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시아의 아름다운 해변-태국 코창

론니비치(Lonely beach)에서의 나날들

by 봄날의여행
어느 섬의 일생 (life of some island)

지구의 고동으로 '섬'이 태어났습니다.
어부들은 고기를 찾아 섬으로 모여들었습니다.

히피들이 마리화나를 쫓아 섬에 다다랐습니다.
서퍼들이 파도를 찾아 섬에 왔습니다.
까페가 생겼습니다.
몇몇 여행자들이 섬에 왔습니다.

어떤 바보같은 놈이 여행잡지에 소개했습니다.
관광객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어부는 손을 놓고, 히피는 섬을 떠났습니다.
큰 호텔과 상점들이 문을 열었습니다.
원주민들은 관광객을 상대로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섬은 죽었습니다.

- 어느 식당 벽에 적힌 문구 -


코창여행410.jpg 코창의 환상적인 일몰



내가 태국 코창섬을 찾은 건 한 독일 여행자 때문이었다.

그와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여행에서 만났다. 앙코르와트를 함께 본 뒤에 야외 까페에서 저녁을 먹었다. 난 앙코르와트의 감동에 들떠있는데 그는 맥주 몇 병을 마시도록 한 섬에 대해 얘기했다.


“코창 섬에 가봤니? 진짜 너무 아름다워. 특히 론니 비치는 끝내줘. 300밧(만원가량)이면 해변 앞에 근사한 방갈로를 빌리는데, 여기서 하루 종일 맥주를 마셨어. 그곳은 천국이야"

저렴한 방갈로와 맥주는 아시아 어느 해변이나 마찬가지인데, 코창이 특별하게 다가온 건 ‘론니비치(loney beach)’가 주는 묘한 끌림이었다.


정호승 시인은 ‘죽음 없는 삶이 없듯이 외로우니까 사람’이라고 했다.

사람이니까 외롭던, 외로우니깐 사람이던, 외로움은 태어나기에 따라다니는 숙명과도 같은 존재다. 외로운 해변, 그곳에 꼭 가고 싶었다.




코창 가는 길


코창은 방콕에서 5시간 거리다. 수완나폼 국제공항에서도 바로 갈 수 있지만 여행자들은 대부분 카오산로드 여행사를 통해 간다. 버스와 배를 갈아타야 해서 여행사를 통해 가는 게 훨씬 편하다.


‘코’는 태국어로 '섬’을 뜻한다. 태국 맥주 이름이기도 한 ‘창’은‘코끼리’다. 코끼리 섬인 코창은 '태국의 몰디브'라 불리며 여행자들에게 입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코창 섬 선착장에 내리면 호텔 리무진들이 대기하고 있다. 여행자들은 미리 예약한 숙소 차량으로 호텔로 향한다. 코창 섬에는 론니비치 외에도 화이트비치, 크롱바오 비치 등 크고 작은 해변들이 있다.

화이트 비치는 코창에서 가장 번화한 곳으로 싱싱한 해산물 까페와 야시장, 마사지숍 등이 밀집되어 있다. 화이트비치가 가족 여행자들이 주로 머문다면 론니비치는 배낭여행자들이 모이는 해변이다.

코창여행185.jpg 리조트 썬배드에서 여유를 즐기는 여행자들



코창여행195.jpg 코창의 중심지 화이트 비치
코창여행217.jpg 바다앞에 펼쳐진 멋진 야외 까페



독일 여행자 말처럼 론니비치는 멋졌다. 푸른 해변앞에는 코코넛 잎으로 만든 방갈로도 많고, 서양 여행자들은 해변에 누워 안주도 없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코창여행355.jpg 자유로운 분위기의 론니비치


코창여행385.jpg 론니비치의 멋진 빈티지 까페
코창여행358.jpg 론니비치에서는 매일 매일 파티가 열린다


낮에는 한없이 조용하던 론니비치는 밤이 되면 생명력이 넘친다. 작은 바들에는 흥겨운파티가 열린다. 여행자들은 맥주를 마시고 춤을 추고, 오늘 처음 만난 이성과 사랑에 빠져든다. 나도 분위기 있는 까페 한켠에 자리를 잡았다.


한 여행자가 말을 걸어온다. "론니비치에서 외롭지 않니?"
그는 내 대답은 애초부터 궁금하지 않았다는 듯이 금새 무리속으로 사라졌다.

인생은 외로움과의 치열한 공존이다.
그 밤 홀로 론니비치를 거닐며, 그 여행자에게 뒤늦게 대답했다.

"외롭다는 건 너가 살아있는 증거야.
살아있음을 즐긴다면 외로움도 기꺼이 즐길 수 있지 않을까"



한적한 어촌마을 방바오


코창은 파도처럼 밀려왔다 사라지는 여행자들의 흔적으로 번잡하지만, 충분히 아름다웠다. 특별한 관광지가 없는 코창에서 할 일이 있다면 ‘아무것도 할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해변 곳곳에는 렌트 광고를 흔하게 볼 수 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여행자들은 아예 몇 달 씩 집을 빌려 코창에 머문다. 피시 마켓에서 사온 싱싱한 해산물로 식사를 하고 오토바이로 섬 구석구석을 여행하며, 해변의 지는 해를 보며 잠 드는 일이 그들의 일상이다.


그럼에도 코창에서 꼭 가봐야 하는 곳이 있다면 방바오마을이다. 코창의 남쪽 끝에 있는 방바오는 태국 어촌 마을의 한적한 풍경을 느낄 수 있다.

지나가는 썽테우를 타면 방바오 마을에 내려준다.

입구에는 작은 시장이 있는데, 바다위에 둥둥 떠있다. 나무 판자로 엮은 바닥 틈으로 파란 바닷물이 그대로 보이지만 폴짝 폴짝 뛰어도 생각보다 튼튼하다. 태국식 기념품 숍들 사이로 방갈로형 게스트하우스가 눈에 띈다. 바다 위에서 하룻밤을 보내면 어떨까. 눈치빠른 아줌마는 ‘싸게 해 줄테니 이곳에서 묵으라’며 잡아끈다. 이미 다른 곳 숙소 요금을 지불해놓은터라 머물수는 없었지만, 무척이나 아쉬운 마음이었다.



코창여행471.jpg 바다위 방갈로, 방바오 마을


시장 끝에는 선착장이 있다. 이곳에서 코창 주변의 작은 섬들에 갈 수 있다. 코창 주변에는 50여개의 섬이 있는데, 숙박시설이 단 하나뿐인 곳도 있고 무인도도 있다. 반가운 마음에 표를 알아봤지만 비수기에는 극소편만 운영한다.

더이상 외롭지 않은 론니비치, 여행 생활자가 넘쳐나는 코창은 이미 유명한 섬이 됐다. 남들이 모르는 섬을 찾기 위해 누군가는 이곳에서 배를 타고 더 깊은 섬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곳도 여행자들로 북적거리는 섬이 되겠지.


코창여행487.jpg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던 푸른 하늘과 바다



조용했던 섬, 여행자들로 넘쳐나다


그 옛날 코창은 그저 조용한 섬이었다.

1941년 태국과 프랑스(정확히 말하면 나치 독일 점령 하에 있던 남부 프랑스를 1940년부터 4년간 점령한 비시프랑스 정권)간의 전투가 코창에서 벌어지며 처음으로 이곳의 존재가 알려졌지만, 전쟁 후 다시 조용한 섬으로 돌아갔다.


70년대 히피들은 지상낙원을 찾기 위해 아시아로 몰려들었다. 코창 또한 어느 북유럽 여행자가 첫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조용한 해변에 론니비치라는 이름을 붙였다.

코창의 아름다움은 순식간에 퍼져나갔고 관광객들이 몰려들었다. 태국 정부는 아예 코창을 '제 2의 푸켓'으로 만들겠다며 본격적으로 개발했다. 토지를 무상으로 임대하며 코창 인구를 늘렸다. 코코넛과 과일을 재배하며 생계를 유지하던 원주민들은 하나둘씩 관광업에 뛰어들었다.

코창은 날로 유명한 섬이 되고 있다. 아마 어느 순간에는 푸켓 못지 않은 섬이 되어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멋진 섬은 이미 죽어가고 있는건 아닐까. 섬은 독일 여행자나 나같은 이들로 넘쳐나고, 우리는 아무생각없이 섬을 즐기다 떠나버린다.

그리고 아무 생각 없이 다른 여행자에게 얘기한다. “코창에 가봤니? 정말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야”


코창여행414.jpg 지금 이 순간 무엇이 부러울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핑크시티 '인도 자이푸르' 에서 만난 어느 릭샤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