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태어날때부터 늘 이 말을 들어왔다.
여학생 교복은 예외없이 치마였고, 중요한 자리에는 바지보다 치마를 입었다.
지금은 남녀 옷의 구분이 많이 없어졌다해도 치마를 입은 남자나 양복을 입은 여자는 자연스레 사람들의 시선을 끌수밖에 없다.
지금보다 더 가부장이었던 1970년대, 남장여성 국회의원이 있었다.
김옥선 의원이다. 그녀는 정치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도 늘 숏커트에 양복과 넥타이를 메고 다녔다.
유신체제를 비판해 의원직에서 물러났지만, 지금 봐도 그녀의 모습은 파격적이 아닐수 없다.
<출처-네이버 이미지>
그녀는 어려서부터 미모와 재능을 겸비했지만, 왕위는 이복오빠(투트모시스 2세)에게 넘겨진다.
이집트 신의 대리인 파라오는 남자들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복오빠와 결혼하여 왕비가 되었지만, 늘 '왕위를 빼앗겼다'는 생각에 원통해했다.
하지만 운명은 그녀를 찾아왔다.
결혼 3년만에 이복오빠이자 남편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후처의 아들을 서둘러 왕위에 올려놓았지만, 그는 나이가 너무 어렸다.
하트셉수트 여왕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섭정이라는 명목으로 정치에 진출했지만, 그녀는 곧 스스로 파라오를 선포했다.
섭정으로 파라오가 된데다, 여성이라는 핸디캡은 국민들에게 인정받기 힘들었다.
그녀는 남장을 했다. 남자옷을 입고 파라오의 상징인 인조수염을 달며 남자처럼 행세했다.
그리고 강력한 카리스마로 기원전 1,490년부터 20년간 이집트를 지배했다.
후세 사람들은 이 시기를 이집트의 최고 전성기라고 평가한다.
룩소르는 고대 이집트 수도였던 테베로, 길거리의 돌 하나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화재의 보물창고와도 같은 곳이다.
그러나 아스완에서 펠루카로 3일만에 도착한 룩소르는 테베의 영광은 이미 사라진 조그만 도시로 다가왔다. 룩소르의 상징인 카르나크 신전을 제외하고는 시내는 온통 텅빈 황토빛 사막이었다.
'영광은 늘 이렇게 덧없는 것일까'
그러나 실망한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밤이 되니
이곳은 전혀 다른 세상이 됐다.
노란 가로등이 켜지며 황톳빛 세상은 순식간에 황금의 도시로 탈바꿈했다.
신전앞에는 한낮의 더위를 피하기 위해 나온 가족, 연인들의 웃음소리로 활기가 넘쳐났다.
나도모르게 탄성이나온다.
룩소르는 신과 인간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가장 완벽한 도시였다.
파라오들이 왜 오랜시간 이곳을 수도로 삼으며 사랑해왔는지 알것 같았다.
가로등 대신 고대 이집트에는 신전을 따라 촛불이 켜졌을 것이다.
촛불은 신전을 더욱 신성하게 만들었고,
사람들은 이집트 최고의 신인 라에 온 마음을 다해 숭배했을 것이다.
밤이 늦어도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막기후라 한낮에는 40도를 넘는 무더위지만
해만 떨어지면 기온이 내려가기 때문에
바람은 더없이 상쾌하다.
아이의 재롱에 즐거워하는 젊은 부부,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
낯선 곳에서 느끼는 정겨운 모습이다.
여행은 그리움을 느끼게 한다. 익숙한 것들과의 떠남은
늘 그리움을 동반하다.
한국에서 수만 킬로미터 떨어져있는
이 룩소르는
나에게 그리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혼자 여행할땐 보통 저녁이 되면
일찍 숙소에 들어가는 편이다.
위험 방지 차원도 있지만, 낯선 공간에서 홀로 책을 보고 일기를 쓰는 여유로운 시간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만큼은 이 밤의 정취를 오래도록 느끼고 싶었다.
이집트의 쓰디 쓴 커피 한잔을 들고 밤이 깊어질때까지 룩소르의 밤거리를 홀로 배회했다.
하트셉수트 신전은 왕가의 계곡의 마치 옵션같은 관광코스로 별 생각없이 들르게 된다. 하지만 실제로 이곳을 본다면 이 아름다운 건축물에 금방 마음을 빼앗기고 만다.
장제전에는 하트셉수트 여왕의 패기와 위용이 그대로 느껴진다.
하트셉수트 여왕은 장제전 제작을 재위 7년째 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제작은 당시 천재 건축가인 세넨무트가 맡았으며 완공까지 무려 15년이 걸렸다.
세넨무트는 고대 이집트의 가장 아름다운 기념물을 지었다
존 줄리어스 노위치(역사학자)
장제전을 두 눈으로 마주하니 이 역사학자의 극찬이 빈말이 아니었음을 실감한다.
나의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열주들의 행렬, 3층짜리 건물 곳곳에 그려진 아름다운 벽화와 거대한 조각상들.
여행은 늘 새로운 것을 보게 되지만,
내가 그동안 보지 못한 또 하나의 새로움을 보게됐다.
건물 내에 있는 200개가 넘는 조각상과 벽화는 어느 하나 똑같은 모양이 없다.
세넨무트는 얼마나 많은 번뇌와 고뇌로 이 건물을 지었단 말인가.
젋은 여왕과 천재 건축가의 사이에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건축가는 이 아름다운 미망인인 여왕을 너무나도 사랑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었기에 그는 아무도 모르게 그녀의 무덤 옆에 자신의 무덤을 설계했다.
그러나 이 계획은 발각 되어 결국 완성할 수 없었지만 내세라도 그녀와 함께 하고 싶었던 그의 사랑은 눈물겹다.
둘이 연인관계였는지는 불확실하지만 장제전을 둘러보다보면 마치 사실처럼 느껴진다.
돌 하나하나에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정성과 애틋함이 고스란히 전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게 신전은 너무나 완벽했다.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이집트에서 하루종일 돌아다니는 건 불가능하다.
3층 돌계단에 앉아 잠시 땀을 식히고 주위를 둘러봤다.
나처럼 혼자 온 여행자보다 단체로 온 관광객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이집트는 특히 단체 관광객들이 많은 곳이다. 대륙은 큰데 교통편은 불편해,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관광명소들을 가기 위해서는 여러모로 단체 여행이 편하기 때문이다
내가 앉아있는 이 자리에 여왕도 똑같이 서서 자신만의 신전을 보며
미소짓고 있지 않았을까.
원래는 장제전을 본 뒤에 파라오들의 무덤인 '왕가의 계곡'을 볼 예정이었다.
하지만 왠지 이곳에 오랜 시간 있고 싶어 왕가의 계곡은 내일로 미뤘다. 시간이 여유로운 장기여행자만의 특권인 셈이다.
오후의 황금빛 햇살이 길게 늘어저서야 나는 툴툴 털고 일어날 수 있었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들지 않았다.
잠을 자기에는 너무 아름다운 룩소르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