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하게 아팠다.
나는 평상시에 큰 병도 없고, 여행에서도 아파본 적이 거의 없다. 한번쯤은 장염에 걸리게 된다는 인도에서도 6개월 동안 여행하며 물갈이 조차 하지 않았다. 네팔 안나푸르나 트래킹에서도 고산증은 커녕 감기도 걸리지 않았다. 평소 '여행 체질'이라고 자부하던 나를 비웃는 듯, 이번 실크로드 여행에서는 무려 보름동안을 시름시름 앓고 말았다.
증상은 카슈가르에서 타슈쿠르간(塔什库尔干)으로 향하는 버스에서 시작됐다.
타슈쿠르간은 파미르고원 동남부에 위치한 국경도시다. 세계의 지붕이라 일컫는 쿤룬산맥, 카라코람산맥, 텐산산맥 등 거대한 산맥들이 교차하는 실크로드 주요 도시다. 당나라 고선지 장군은 이곳 석두성(石头城)에서 파미르 고원 정복에 나섰다. 또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경인 쿤자랍패스(4,793m)가 있는데, 이곳을 통과하면 파키스탄에 갈 수 있다.
타슈쿠르간 행 버스를 탈 때만해도 기분이 좋았다. 지리책에서나 봤던 거대한 자연 풍광을 가까이서 본다는 흥분에 몸은 어느때보다 가벼웠다. 실제로 눈앞에 보이는 풍광은 상상 이상이었다. 시야를 가득 채우는 거대한 산맥, 봉우리마다 내려앉은 만년설은 그야말로 감탄을 불러왔다.
버스는 2시간 쯤 지나 백사호(白沙湖)에 정차했다. 백사호는 <서유기>에서 삼장법사가 사오정을 잡아갔다는 곳이다. 옥색 빛깔의 푸른 호수와 새하얀 모래산이 있어 백사호라 불린다. 운전기사도 식사를 하기 위해 내렸고, 승객들 모두 버스에서 내려 사진을 찍기도 하고 간단한 간식을 사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매서운 바람이 불어 배낭에서 경량패딩을 꺼내 입고 버스에서 내렸다.
그때였다. 머리가 핑도는 어지러움과 온 몸에 한기가 퍼졌다. 속이 울렁거리더니 구토가 시작됐다. 3000m 가 넘는 곳이라 고산증이 온 듯했다. 결국 백사호 풍경은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채 다시 버스에 올라타 남은 3시간 동안 빈 의자에 누워올수밖에 없었다. 내 옆에 앉은 중국인 아저씨는 30분마다 한번씩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봤지만, 내가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겨우 겨우 타슈쿠르간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한 뒤 배낭도 풀 여유없이 6인실 도미토리 침대에 누웠다.
오한은 더욱 심해져 두꺼운 옷을 여러겹 껴입고 이불을 두개씩이나 덮었는데도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고열과 현기증에 시달렸고, 물만 먹어도 구토했다. 비상약으로 챙겨온 조제약을 먹고, 두통약을 몇개나 먹었는데도 소용없었다.
원래 다음날 버스를 타고 파키스탄 국경도시인 소스트까지 가려고 했지만, 아침이 되도 나아지지 않아 결국 하루 더 이곳에 머물기로 했다. 타슈쿠르간 또한 해발 3천미터가 넘는 고산도시라 그런지 증상은 더욱 심해지기만 했다.
꼬박 24시간이 지나자 조금 나아지는 듯해 겨우 몸을 추스려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커피도 마셨다. 하지만 이때 먹은 음식 또한 게스트하우스에 가자마자 다시 다 게워냈고 고열이 시작됐다. 그래도 다음날에는 억지로 기운을 내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중국-파키스탄 국경은 금요일인 오늘 출발하지 않으면 주말 동안은 문이 닫혀 갈 수 없기 때문이다. 힘들어도 출발해야 했다. 티켓을 구입하고 소스트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중국-파키스탄 국경버스는 파키스탄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저렴한 파키스탄 물건을 중국에 팔기도 하고, 중국 물건을 파키스탄으로 가져가는 상인들이 대부분이다.
세관을 출발한 버스는 금새 카라코람 하이웨이에 진입했다. 카라코람하이웨이는 중국 카슈미르에서 파키스탄의 아보타바드(Abbottabad)까지 이르는 왕복 2차선 도로다. 4,693m 쿤자랍패스(Khunjerab pass) 국경을 지나기 때문에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속도로'로 불린다.
옛날 이 길은 사람이나 말이 지나던 좁고 가파른 길이었다. 실크로드 상인들이 걸었고, 구법승들이 걷던 길이다. 1980년 중국과 파키스탄의 합작으로 카라코람 하이웨이가 깔렸다(하지만 대부분이 중국자본이다). 생각보다는 도로 사정이 좋지만, 중간 중간 가파르고 험한 길이 많아 아찔할때가 있다. 겨울에는 눈 때문에 통행이 막혀, 5월부터 10월 정도까지만 열린다.
버스를 타면 좀 괜찮겠지 싶었는데, 쿤자랍패스에 가까워지자 현기증과 울렁거림은 더욱 심해졌다. 창밖은 시선을 압도하는 거대한 자연풍광이 시시각각 펼쳐지지만, 나는 극심한 고통으로 풍경을 제대로 즐길 수가 없었다. 옆에 앉은 파키스탄 남성은 외국인 여행자가 반가운지 계속 말을 걸어왔지만, 어떠한 말도 입밖으로 내뱉을수가 없었다.
쿤자랍패스에 도착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경이다. 이곳에서 짐검사를 한번 더 한다. 쿤자랍패스의 짐검사는 악명이 높다. 가방을 탈탈 털어 소지품을 검사하고, 휴대폰 사진까지 일일이 검사하기 때문에 민감한 사진은 알아서 미리 삭제하는 게 좋다. 하지만 소문과 달리 의외로 수월했다. 공안경찰과 세관직원들은 조심스럽게 가방을 검색했고, 카메라나 휴대폰도 한번 켜보기만 할 뿐 보지도 않은 채 다시 돌려줬다. 오히려 힘들게 서있는 나를 걱정하며 의자를 꺼내와 쉬라고 하고, 누군가는 약을 건네 주기도 했다.
쿤자랍 패스를 통과한 뒤 버스는 점점 고도를 낮췄다. 파키스탄 영역이다.
푸른 녹음이 우거진 숲길이다. 기후도 온화해져 햇살도 부드러워졌지만, 내 몸은 해빙(解氷)의 조짐이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고열과 울렁거림은 지속됐다. 타슈쿠르간에서 출발한지 10시간 만에 파키스탄 소스트 국경사무소에 도착했다. 소스트는 크게 볼 것 없는 작은 국경도시라, 여행자들은 보통 이곳에 머물지 않고 곧장 훈자나 이슬라마바드로 향한다. 그래서 국경사무소 인근에는 이들을 실어나를 승합차들이 항시 대기하고 있다. 하지만 난 도저히 훈자까지 바로 갈 수가 없어 근처 호텔에서 하룻밤 머물기로 했다.
호텔 방에는 거대한 붉은 꽃 그림이 그려진 밍크 담요가 침대위에 깔려있었다. 아마도 이곳 날씨가 꽤 춥기 때문일 것이다. 이불에서는 시큼한 냄새가 났다. 매일 두꺼운 담요를 빨수가 없기에 이곳을 거쳐간 이들의 체취가 최소 몇달간 베어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에겐 가장 소중한 물건이었다. 난 담요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깊은 잠에 빠졌다.
꿈을 꿨다. 지독한 악몽이었다.
나의 건강은 급속도로 더 나빠져 이제는 걷지도, 먹지도 못한 상태가 됐다. 아는 사람이 한명도 없는 낯선 여행지 숙소에서 난 하루종일 침대에 꼼짝없이 누워있었다. 호텔 직원이 수상함을 느껴 내 방문을 열고 시체처럼 누워있는 나를 발견했다. 의료진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나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쯪쯪, 가망없겠는걸"
눈을 뜨니 창밖엔 푸르스름한 새벽 빛이 가득했다.
이 여행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아니 계속해야할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