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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 반하다
네팔에서 겪은 버스 전복사고
- 난 그날 뜨거운 눈물을 흘릴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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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여행
Dec 3. 2017
네팔 카트만두에서 인도
다즐링까지 가는 중이다. 중간에
국경마을인 카카르비타
에서 갈아타야 한다
오후 5시경 카트만두에서 출발한 버스는
중간에 낡은 휴게소에 한번 내려줄뿐, 한번도 쉬지 않고 밤길을 달렸다.
인도국경마을로 가는 낡은 버스
바퀴가 굴러가는게 신기할 정도로 낡은 버스였다.
허리한번 펴려면 자리에서 일어나는 수밖에 없는 각진 의자에,
창문은 열리지도 닫히지도 않아 새벽 바람이 그대로 들어왔다.
처음에는 걱정이 돼 자는 둥 마는 둥 했지만, 이내 단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온통 칡흑같던 그때, 갑자기 버스에 타있는 승객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사고가 났음을 직감했다.
역시 버스가 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네팔의 산악지대는 가드레일 없는 절벽길이 대부분이라
이변이 없는 한 이곳은 벼랑이었다.
창문밖을 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기에, 난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다.
아. 죽음은 늘 삶의 한 구석에 있다더니
호시탐탐 나를 노리고 있었구나.
죽음을 받아들
인다는 건 지금 이순간 사치였다.
그저 죽음
의 순간이 왔다.
하지만 버스는 한바퀴를 구르더니 기적처럼 멈춰섰다.
비포장이 심한 한 산길이었던 것이다.
'나마스떼'
신에게 감사하는 것외에 생각나는 말이 없었다.
유리 파편을 밟고, 여기저기 부딪힌 뒤에 버스에서 간신히 나올수 있었다.
언제 긁혔는지 모르게 내 손등으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삶은 어찌 이다지도 고되단 말인가
그런데 내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누구하나 병원에 가는 이도, 경찰에 신고하려 전화하는 이도 없었다.
버스기사만 어딘가로
무심한 전화를 할뿐이었다.
이제 갓 7살쯤 됐을 것 같은 어린 소년은
이마가 찢어진 채로 엄마 품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그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마치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듯이.
한참뒤에 경찰이 와서 형식적으로 버스기사에게 몇마디 인터뷰를 할 뿐,
거기에 동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칼바람이 부는 매서운 네팔의 새벽 바람을 피해
순식간에 모닥불을 피우더니, 하나둘씩 지나가는 차를 잡고 사라졌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나에겐 생사를 넘나든 이 순간이 그들에겐 그저 일상의 하루일뿐이었다.
'삶은 어찌 이다지도 고되단 말인가'
그러나 그들을 위로하는 내 눈물마저 사치였다.
난 오래도록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다음 이동지까지 어떻게 가야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알수 없었다.
그때 한 네팔 아저씨가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걸었다.
"오늘 힘들었죠? 하지만 괜찮아요, 내일은 행복이 올거에요"
그의 말은 나에게 울림이 됐다.
‘禍兮福之所倚, 福兮禍之所伏’
'화 속에 복이 있고, 복 속에 화가 있다'.
- 노자 도덕경 58장 -
슬픔도 기쁨도 그저 지나가는 한순간에 불과하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아니 버스에 탄 이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들은 나의 스승이었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나도 지나가는 버스를 잡아 탔다. 아까보다 더 형편없는 버스였다.
어디로 가는 버스인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계획보다 한참을 늦게 까까르비타에 내렸다. 하지만 그 어느때보다 난 행복했다.
여행은 이 세상의 스승을 찾는 여정이 아닐까.
여행은 이 세상의 스승을 찾는 여정이 아닐까. 큰 울림을 안고 며칠만에 네팔 국경을 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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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스트
동남아시아에서 까페주인도 해보고 장기여행자로도 살아봤습니다. 지금은 퇴직이후 더 나은 삶이 뭘까를 고민하며 살아가는 중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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