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파에 앉아 가만히 책장을 쳐다보니 책장 한 칸에 아끼는 블루투스 스피커가 보인다. 언제 마지막으로 음악이 흘러나왔더라. 한 때는 배터리 방전이 '아차'싶게 느껴지게 사용하던 나날들이 있었다. 처음 사온 순간은 또 어떻고. 사고 싶다. 갖고 싶다. 필요하다. 지금이다. 등의 과정을 거쳐 우리 집으로 명분상 "필요한" 물건이 들어왔다. 다시 떠 올려 보아도 기분 좋은 감정이 기억이 난다. 얼마쯤 행복해했을까. 얼마 동안이나 만족해했을까.
노래 가사처럼 정말 그랬다.
상처를 주는 건 사람이지 물건이 아니었다. 어딘가에서 부서져온 심장을 어루만져 주는 것은 물건들이었다.
새로 산 스피커에서 나오는 묵직한 소리가 마음에 평온을 주었다. 주고받는 감정이 아니어도 인간을 위로해 주는 것. 절대 미움이나 상처가 오가지 않는 관계. 변심해도 그것을 배신으로 여기지 않는 이상한 관계.
인간의 사랑에도 호르몬으로 인한 끝이 있듯이,물건에 대한 감정도 이내 끝이 난다. 아직 버려진 않았지만, 예전만큼 자주 사용하고 있진 않으니 끝이 멀지 않을지 모르겠다. 감정이 없는 물건들은 많은 것을 주고 생각보다 빨리 떠난다. 그 위로가 길지 않기 때문일까. 그리고 또 다른 물건이 들어와 공허한 마음을 다시 한번 채워준다. 사랑으로 아픈 상처는 또 다른 사랑으로 치유하라는 말처럼 그렇게 반짝이는 새로운 녀석은 또 멍든 마음을 다독여 준다.
그렇게 집은 가득 채워졌다. 마음을 어루만져 주던 물건들이 이제 그냥 물건으로. 익숙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물건 하고도 "관계"라는 말이 필요할 정도로 아주 많은 물건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감정의 교류.
물건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방적인 추억만 쌓이는 관계여서 그렇게 쉽게 식는 거구나 싶었다. 365겹의 파이가 아닌 한 겹짜리 파이. 곁으로 봐선 구분하지 못해도 한 입 베어 물면 그 식감의 차원이 다른 파이처럼.
물건은 어쩌면 딱 그 정도 가벼운 파이에 지나지 않을지 몰랐다. 쉽게 구워서 빨리 먹고 허기를 채우는 그런 종류의.
씁쓸하다.
위로가 필요한 순간 쇼핑을 한다는 것이.
감정의 교류가 불가능한 사물이 마음을 채워준다는 것이.
그것을 알면서도 똑같은 방식을 습관처럼 하고 있다는 것도 꽤나 씁쓸하다.
알고 있다.
상처를 주는 사람이 상처받은 사람을 꼭 되돌아 봐 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러기엔 모두가 너무나 바쁜 세상이라는 것을.
그래서일까.
다들 자신을 지키려고. 쉽게 상처받지 않으려고. 더는 속지 않으려고.
개인주의도 MZ만의 생각들도 등장한 것이.
극도로 손해 보기 싫어하는 마음속에는 모두 자신을 지키려는 마음이 숨어 있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