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지킬 자신이 없으면 신념이라고 말해선 안된다. 상황에 맞게 버린다면 그건 빈 껍데기뿐이라고 생각했다.
내 청춘의 어느 순간, 삶보다 신념이 더 중요했던 때가 있었다. 그 결과 어둡고 침울한 세계의 끝에 떨어져버렸다. 밤마다 기도했다. 이대로 세계의 바닥으로 떨어져 아예 새롭게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세계의 끝이라는 여행지가 있다
‘세계의 끝’이라는 곳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지나칠 수 없었다. 지명 이름이 진짜 ‘End of the world’인 곳, 스리랑카 누와라엘리야에 있다. 왠지 그곳에 가면 내 청춘의 한 페이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누와라엘리야는 스리랑카 중부 도시로 수도인 콜롬보에서 동쪽으로 100km 떨어져있다. 대표적인 홍차 재배지로 해발 1,830m의 고산지대다. 스리랑카의 다른 지역과 달리 월평균 기온이 13~15도로 선선하다. 그래서 영국 식민지 시절에는 영국 고위층의 휴양지로 사용됐었다. 최근에는 골프장, 호텔 등이 들어서고 있지만 여전히 한적한 시골마을의 풍경이 남아있는 곳이다. 세계의 끝과 골프장은 어딘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그래도 이곳을 찾아가기로 했다.
부처님의 치아 사리가 모셔있는 불교 유적지 캔디를 본 뒤 버스를 타고 누와라엘리야로 향했다. 낡은 버스는 고산지대를 위태롭게 올라가지만 창 밖 풍경 만큼은 눈물 나게 아름다웠다. 끝없이 펼쳐지는 짙푸른 녹차 밭과 선선한 바람은 세계의 끝이 아닌 세계의 시작으로 가는 느낌이다.
황량한 풍경, 세계의 끝은 이런 곳일까
나는 아름다운 정원이 인상 깊은 작은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렀다. 게스트하우스 사장은 한국여행자는 처음이라며 이곳에 머무는 내내 나의 일상에 관심을 가졌다. 맛있는 음식을 했다며 하루가 멀다 하고 갖다줬다. 덕분에 스리랑카 가정식 백반인 커리앤라이스를 실컷 먹어볼 수 있었다. 한국도 된장찌개 맛이 집집마다 다른 것처럼 커리앤라이스도 그런것같다. 하지만 이곳의 커리앤라이스는 단연코 스리랑카 최고로 꼽고 싶다.
저녁에는 두툼한 스웨터를 입어야 될 정도로 쌀쌀했지만 한낮에는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는 여유로운 날들이었다.
세계의 끝은 누와라엘리야에서 40km 정도 떨어진 호튼플레이스 국립공원에 있다. 멀진 않지만 대중교통이 없고 길이 좋지 않아 대부분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짙은 운무를 보기 위해 보통 새벽 4시면 투어버스가 출발한다.
호튼플레이스는 토마스 파르라는 사람이 최초로 발견한 곳으로 천혜 동식물이 많아 영국 식민 정부도 관심을 가졌다. 1831년부터 6년간 스리랑카에서 총독을 지낸 영국인 로버트 윌모트 호튼 경은 자신의 이름을 따서 1834년 호튼 플레인스로 바꾸며 이곳을 보호했다.
외국인 여행자들은 현지인의 몇배의 입장료를 내야하지만, 누와라엘리아에 온 여행자들은 예외 없이 다 이곳에 온다. 여행사 버스를 타고 한 시간 만에 공원에 도착했다. 가이드는 공원 입구에 우리를 내려놓고 1시에 이곳에서 보자며 사라졌다. 버스에 같이 탄 여행자들은 인사도 없이 어느 새 각자의 길로 사라졌다. 다시 혼자가 됐다.
‘세계의 끝은 언제나 혼자 온다’
천천히 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가는 곳마다 처음 보는 식물들이 눈길을 끌었다. 갑자기 사슴 같은 동물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공원은 굉장히 커서 그 많은 관광객이 오는데도 사람 한명 보이지 않을 때도 많았다.
세계의 끝이라는 매력적인 문구와는 달리 걸을수록 그냥 잘 조성된 공원이구나 실망을 느겼다.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상술인건가. 지구는 둥근데 애초부터 세계의 끝이란 있을 수 없는 데 말이다. 이곳이 세계의 끝이 된 근사한 이야기도 없다. 스토리텔링 시대인데 스리랑카 정부는 기왕 이곳을 관광 상품으로 개발하려면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라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터벅터벅 걸었다. 입구에서 세계의 끝까지는 2시간 정도의 거리다.
그런데 나를 둘러싼 풍경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완만한 능선이 끝없이 펼쳐졌다. 나무가 무성한 곳도 있었지만, 어떤 곳은 언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나무 한그루가 황량함을 더했다. 풍경이 흐릿한 어느 꿈 속에 있는 기분이다.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새소리도 들린다. 그제서야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탁 트인 파란 하늘이 나를 감쌌다. 숨을 깊게 쉬어 나를 정화시켰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무의식적인‘세계의 끝’과 현실 세계인 ‘하드보일드’에서 갈등하는 주인공을 보여줬다. 하루키가 묘사한 ‘세계의 끝’에는 그림자(마음)를 버리고 들어가야 한다. 아직도 마음이 남아있는 사람들은 음산한 숲속으로 쫓겨났다. 마음이 없는 완전한 인간은 도시에서 산다. 도시에는 마음을 버린 사람들이 살고 있다.
뒤를 돌아봤다. 갑자기 그림자가 내 뒤를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졌다.
길에서 주저앉지 않는 한 세상의 끝은 없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렀을까, 눈앞에 갑자기 ‘World's end'라는 표지판이 튀어나왔다. 고작 간판 뿐인데 세계의 끝에는 기념촬영을 하는 이들로 붐볐다. 나도 의미 없는 간판 촬영을 끝내고 잠시 바위에 걸터 앉아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봤다. 누와라엘리야의 산맥이 켜켜히 보이는 모습이 이곳이 세계의 끝이 아님을 또 한번 증명해주고 있다.
살아오면서 절망하고 나락에 빠진 적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 내 눈앞에 층층히 쌓여있는 산처럼 끝은 진정한 끝이 아니었다.
'길에서 주저앉지 않는 한 내 정원의 문을 닫지 않는 한 세상의 끝이라는 것은 없다'
오후가 돼서 게스트하우스에 들어왔다. 주인 아저씨는 세계의 끝에 대한 내 인상이 몹시도 궁금한 듯 계속 물어봤다.
“세계의 끝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더라구요”
아저씨는 내 말에 빙긋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렇지. 모두들 세계의 끝이라 생각하고 가지만 결국 그 끝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알게 되더라구”
세상은 불완전하기에 아름답고, 불안하기에 다들 행복을 찾는다.
절망이 있기에 희망이 가치 있는 걸 알게 되고, 끝이 있다는 사실로 지금 현재가 소중할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