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피자를 먹다
예정시간보다 반나절이나 늦게 인도 '자이푸르' 기차역에 도착했다.
인도 기차는 오늘도 어김없이 연착이다. 이젠 '인도의 시간'이 익숙해질법도 한데 역시나 쉽지 않다.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기차에서 마신 짜이 몇잔과 간식 뿐.
배도 고픈데 연착도 되니 다소 짜증난 상태로 기차에서 내렸다.
자이푸르는 인도 라자스탄주의 주도로, 1876년 영국 왕가의 방문을 환영하며 건축물의 벽을 핑크색으로 칠해 '핑크시티'로 불린다.
애초에 자이푸르는 계획에 없던 터라 바로 '조드푸르' 기차를 예약했다. 조드푸르는 라자스탄의 푸른 도시 '블루시티'다.
기차는 늦은 밤 출발이라, 이곳에서 꽤 오래 있어야 했다.
'기차만 제 시간에 도착했어도 벌써 자이푸르에 도착했을텐데'
또 다시 짜증이 밀려왔다. 일단 뭐라도 먹으면 짜증도 사라지겠지?
근처에 '피자 헛'이 있다는 가이드북의 반가운 글귀가 보였다. 역시 주도답게 큰 도시에나 있는 글로벌 식당이 있었다. 한달 이상 커리만 먹다 보니 기름진 음식이 간절했다. 무엇보다 거기엔 에어컨이 있다.
인도를 여행한 사람이라면 안다. 어느 곳에 도착하건 릭샤 왈라(인도의 교통수단인 자전거 운전수)가 벌떼처럼 몰려온다는 것을. 그들은 결코 포기를 모른다.
역시 기차역을 나오자 릭샤왈라들이 나를 표적으로 삼았다. 그 중 머리가 희끗한 한 릭샤왈라가 나를 계속 부른다.
“어디에 가니?”
난 대꾸하지 않았다. 대답하면 더 귀찮아진다는 걸 몇달간 인도여행을 통해 알게 됐기 때문이다.
릭샤왈라는 내 대답은 중요하지 않다는 듯 계속 따라왔다.
난 어쩔수없이 목적지를 밝혔다. 그리고 <피자헛>은 굉장히 가까워 걸어갈 계획이라며 친절하게 알려줬다.
하지만 그는 가이드북이 틀렸다며 계속 릭샤를 타라고 한다.
'나를 태우기 위해 거짓말 하는 거 모를 줄 알고?'
하지만 불안하게도 피자헛은 보이지 않았다.
인도는 이정표가 부실하기도 하지만, 금방 미로로 빠지는 신기한 곳이다.
릭샤왈라는 내 걸음속도를 맞추며 천천히 따라왔다.
무거운 배낭을 메니 초여름날씨에도 온통 땀 범벅이 됐다.
하지만 더 짜증나는 건 '스토커'같은 릭샤왈라였다.
내 인내심은 바닥을 드러냈다.
“귀찮게 하지 말고 저리 가라니까!”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쳤다. 인도 여행에서 몇달간 한번도 화낸적이 없었는데.
그에게 영어와 한국어로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구경을 좋아하는 인도사람들이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싸움을 말린다기 보다 심심해서 구경거리를 찾는 사람들이었다.
‘진짜 이 사람들이!’
게다가 릭샤왈라는 내가 화를 내건 말건 태평하게 웃고 있었다.
화내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포기하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피자 헛>을 찾았다. 기차역에서 나온지 40분이 넘어서였다. 릭샤왈라는 그 때까지도 나를 쫓아왔다.
‘릭샤왈라 아저씨,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하셨는데, 이제 다른 손님 찾으세요'
난 의기양양하게 식당에 들어갔다. 릭샤왈라는 밖에서 한참이나 나를 보더니 사라졌다.
그리고 난 에어컨 바로 밑에서 피자와 콜라를 우걱우걱 먹었다.
<피자 헛>은 인도에서는 꽤 비싼 식당이다. 밖에는 경찰까지 있다.
몇일 식비에 맞먹는 돈이지만 상관없다. 지금 얼마나 행복한가.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기차역부터 여기까지 고작 이 피자를 먹기 위해 온 내 모습이 한심했다.
<피자 헛>은 릭샤왈라의 수입으로는 왠만해선 오기 힘든 곳이다. 그는 천원을 벌기 위해 40분간 나를 쫓아왔는데, 난 그 돈은 아끼면서 천원의 수십 배에 돈을 쓰며 행복해하고 있다.
그의 말대로 피자헛은 걸어가기엔 너무 멀었다.
오로지 가이드북이 맞다며 이곳을 수백번 왔을 '토박이' 릭샤왈라의 말을 무시했다.
처음부터 릭샤를 탔으면 그는 돈을 벌어 좋고 나도 편하게 올 수 있어 서로 행복했을텐데.
서로 행복할 수 있는 아주 쉬운 방법을 나의 오만함이 저버린 것이다.
피자는 더 이상 맛이 없었고, 난 서둘러 식당을 나왔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아까의 릭샤왈라가 내 앞에 나타났다.
역시 인도는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없는 나라다.
릭샤왈라는 나에게 “기차역?” 하며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난 피식 웃으며 그의 자전거에 올랐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페달을 밟았다.
<피자헛>의 에어컨보다 더 시원한 인도의 바람이 나의 뺨을 스쳐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