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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북부 '빠이'에서 퇴사를 생각하다

독특한 분위기의 작은 마을, 유토빠이로의 여행

by 봄날의여행

이곳에서 까페를 차려볼까?



태국 치앙마이에서 762번의 커브길을 넘어 도착한 빠이(PAI).

아담하고 깨끗한 작은 마을 빠이의 분위기에 빠져, 도착한지 하루만에 이곳에서 살아볼까라는 생각을 했다. 5일뒤에는 다시 직장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말이다.

(참고로 예전에 외국에서 한국식당을 운영해본 경험이 있다)


곧장 현지 부동산에 찾았다. 활달한 성격의 중년 중개인 여성은 빠이가 최근 외국인들이 몰려와 식당을 할 만한 렌트가 없다고 얘기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바로 다음날 좋은 장소가 나왔다는 중개인의 전화를 받았다.

그녀의 고단수 상술인지, 아니면 빠이와 내가 인연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부푼 마음으로 가게를 보러갔다.




1층은 까페, 2층은 가정집인 목조 건물이었다. 따로 집도 구할 필요 없으니 생활비까지 절약되는 셈이다. 중개인은 ‘You are lucky girl'이라며 연신 엄지를 치켜 세웠다.

가게 주인이 암에 걸려 가게를 운영하기가 어려워 저렴하게 내놓았다고 한다. 원래 까페를 했던 곳이라 리모델링이 필요없어, 사업 신고 등 수수료를 포함해도 예상보다 적은 금액이었다. 나는 이내 카모메 식당의 삶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왠일인지, 다음날 가게 주인이 죽었다는 중개인의 연락을 받았다. 뭐 이런일이 있나 싶었다. 하루만에 가게가 나오고, 또 그 다음날 주인이 죽고. 그녀도 상갓집에 가는 길이라며, 가급적 빨리 내가 가게를 넘겨받기를 원하는 눈치였다.

갑작스럽게 주인이 죽었다니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다.

결국 퇴사는 보류됐지만, 빠이는 나에게 잠시나마 일탈을 꿈꾸게 해줬다.



아기자기한 빠이의 거리





'빠이'라 쓰고, '유토빠이'라 읽는다



빠이는 태국 치앙마이에서 북서쪽으로 136km 떨어져있는 메홍손 주의 한 도시다.

치앙마이와 함께 여행하기도 하고, 미얀마나 라오스까지 육로 여행의 중간 지역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행자들에게 빠이는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곳이다.

이름은 '빠이'지만, 그들은 '유토빠이'라 부른다. 유토피아 같은 곳!




치앙마이버스터미널. 빠이가는 버스는 아침 한 대 뿐이다. 그래서 발빠른 여행사들은 빠이행 미니버스를 운행하고 있다.


빠이는 깨끗한 숲과 마을, 자연온천, 고산족의 문화도 엿볼 수 있는 다채로운 매력의 장소다.

이 작은 마을에 태국 예술가들이 모여들었고, 여행으로 왔다가 그대로 정착해버린 유럽인들도 생겨났다. 그렇게 빠이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숲속 방갈로를 빌려 몇달씩 사는 여행생활자도 있고, 작은 가게를 열어 현지 주민이 된 여행자도 있다. 21세기 히피들에게 빠이는 천국으로 가는 정거장인 셈이다.


지금은 단체 중국여행자들로 넘쳐나게 됐지만, 그래도 빠이는 '소박함' '여유로움' 이 어울리는 마을이다.








마음을 내려놓으면 사랑에 빠진다




치앙마이에서 4일을 보낸 뒤 미니버스를 타고 빠이에 도착했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치앙마이에서 빠이까지는 762번의 커브길을 돌아야 한다고 한다. 빠이의 작은 터미널에는 태국에서 흔한 툭툭이도 없다. 시내는 걸어다니기 충분하다.


빠이에는 관광명소라고 부를 만한게 많지 않다. 새벽같이 일어나 조식을 먹고, 열심히 돌아다니는 여행자라면 ‘이게 뭐야’ 싶을 수 있다.

물론 카렌족(목이 긴 여성을 미인으로 여기는 소수민족) 등 고산족 투어나 일출 투어도 있지만, 투어를 하는 여행자들은 많지 않다.

빠이에서 무엇을 해야지하면 아무것도 할 게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한다 생각하는 순간 빠이는 할 일이 넘쳐난다.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빠이와 사랑에 빠지고 만다.





여행자들은 스쿠터를 빌려 숲이나 온천에 가는데, 난 그냥 빠이의 일상을 즐겼다.

느즈막히 일어나 쌀국수와 맥주한잔으로 배를 채우고, 숙소 발코니에서 책을 읽다 보면 어느새 어둑어둑 해진다. 그러면 슬슬 몸을 일으켜 야시장 구경을 나섰다. 빠이에는 매일 야시장이 열린다. 하지만 파타야나 푸켓 등의 대도시 야시장과는 또 다르다.

주점부리는 비숫하지만 곳곳에는 예술가들의 공연이 펼쳐진다. 몽환적인 음악을 선보이는 싱어송라이터를 만나기도 하고, 추상화를 그리는 화가도 볼 수 있다.




빠이의 야시장




여행자들이 사랑하는 애디블 재즈바


9시쯤 야시장이 문을 닫으면 난 애디블 재즈바로 향했다. 매일 밤마다 찾았지만, 한번도 똑같은 공연을 본 적이 없었다. 합석하는 것 조차도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이곳은 여행자들이 애정하는 장소다. 때론 유럽 여행자들도 공연을 하는데, 그들은 공연 후 CD를 판다.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는 시대에 CD가 팔릴리 없지만, 공연자들은 팔리건 안팔리건 행복해한다.

매일 반복됐지만, 하루도 똑같지 않았던 빠이의 일상.


열흘간의 여행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안. 그리고 난 다시 카모메 식당을 꿈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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