문화들을 융합해 특유의 문화를 꽃피웠다.
다마스쿠스를 여행하는 내내 느꼈던 자유롭고 활기찬 분위기는 바로 이 때문이리라. 수천 년 동안 다양한 문화를 접하면서 경계가 허물어지고 여유가 생겨난 것이다.
우마야드 사원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705년 우마위야 제6대 칼리파 왈리드가 세운 건축물로서 아랍 모자이크 예술의 백미로 꼽힌다. 넓은 대리석 광장을 지나 동서 길이 130여 미터 예배당에 들어서면 화려한 벽장식과 건축술이 시선을 압도한다.
원래는 토속신인 하다드(비와 땅을 주관하는 최고신)신전이었으나 로마시대에는 주피터 신전으로, 비잔틴 시대에는 세레 요한 교회로, 그리고 현재 이슬람 사원까지 우마야드사원은 다마스쿠스 역사의 축소판이다.
신기한 건 예배당 한쪽에 헤롯 안티파스 왕에게 참수당한 사도 요한의 머리가 안치된 무덤이 있다는 것. 교회에서 모스크로 변하면서 없앨 법도 한데 이슬람은 다른 종교를 존중할 줄 아는 포용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200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우마야드 사원에서 이슬람과 기독교의 화합을 설파하기도 했다.
수크라 불리는 하마디야 재래시장도 볼거리다.
사원과 연결되어 있는 이 시장은 무려 3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중동에서 가장 큰 시장답게 미로 같은 길이 이어지지만 흥미로운 물건들을 보고 있자니 길을 잃어버린 것쯤은 괜찮다.
시장에는 노새와 마차가 거닐고 사람들의 활기가 넘쳐났다. 중동의 향신료와 먹거리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하마디야는 매력적이었다. 한 가지 신기한 건 야한 여성 속옷을 파는 가게들이 많다는 것. 다시 한번 시리아를 새롭게 알게 된 것 같다.
2~3일만 시리아에 있겠다는 계획과 달리, 비자 만료 기간을 꽉 채운 뒤에야 시리아를 떠났다. 비자 연장을 하고 더 있을까도 싶었지만 아쉬움이 있어야 다시 또 이곳을 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시리아 내전은 2011년 3월, 학생들이 튀니지의 '자스민 혁명'의 구호를 벽에 써놓은 사소한 사건이 발단이 됐다.
정부는 과잉진압에 나섰고 이 와중에 시민이 사망하며, 독재정부에 대한 투쟁으로 번졌다.
여기에 종교 문제, 러시아와 미국의 개입, IS 등까지 내전은 7년째 계속되고 있다.
언론에서 접하는 시리아는 가히 충격적이다. 사람들은 목숨을 걸고 천국을 탈출해 난민이 됐다. 폭격으로 실명이 되고, 팔이 잘리고 가족들이 죽어나갔다. 활기찼던 다마스쿠스는 황폐한 도시가 됐다.
다마스쿠스의 오랜 골목을 걷던 기억은 이젠 한여름밤의 꿈이 되어 버렸다.
전쟁은 천국을 빼앗아가 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