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의 소확행?
아버지는 언덕너머 작은 논매미에 거름 한 지게을 져다 놓으시고 나서야 이른 아침을 드셨다.
나는 집에서 시오리 길. 학교에서 돌아오면, 꼴(풀) 을 한뭉태기 베고 어둑한 방죽(저수지)둑에
매어놓은 송아지와 염소를 집으로 몰고 온 뒤에야 저녁을 먹었다. 집에서 공부하는 일은 별반 없었다.
중학교 졸업 할 때 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벽촌에 살았다. 저녁이면 석유 호롱불을 켜고
무협지를 읽었다.
나는 농사일이 싫었고, 지금도 좋아하지 않는다. 은퇴 후, "귀농 귀촌"은 나에게는 공포스런 일이다.
4월 은퇴 후, 지인의 강화도 밭 한귀퉁이를 빌러 작은 밭을 일구었다.
태생이 촌 놈인 내게 30평 남짓 작은 밭은 사실 뭐 "껌" 이다.
삽으로 퍽퍽 파 일구고 괭이로 고랑 일구고 상추,고추,가지, 토마토,고구마 모종을 주루룩 심었다.
여름내 모두들 잘 자랐고, 싱싱한 채소를 싫컷 수확해 먹었다.
왕복 110 km 의 너무 먼 주말농장(?) 이었지만 강화도 여행 겸, 늘 즐거운 나들이였다.
사진의 새싹은 김장용 무우였는데, 조금 자란 뒤, 고라니 녀석이 완전히 다 먹어 치웠다.
다시 청 갓 씨를 뿌렸는데, 오늘 가 볼 참이다.
배추값이 비싸다는데, 밭에 충분히 기르고 있다.
농잼. 농사 짓는 재미가 내 어릴 적, 그 어려운 시절을 불러 오고
은퇴 잼. 평일 날 강화도 곳곳을 누비는 재미가 한가롭고 즐겁다.
나의 채소밭은 강화도 장화리.
일몰 전망지로 전국 명소 중의 명소이다.
오후에 밭에서 일을 하고
저녁 노을을 기다린다.
밭에서 500m 면 바다이고
바닷가로 나가면 바로 석양 앞이다.
한 두곳
식당이나 카페에서 바라보기도 하고
주문도,볼음도 가는 선수리 선착장에서
바라보기도 한다.
가을비가 너무 많은 탓에 "고구마 캐기"가
여의치 않다.
흙 냄새 가득한 고랑을 파고,
줄지어 나오는 고구마의 흙을 툭툭 털어
내야 하는데, 땅이 질척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
진짜 완전히 은퇴하고 작은 농사꾼이 될까?
나는 어린 시절, 그 농사일이 싫어서
귀농은 질색인데
어쩌나 작은 밭 가꾸는 재미가 너무
쏠쏠하다.
10월 18일. 오늘 서둘러 고구마를 수확했다.
큰소리 뻥뻥했지만, 땅 속의 수확은 기대치의
절반 정도? 계속되는 가을비로 땅 속이 너무
질척이고, 고구마싹만 너무 자란 탓이다.
좀 늦게 심은 문제도 있었지만, 그나마 만족 해야지.
잘 씻어서 한 솥 쪄 먹어봐야 겠다.
5월부터 10월 사이.
강화도 소풍은 행복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