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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이 풍경을 잊을 수 있을까

실크로드 여행 - 감숙성 장예

by 봄날의여행

근 두달여의 실크로드 여행을 끝내고, 여전히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는 풍경이 여럿 있다. 이 풍경들은 나도 모르게 불쑥 불쑥 튀어나온다. 직장 동료들과 점심을 먹을 때에도,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에도, 아침에 눈을 떴을때도 문득 문득 떠올라, 나를 다시 실크로드 어디쯤으로 데려가곤 한다.


아득하고 공허했다.

실크로드 여행길에서 만난 풍경은 대부분 공(空), 텅빈느낌이었다. 눈 앞에는 놀라운 풍경이 펼쳐지지만, 어느 순간에는 마음 한켠이 공허해져 버린다. 영어의 'empty' 라는 단어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비움'의 여행이었다. 끝없이 펼쳐지는 건조하고 메마른 사막지대, 지평선의 끝에서 줄기차게 나를 따라오는 천산산맥, 푸른 하늘을 뚫을 듯 기세등등한 백양나무 숲.

실크로드 풍경을 보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그동안 나를 짓누르고 있던 세상 고민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진다. 이제껏 별거 아닌 걸로 고통스러워했다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우루무치로 가는 기차에서 본 풍경





감숙성 장예 칠채산(七彩山)도 그 중 하나다.

칠채산은 이름 그대로 일곱가지 색깔을 띠는 산이다. 침식, 퇴적 등 오로지 자연의 움직임만으로 만들어졌다.

이 기묘한 장소는 한 사진작가에 의해 알려졌다. 모두가 이 풍경을 합성이라 여겼다. 이제껏 지구에서 본 적이 없는 풍경이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사진작가들이 모여들었고, 칠채산은 금새 유명해졌다. 중국 정부는 가장 높은 명승지 등급인 5A로 구분하여 칠채산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칠채산의 규모는 510제곱킬로미터에 달한다. 감이 안잡힌다면, 서울 면적의 80%라 생각하면 된다.

한 도시에 맞먹을 정도로 거대한 칠채산이 그동안 눈에 안띄었다니 놀랍다. 중국 대륙이 넓은 이유도 있지만, 장예가 속해있는 감숙성이 중국에서 가장 낙후되고 개발이 늦은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크로드 시대만 해도 장예는 중요한 도시였다. 시안에서 돈황까지 이어지는 하서주랑의 길목에 있어 '금 장예'라 불릴 정도로 번영을 누렸다. 실크로드를 걷는 수많이 이들은 장예를 거쳐갈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칠채산을 넘어 서역으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갔으리라.


칠채산 행 버스에 올랐다. 장예터미널에서 버스도 있지만 마침 게스트하우스에서 투어버스를 운영해서 편하게 가기로 했다. 땅이 넓은 중국에서는 가끔씩 현지 투어를 이용하는게 더 경제적일 때가 많다.


칠채산이 있는 단하지질공원은 장예 시내에서 1시간 가량 떨어져있다.

입구에서 표를 구입하면 무조건 내부 셔틀버스를 타고 움직여야 한다. 셔틀버스는 총 4개의 전망대에서 하차하는데, 여행자들은 정해진 구간을 벗어나서는 안된다. 그 외 지역은 엄격히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북적대는 중국 인파에서 벗어나 광활한 칠채산을 홀로 걷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자연을 보호하기 위함이니 욕심을 내려놓는다.


가장 멋진 전망을 볼 수 있는 구간은 4전망대다. 칠채산의 아름다움이 응축되어있다. 시간이 없다면 1~3 전망대는 패스하고 4전망대에만 내려도 괜찮다.

그런만큼 4전망대는 발디딜틈이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눈 앞에 펼쳐진 장관에 빠져있다보면,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조차 잊게 된다.



칠채산의 기묘한 풍경











지표면 위에는 갈색 파도가 일렁이는 것처럼 황톳빛 산봉우리들이 끝없이 넘실대고 있었다. 나무하나 없는 매끈한 산 표면 위로는 영롱한 색깔이 켜켜이 쌓여 외계 행성의 띠처럼 보였다. 놀라운 건 빛의 흐름에 따라 칠채산의 빛깔도 묘하게 달라진다는 점이다. 기묘한 풍경을 바라보다보면 어느새 현실 감각도 사라져버린다. 어쩌면 지구 밖 어느 행성에 떨어진 것이 아닐까. 지구에 이런 풍경이 있을 거라고는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다. 자연은 이렇듯 인간의 상상력이 얼마나 좁은지를 깨닫게 해준다.


실크로드 여행을 떠난다고 할때, 주변에서는 응원보다 걱정이 많았다.

왜 그렇게 위험한 곳을 가려고 해.

지저분한 중국보다는 깨끗하고 세련된 유럽이 낫지 않니.

우리 나이에는 휴양지에서 쉬는게 최고야 등등.


틀렸다. 난 이제껏 그 어떤 여행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가슴벅찬 행복을 실크로드 여행 길에서 느꼈다. 다른 여행지보다 더 많이 걷고, 더 많이 힘들지만 그 어느때보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 인간의 나약함에 대한 깨달음은 나를 조금 더 나은 인간으로 성장시키게 했다.


게스트하우스에 돌아오니 사장이 나의 감상평을 궁금해했다.

안그래도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었던 찰나였다.

혼자 여행다니면 아쉬운 게 두가지다. 식당가서 맛있는 음식을 더 많이 시키고 싶을 때와 멋진 풍경을 보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을 때다.

대화상대는 나타났지만 이 벅찬 감정을 온전히 설명할 수가 없었다. 중국어도 기초수준인데다 영어로 시시콜콜 설명할 재간이 없다. 그저 '페이창 하오(非常好, 너무 좋다)'만 연발할 따름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실크로드 여행을 더 하다보면 칠채산은 별거 아니었구나 느낄거에요'


그의 말처럼 이후 실크로드 여행길에서 더 많은 대자연의 풍광을 봤다.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풍경이 있었다는 놀라움과 감동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더 멋진 풍광을 봐도 장예의 칠채산은 늘 마음 속에 남아있다. 그리고 난 그리움에 이끌려 언젠간 다시 또 이곳을 찾을 것이다.

열기구를 타고 칠채산을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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