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양나무 숲, 그리고 쿠마라지바여!

신장위구르자치구 쿠차(库车)

by 봄날의여행

우루무치에서 야간 기차를 타고 동트는 새벽녘, 쿠차(库车)에 도착했다.

쿠차는 타클라마칸 북로에 위치한 실크로드 도시다. 쿠차는 신라시대 고승 혜초가 지난 곳이며, 고구려 유민 고선지 장군의 서역원정 출발지로 잘 알려져있다.


새벽 6시, 쿠차에 도착했음을 알리는 안내방송을 듣고 잠이 덜 깬 상태로 기차밖으로 나왔다. 새벽 공기의 신선함은 늘 최고의 자연 각성제다. 찌뿌둥한 머리는 금새 맑아지고, 여행의 엔돌핀이 다시금 솟아올랐다.


새벽의 쿠차역




보조가방에서 여권을 꺼내 개찰구로 향했다. 중국 기차여행에서는 여권이 필수다. 기차역에 들어갈때, 플랫폼에 들어갈 때, 마지막으로 기차에서 내려 밖으로 나갈때 등 최소 3번의 여권 검사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매번 여권을 넣고 빼는 일이 귀찮기만 했는데, 내가 예약한 기차를 정확히 탈 수 있고 수상한(?) 승객을 미리 차단할 수 있어 오히려 장점도 많다.


역무원에게 여권을 내밀자 그는 나를 한번 쓱 보더니 "지금 나갈 수 없다"며 막아세웠다. 외국인이라 공안에게 확인을 받아야 한다는 이유다.


중국에서 가장 정치적으로 민감한 지역을 꼽으라면 신장위구르자치구 티베트자치구(시짱)를 들 수 있다.

그래도 티베트자치구는 14대 달라이라마 덕분에 전 세계에 많이 알려졌지만, 신장위구르자치구는 여전히 베일에 쌓여있다. 신장위구르자치구는 원래 수많은 유목국가들의 땅이었는데, 청나라 시절인 1884년에 처음 중국영토에 합병됐다(과거에는 일부지역에 도호부를 설치하는 정도였음).

청나라가 멸망하며 잠시 중국땅에서 분리되기도 했지만 1955년 신장위구르자치구로 다시 편입됐다. 그때부터 이곳에 살고 있는 대다수 튀르크계 위구르인들의 저항이 시작됐다. 거센 분리독립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문제는 이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중국의 가혹한 인권학대와 폭력이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보니 신장위구르자치구는 중국 다른 지역에 비해 거리에서 공안 경찰을 더 자주 마주치고, 검문검색도 많은 편이다. 일부 지역은 여행자들의 출입도 금지되어 있다.


배낭을 내려놓고 초조하게 공안을 기다렸다.

20여분만에 제복을 입은 푸른 눈의 위구르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내 여권 속 비자를 요리조리 뜯어보더니 자신의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고 어딘가로 전송하며 질문했다.

'어디에서 오는 중이야?'

'쿠차에는 왜 왔어?'

'어느 호텔에 묵고 있니?'

'다음에는 어디를 갈 것이냐?'

푸른 눈의 공안은 내 대답을 메모하고 몇 통의 전화를 하더니, 그제서야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쿠차에 온 것을 환영한다"







쿠차는 과거 '구자국(龜玆國)'으로 불리는 나라였다. 작지만 완전한 독립 국가가 있던 지역인 것이다.

천산산맥의 남쪽과 타클라마칸 사막 북쪽에 있어, 죽음의 사막 타클라마칸 북로에서 만나는 천국같은 오아시스 도시다. 신라 혜초스님을 비롯해 <서유기>속 삼장법사의 실제인물인 당나라 현장법사도 쿠차를 지나 인도로 향했다. 고선지 장군의 서역 원정 출발지이기도 하다. 고선지는 어린 시절을 이곳 쿠차에서 보냈으며, 당나라가 위험에 처하자 747년 파미르고원을 넘어 토번공략에 나섰다.



쿠차왕궁



쿠차왕궁 앞 번화가





그리고 또 한 명의 인물이 있다.

내가 쿠차에 온 이유이기도 하다.

바로 쿠차왕국의 승려 쿠마라지바(구마라습, 344~413)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코미디 영화 제목이 되며 단어의 무게가 달라졌지만, 이 말에는 불교의 정수가 담겨있다.

'색(色)은 공(空)이요, 공(空)은 곧 색(色)이다'.

나 같은 필부(匹夫)는 평생 죽었다 깨놔도 한 단어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말을 만든 사람이 바로 쿠마라지바이다.


그는 생전에 300여권의 불경을 번역했다. 지금 우리가 아는 <법화경> 등 대부분의 불경이 그의 손을 거쳤다.

불경 번역이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싶겠지만, 당시 상황을 보면 얼마나 어려운지 짐작할 수 있다.

부처님의 열반 이후 부처님의 말씀은 인도 전역에서 구술로 전승됐다. 하지만 지역마다 같은 말도 다르게 불리다보니 부처님의 말씀은 와전됐고 혼란스러워졌다. 쿠마라지바는 이를 한데 모아 체계적으로 번역했다. 쿠마라지바를 통해 비로소 불법의 체계가 갖춰졌다 할 수 있다. 경전 번역의 기준이 없던 당시, 그가 얼마나 홀로 치열하게 번역작업에 고심했는지 상상조차 쉽지 않다.

그는 번역에 완벽을 기했다. 얼마나 완벽했는지, 쿠마라지바는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번역한 경전은 틀린 부분이 하나도 없어, 내가 죽으면 내 혀만은 타지 않을 것이다"

화장하고 난 뒤 놀랍게도 그의 혀만 온전히 남았다고 한다.



쿠마라지바를 만나러 키질석굴로 향했다. 키질석굴은 쿠마라지바가 356년 출가한 뒤 불교를 공부한 곳으로, 석굴 앞에는 그의 동상이 있다.


키질석굴은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석굴이다. 둔황 막고굴보다 오래된 것으로, 현재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어 있다.

3세기부터 만들어졌는데, 당시에는 230여개의 동굴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현재는 80여개 정도만 남아있고, 그 중에서 여행자들이 볼 수 있는 곳은 6~7개에 불과하다. 석굴은 승려들의 조용한 수행공간이다. 그들은 비좁은 동굴속에서 삼매경에 빠져들었고, 때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기도 했다.

또한 석굴은 실크로드를 지나는 이들에게 희망의 장소였다. 척박하고 위태로운 길에서 만난 석굴은 그들에게 다시금 길을 걸을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동굴 내부에는 불교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벽화들이 그려졌다. 이름모를 화가들의 필체로 그려진 벽화는 석굴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보석이다. 하지만 보석은 세월이 흘러 상처가 나고 금이 생기게 됐다. 1900년대 초 독일, 영국 등 수많은 탐험가와 고고학자들은 서역으로 몰려와 수많은 벽화를 뜯어갔다. 키질석굴 뿐만이 아니다. 돈황 막고굴, 투르판 베제클리크도 마찬가지다. 문화재 보존이라는 허울좋은 명분에 감춰진 문화도굴꾼이나 다름없었다. 피터홉커크는 이들을 '실크로드의 악마들'이라 부르기도 했다.



키질석굴은 쿠차시내에서 60km 가량 떨어져있다. 대중교통이 없어 대부분 현지 여행사를 통해 일일투어로 가게 된다.

키질석굴에 갈때는 절대 잠들 수 없다. 바로 '사막공로'라 불리는 엄청난 길 때문이다.

사막공로는 죽음의 사막 타클라마칸을 통과하는 여러 도로를 통칭한다.

과거 실크로드를 걷는 이들에게 타클라마칸 사막은 공포 그 자체였다. 타클라마칸 사막의 면적은 33만 제곱킬로미터다. 감이 안잡힐 수 있지만, 한반도의 1.5배 규모다. 이 광할한 사막을 걷는 일은 죽음과 맞바꾼 행위였다. 오죽하면 죽어야 나올 수 있는 곳이 타클라마칸 사막이라 한다. 혜초는 <왕오천축국전>에서 타클라마칸 사막에서 수많은 사람의 뼈를 봤다고 기록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곳에 아스팔트를 깔았다. 고속도로는 낙타대신 수많은 여행자들을 실어나르며 현대판 실크로드를 잇고 있다. 매끈한 고속도로 주변은 풀한포기 없이 앙상한 척추를 드러낸 붉은 산맥이 끝없이 이어져있다. '차르타그', 불모의 산이다. 시원하게 뻗어나간 고속도로와 황량한 풍경의 조합은 묘한 이질감과 기묘한 조화를 느끼게 한다.



키질석굴로 가는 길, 황량한 산과 매끈한 고속도로는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버스는 2시간여만에 키질석굴 입구에 도착했다. 가이드는 입장권을 사서 전달한 뒤 자유시간을 줬다.

카메라 소지는 불가해서 무거운 카메라를 내려놓고 가볍게 석굴로 향했다.

가장 먼저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양쪽에 늘어서있는 백양나무 숲길이었다. 백양나무는 건조한 중국 서부지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기차를 타면 창밖으로 백양나무 군락을 자주 보게 되는데, 황량한 황톳빛 풍경과 어우러져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는 백양나무의 모습은 언제나 실크로드의 낭만을 선사한다.


온화한 바람에 맞춰 살랑거리는 백양나무 잎,

뜨겁지만 건조한 햇살.

눈부신 파란 하늘.

한걸음 내딛을 수록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는 키질석굴과 쿠마라지바의 검은 동상까지.


이보다 더 완벽한 순간이 있을까.


나의 마음을 울린 백양나무 숲길




눈을 지그시 감고 선정에 빠져있는 쿠마라지바 동상은 황량한 키질 석굴과 완벽한 조화를 보여줬다. 반듯한 이마, 꽉 다문 입술, 고뇌가 느껴지는 섬세한 손가락까지. 쿠마라지바가 당장이라도 눈을 뜨고 나에게 말할 것 같다. '모든 것은 공(空)이니라. 네가 지금 보고 있는 나의 모습조차도'


쿠마라지바의 삶은 고난이었다. 중국 전진의 장군 여광은 구자국을 침공했고, 쿠마라지바를 포로로 삼았다. 여광은 미치광이로 소문난 인물로, 현자인 쿠마라지바에게 수모를 주며 기뻐했다. 극단적인 예는 사촌 여동생인 쿠차 공주를 쿠마라지바와 강제로 동침시킨 일이다. 결국 쿠마라지바는 여동생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파계를 하게 된다.



눈을 뜨고 나에게 말을 할 것 같다. 너무나 아름다운 쿠마라지바 동상




쿠마라지바를 한참 동안 바라본 뒤 키질 석굴로 향했다.

석굴은 혼자 볼 수 없고 무조건 현지 가이드의 인솔로 단체로 움직여야 한다. 총 6개의 석굴을 볼 수 있는데, 석굴에 들어가면 안에서 대기중이던 가이드가 해당 석굴을 소개해주는 시스템이다.

석굴은 크기도 다양하고 생김새도 같은 듯 조금씩 달랐다. 내부에는 곳곳에 뜯겨나간 벽화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승려의 얼굴이 반쯤 잘려나가있거나, 아예 한쪽 벽면이 도려내어 차가운 암벽이 그대로 모습을 드러낸 곳도 있었다. 잘려나간 벽화는 전 세계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일본 오타니가 수집한 벽화는 현재 우리나라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벽화에는 유독 푸른색이 많은데, 이는 '라피스라줄리'라는 청금색 광물에서 얻은 연료이다. 당시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만 나오던 귀한 광물이었다. 쿠차인들은 특히 푸른색을 좋아했다. 지금도 쿠차시내를 걷다보면 창문에 파란색을 칠한 집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쿠차인들에게는 푸른 하늘은 신과 다름없었다. 그들은 가장 성스러운 푸른색을 이용해 가장 신성한 장소인 석굴을 장식한 것이다.



키질석굴에서는 푸른 하늘과 어우러진 무자르트강이 한눈에 보인다. 황량하고 척박한 황톳빛 산들은 쿠차에 이르러서 푸른 나무와 강물을 만나게 된다. 완벽한 조화로운 오아시스 도시풍경이다. 외롭고 고난한 실크로드를 걷던 이들에게 쿠차는 생명과 삶의 용기를 주던 희망의 도시였으리라.


키질석굴


키질석굴에서 내려다본 풍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