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 이스탄불 아야소피아 성당에서 만난 멋진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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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의여행

터키 이스탄불에 가면 꼭 놓치지 말아야 할 곳이 바로 아야소피아 성당이다.

성당에 한 걸음을 내딛는 순간부터 천상의 아름다움을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아야소피아 성당은 53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완성한 곳이다.

황제는 너무나 아름다운 이 성당에 들어서자마자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오! 솔로몬이여, 나는 당신을 이겼습니다!"



하지만 아야 소피아 성당은 테오도라 황후가 없었으면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성당이 건축되기도 전에 유스티니아누스는 황제에서 물러났을 테니.




유스티니아누스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불가리에서 돼지를 키우던 유스티누스는 전쟁에서 두각을 보여 518년 동로마제국의 황제가 된다.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는 나이가 많은데다 문맹이어서 자신을 보좌할 인물이 필요했다. 그래서 총명한 그의 조카, 유스티니아누스가 정치에 진출하게 된다.


어느 날 유스티니아누스는 로마 경기장에 갔다가 아름다운 무희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녀가 바로 나중에 황후가 되는 테오도라이다. 매춘부와 같았던 무희가 황후가 되자 사람들은 냉담했다. 하지만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며 인기를 쌓아갔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왼쪽)와 테오도라 황후(오른쪽)>(출처-다음이미지)




그러던 중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532년, 콘스탄티노플 경기장에서 일어난 응원단간의 충돌이 군중 반란으로 이어지며 성난 민중들은 황궁으로 진격하게 된다. (이는 향후 니카의 반란으로 불린다)

하지만 심약한 유스티니아누스는 놀라 도망치기에 바빴다. 그를 말린 건 테오도라 황후 .


황제여, 도망가기로 마음을 굳혔다면 금은보화와 배가 있으니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생명에 연연하면 필연코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실 것입니다
<로마제국 쇠망사>-에드워드 기번


그녀의 용기에 황제와 신하들은 정신을 차렸다. 황제는 즉시 벨리사리우스 장군을 보내 반란을 진압시켰다.

5년 만에 끝날 뻔했던 황제의 재위는 이로써 38년으로 늘어나고, 유스티니아누스는 동로마제국의 태평천하를 이룩하게 된다.




터키의 수도는 앙카라다. 하지만 터키의 수도를 이스탄불로 생각할 정도로, 이스탄불은 터키의 중심지이다.

이스탄불은 330년 콘스탄티누스가 콘스탄티노플이라고 부른 동로마제국의 수도로 천여 년 동안 비잔틴 제국을 꽃 피운 곳이다. 이후 1,453년 오스만 제국이 점령한 뒤로는 이슬람 문명의 중심지가 됐다.



이스탄불의 사소한 매력 하나도 그 어느 곳보다 강렬하다!
<보스프러스 해협에서 바라본 이스탄불 구시가지 모습>



한겨울 이스탄불을 찾았다. 누가 지중해는 따뜻하다고 했나. 겨울비까지 오고 나면 살을 에는 추위로 꼼짝없이 숙소에 죽치고 있어야 했다. 여유로운 배낭여행자라 무리한 일정은 없었다.

햇살이 좋을때는 트램을 타고 나갔다가 늦은 오후 게스트하우스로 들어왔다. 내가 머문 게스트하우스는 옥상에 끝내주는 뷰가 있어 구시가지가 한눈에 보인다. 보스프러스 해협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책을 보고 여행기를 정리하는 여행의 일상이었다.


날씨 핑계로 여유롭게 보낸 시간들이었지만, 여유라는 단어는 이스탄불이라는 도시와 꽤 잘 어울렸다.

여유로운 이스탄불 사람들의 일상이 나의 여행을 풍요롭게 했다.




아야 소피아 성당은 이스탄불의 구시가지에 있다.

이스탄불은 보스프러스 해협을 두고 탁심광장으로 대표되는 신시가지와 구시가지로 나뉜다.

신시가지는 고층 빌딩과 화려한 상가들이 즐비해 젊음이 넘쳐나는 곳이다. 반면 구시가지는 아야 소피아와 블루모스크 등 유서 깊은 관광지와 저렴한 숙소, 식당들이 많아 배낭여행자들의 아지트다.


<아야소피아 성당의 낮(위)과 밤(아래)의 모습>



'오, 테오도라 황후여. 그대에게 감사드립니다.'

한 시간이 넘게 기다린 뒤에야 표를 손에 쥐고 들어간 아야 소피아 성당을 보고 난 이렇게 내뱉었다.


1,500년 전 유스티니아누스는 솔로몬을 이겼다고 감탄했지만, 난 테오도라 황후에게 감사했다.

그녀가 없었다면 유스티니아누스는 반란 때 왕위를 빼앗겨 아야 소피아 성당을 재건축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아야 소피아 성당은 비잔틴 건축물의 백미로 꼽힌다. 중앙 내부 면적만 해도 7,000㎡이며 비잔티움 석조 공예의 진수를 보여주는 107개의 기둥이 돔을 받치고 있다.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아야소피아 성당

원래 아야소피아 성당은 360년에 지어졌지만 불에 타 416년에 다시 지어지고, 니카 반란 때 또 다시 불탔다. 그래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이전 보다 더 크고 견고한 성당을 짓도록 명령한다.


비잔티움 제국의 모든 것이 동원됐다. 목수 천명과 노동자 21만 명이 투입됐고 최고의 건축자재가 사용됐다.

특히 황제는 목재로 지어 여러 차례 화재가 났다며, 견고한 건축을 위해 고대 신전의 기둥까지 뽑아 건축에 활용했다. 이때 에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과 델피 신전의 대리석 기둥도 이곳으로 온다.


하지만 1204년 4차 십자군 원정대 성상과 성물들이 대거 약탈되고 만다.

기독교가 기독교의 상징을 약탈하고 무너뜨린 것이다.


이후 1453년 오스만 제국의 메흐메드 2세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된다. 이 사건으로 이스탄불은 기독교에서 이슬람의 중심으로 바뀐다.병사들이 3일간 이스탄불을 무자비하게 약탈하는데, 아야 소피아 성당만은 무사했다. 성당의 아름다움에 압도된 메흐메드 2세가 병사들에게 이 성당만은 파괴하지 말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다.

비록 다른 종교의 성소지만, 아름다움은 종교를 초월한다.


그는 이곳을 모스크로 바꿨다. 미나레트(이슬람식 첨탑)를 세우고 기독교 모자이크에는 회칠을 했다.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모자이크는 1931년 미국인 조사단에 의해 발견돼 회칠을 벗긴 것이다.


이로 인해 아야 소피아 성당은 블루모스크처럼 멀리서 보면 이슬람 사원처럼 보인다.

<이스탄불의 대표 명소인 아야소피아성당(왼쪽)과 블루모스크(오른쪽). 비슷해보이지만 블루모스크는 6개의 첨탑이 있어 외형적으로 더 화려한 모습이다>




천장은 거대한 돔이 둘러싸여 웅장함을 더한다. 햇빛은 유리창을 통과하며 무지갯빛이 된다. 그리고 실내를 은은하게 비추고 있는 화려한 샹들리에.


<아야소피아 성당의 아름다운 내부. 중앙에는 이슬람 지도자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중앙 돔에는 이슬람문자가 새겨진 거대한 원판이 둘러져 있다. 원판에는 이슬람 초대 칼리프(지도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직경이 7.5m나 되는 이글씨판은 이슬람 최고의 명필로 꼽힐 만큼 수려하다. 아랍어를 모르는 나조차도 멋진 글씨에 넋이 나가고 만다.



서로 다른 종교가 이렇게 완벽하게 공존하고 있는 건축물이 또 있을까.

하나하나가 다 놓칠 수 없지만, 시간이 없는 여행자라도 2층의 모자이크는 놓치지 말아야 한다. 오스만 제국 때 사라질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모자이크로 섬세한 표현과 살아 움직이는 듯 한 사실감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1층에는 '마리아의 손 모양'이라는 기둥이 있다. 기둥에 뚫린 구멍에 엄지손가락을 넣고 손을 떼지 않고 한바퀴 그대로 돌리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해서 이미 10여 명이 넘는 여행객들이 줄 서 있다. 손가락이 떨어지지 않게 한바퀴를 도는 것이 중요한데, 생각보다 어려운지 여행자들이 끙끙 거리고 있다.


<아야소피아 성당 1층에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마리아의 손 모양'기둥이 있다>


내 순서가 되어 나도 마음속에 한 가지 소원을 빌었다.

'길 위의 이 여정이 무사히 끝날 수 있게 해주세요'

사소한 소원이었지만 그저 여행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소망이기도 했다. 소원은 누구나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8개월여의 여행이 무사히 끝나고 난 아야소피아 성당에 다시 한번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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