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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홀한 밤, 말레이시아 티오만 섬

잊혀져가는 섬에서 맞이하는 열대의 밤

by 봄날의여행


Some Enchanted Evening
Some Enchanted evening, you may see a stranger
you may see a stranger across a crowed room,
and somehow you know, you know even then
that somewhere you'll see her again and again!
Once you have found her, never let her go!

황홀한 저녁, 낯선 여인을 만날지도 몰라요
사람들이 가득한 곳에서 그 여인을 보자마자 느낌이 올거에요.
당신도 모르게 자꾸만 그녀에게로 시선이 가겠죠
그녀를 찾았다면 절대로 놓치지 말아요

영화<남태평양>OST 중 (1958)



제 2차 세계대전, 한 섬에서 벌어지는 남녀의 사랑을 다룬 영화다.

한 여인에 대한 애틋한 음악속에 아름다운 한 섬이 보인다. 그곳은 말레이시아 티오만 섬.


남태평양.JPG 영화 <남태평양> 포스터






몇년 전 한적한 섬에서 여름휴가를 보내고 싶어서 선택한 티오만섬.

그다지 여행 정보도 많이 없는 섬이라는 게 더 맘에 들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해 바로 경비행기를 타고 티오만섬으로 향했다. 금액은 비쌌지만 시간이 아까운 직장인에게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비행기는 없어지고 페리와 버스로만 갈 수 있다고 한다. 여행자들이 줄은 탓이다. 파항주 메르싱까지 버스로 5시간을, 다시 고속페리를 타고 2시간을 더 가야한다.


티오만풍경2.jpg 티오만섬의 한적한 바다



작은 공항에 도착했다.

몬순시기여서 그럴까. 호객행위 하는 사람도 활기찬 식당도 없다. 중심가인 테켓마을까지 빗속을 혼자 걸어가는 발길이 조금 외롭다.




통나무 롯지 하나가 눈에 띄었다. 롯지 주인이 부른 값에서 절반을 툭 깍았는데도 그는 흔쾌히 방 열쇠를 건네줬다. 침대 시트는 눅눅하고 꿉꿉했다. 오랜 비 냄새와 누군가의 땀 냄새가 뒤섞여있었다.

롯지 옆 식당에서 간단하게 저녁을 먹은 뒤 일찍 침대에 누웠다.

‘후두둑 후두둑’ 밤새 통나무 천정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마음이 흔들려온다.

혼자 조용히 보낼 최적의 장소에 왔는데, 막상 외로움이 몰려온 것일까.




밤새 뒤척이기를 몇번, 어느 새 청아한 아잔(예배시간을 알리는 소리)이 들렸다.

벌써 새벽이 됐다. 이슬람국인 말레이시아의 하루는 늘 아잔으로 시작된다. 하루에 5번 울려퍼지지만 푸른 빛이 내려앉는 여명 속 아잔은 감동 자체다. 이슬람교도가 아니어도 아잔을 천국의 소리라 칭하는 이유를 알게 된다.




어짜피 다시 잠을 이루기도 어려울 것 같아, 점퍼를 걸쳐입고 새벽 산책을 나섰다. 밤사이 내린 비로 1038m의 카장 산은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공항이 있는 중심지인 테켓에만 식당들이 몇 개 보일뿐 그저 한가로운 섬이다.



티오만풍경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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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어디선가 밥 짓는 구수한 냄새가 빈속을 자극했다. 한 식당을 찾아 알리까페와 로띠를 주문했다. 말레이시아는 커피를 '코피(Kopi)'라 부르는데 상당히 맛있다. 특히 알리까페는 달달하고 양도 많아, 한잔만 먹어도 배가 든든해진다.

상쾌한 새벽 공기속에서 마시는 커피 한잔. 여행 첫날, 어제의 외로움은 사라지고 이곳이 금새 좋아졌다.





티오만 섬에는 해변이 많다. 해변 둘레로 저렴한 롯지부터 고급 리조트들이 모여있다. 성수기에는 해양 스포츠를 즐기기 위해 오는 여행자들이 좀 있지만, 지금은 문을 닫은 숙소가 많다.



나2.jpg
티오만풍경8.jpg


티오만은 1980년대에는 <세계의 아름다운 10대 섬>으로 제법 이름을 날렸지만 지금은 눈에 띄게 사람이 줄었다. 롯지 주인은 나를 볼때마다 해가 갈수록 장사가 안되 고민이라며 푸념했다.


확실히 세계 10대 섬으로 불리기에 티오만섬은 투박하다. 편의시설과 볼거리가 넘쳐나는 태국 섬에 비하면 이곳은 할일이 없다.


그래서일까. 섬에 머문 내내 여행자보다 현지인들을 더 많이 만났다. 그들은 농사를 짓고 통통배로 바다에 나가 생선을 잡아온다. 시장에 내다파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상처있고 작은 생선들은 집으로 가져갈 것들이다.


저녁이 되면 해변 앞 씨푸드 레스토랑에서는 생선 바베큐 냄새를 풍지지만 생선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해산물을 좋아하는 나는 늘 석양이 질때쯤 해변 앞 식당을 두리번 거렸다. 한 두명의 여행자와 함께 할때도 있지만 혼자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꽃무늬 비닐이 깔린 플라스틱 테이블에 싱싱한 해산물 요리와 맥주을 놓고, 말없이 지는 해를 바라보는 순간이 참 좋았다.

여행에서 아무것도 할일이 없다는건 때론 행복하다. 떠남, 그 자체를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티오만풍경11.jpg 티오만섬의 황홀한 밤


어디선가 노래소리가 들려온다.

‘이 황홀한 밤, 낯선 그 누군가를 만나게 될거에요. 그를 찾았다면 절대 놓치지 말아요’

해변 식당에서 홀로 지는 해를 바라보던 티오만의 황홀한 밤이 몹시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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