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여년 전, 어느 때 개암사에 다녀간 적이 있었다.
절의 모습에 대한 생각은 거의 없는데 그 뒤의 두 개 바위 봉우리는 가끔 기억으로 올라왔다.
마음이 가끔 찾아간다는 의미인가.
생각은 떠 올려야 하는 것이지만, 마음에는 남는 것이여서 그런가
울금바위는 개암사 뒤의 바위가 아니라, 개암사 그 자체일 것으로 보인다.
사람이 짓고 가꾸는 건물은 자주 변하지만, 저 바위가 변할 일은 없다.
여섯 살, 두 살 아이들과 같이 했던 그 여행길의 나는 많이 , 정말 많이 변했다.
주차장서 전나무 숲과 차 밭 그리고 일주문을 지나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내소사등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저기
울금바위까지가 개암사 경내라면 개엄사는 세상에 제일 규모가 큰 절 집이다.
개암사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800m 거리의 울금 바위까지 가려다 중간에 되돌아 나왔다.
오후 시간상 욕심이라는 마음이 들어서이다.
커다란 렌즈가 달린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진 작가분이 오후 햇 살이 비끼는 대웅전 꽃살문
찍기에 분주하다.
법당에 가만히 앉아 앞의 부처님과 뒤의 햇살비끼는
창문 그림자를 번갈아 본다.
평일 정오가 지난 山寺는 적막하다.
많이 움직이면, 적막의 그림이 흩어진다.
나도 가만히 있는게 좋겠다.
不二橋.
다리 이쪽 출세간과
다리 저쪽 피안이 둘이 아니라는 뜻이겠지?
서해 바닷가의 중간인 이쪽 곰소항과 내포 바다는 소금이 많은 곳이었다.
선운사나 내소사에는 "보은염" 이란게 있고 축제때는 "이운식"이란 행사가 있다고 들었다.
옛 날, 어느 스님이 인근 어민들에게 소금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어 마을을 풍요롭게 해 주었고,
고마운 마음에 어민들이 매년 소금 공양, 소금 보시를 해 오고 있다는 것이다.
개암사 한 켠 작은 매점에서는 "개암 죽염"을 판매하고 있다.
대나무 진액이 녹아들어간 죽염이 여러 효능이 좋고, 이곳 개암사가 그 개암죽염의 태생지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곰소 젓갈이 그렇듯,이 지역에서의 소금은 사람들의 생활 기반이었나 보다.
충청도에서는 동지에 마을 집집마다 팥을 한웅큼씩 거두어 뒷 산의 사찰에서 팥죽을 쑤고 나누는
행사가 있었다.
유교적 바탕의 사대부와 달리 민초들은 성황당과 산신과 부처님등이 어우러진 상부 상조와 스스로의 계율로
세상을 유지하고 바르게 살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