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문이 열렸다.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어 보지만 마주치는 눈이 없다. 목소리만 들린다. 유독 높은 카운터에 가려져 어린이 이용자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엉거주춤 일어나 어린이 이용자와 눈을 맞추고 인사를 나눈다. 한두 명. 뒤이어 어린이 이용자들이 들어선다.
학교가 끝났구나.
이 시간에 오는 어린이 이용자는 주로 책만 읽고 간다. 책을 빌리지 않으니 대출카드를 볼 일이 없고 이름을 알기도 외우기로 쉽지 않다. 그저 어린이 이용자 저마다 갖고 있는 특징을 이름처럼 기억한다. 같은 자리에서 그림만 그리다 가는 어린이, <흔한 남매 시리즈>를 보고 또 보는 어린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어린이(주로 서 있거나 누워있는다), 요리사를 구하는 안내문을 들고 왔던 기획단 어린이.
시간으로 고유한 이미지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3시에 만나는 어린이, 4시에 만나는 어린이, 5시 30분에 만나는 어린이. 시간을 알려달라는 어린이 이용자들도 자주 만난다. 저마다 시간도 다르다. 2시, 3시 30분, 5시. 동시에 5명씩 부탁하곤 한다. 이름은 몰라도 특정 이미지로 관계의 고리를 이어나간다.
시간을 알려주기로 약속을 받은 어린이 이용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자리에 앉아 책을 펼친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자세는 흐트러지고 거의 누운 듯한 자세로 책에 몰입한다.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 저렇게 한 숨 잠이 들면 얼마나 달큰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도서관에 오는 어린이 이용자들이 내게 시간을 부탁하는 이유는 또 다른 약속이 있기 때문이다. 중간중간 시간을 체크할 수 있지만 약속을 어길까 봐 불안한 것이다. 멍하니 시계를 바라보다 초바늘까지 정확하게 맞추어 신발을 신는 어린이도 만난다.
내게는 지금 당장 좇아야 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동시에 평온한 나만의 시간을 얻을 것이다.
<시간을 지키다>오사 게렌발 지음, 이유진 옮김, 우리나비
어쩌면 어린이 이용자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일은 책에 폭 빠져 몰입할 수 있도록 근심 하나를 덜어주는 일 아닐까. 마음 놓고 책을 볼 수 있도록 시간을 지켜주는 일, 나는 그 일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 지금 2시 56분인데...
어린이 이용자는 벌써 사라지고 없다. 이상하게 40분보다 4분 후 시간을 기억하기 어렵다. 일을 하다 보면 아이들이 부탁한 시간을 잊을 때도 있다. 시간을 늦게 알려주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어린이 이용자들은 싫은 내색 한 번 하지 않는다. 그들만의 너그러움과 여유로움이 시간의 경계를 누그러뜨린다.
-안녕히 계세요.
-응, 또 놀러 와!
쪽지에 적어둔 3시에 쓱 가로줄을 긋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