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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율 Nov 23. 2023

부고를 기다리며

나였던/낯선 괴물의 추억

나의 아버지는 변호사였다. 골프채 하나에 오백은 넘는다며 아무렇지 않은 척 자랑하곤 했다. 그리고 그 골프채로 키우는 개를 걷어찼다. 가끔은 맨발로도.

     개 패는 변호사. 그게 내 기억 속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의 전부다. 물론 아버지가 숨 쉬는 내내 개만 팬 건 아니었다. 직업이 있으니 당연히 일도 했고 나에게 붓글씨와 자전거와 이단줄넘기도 가르쳤다. 저녁밥으로 참치볶음밥을 해준 적도 있고 어쩌다 마주친 내 친구들에게 용돈을 건넨 적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은 작은 개의 신음소리에 바르르 떨며 사라졌다. 소스라치는 비명. 거친 숨결. 둘 곳 없는 시선. 진공.

     그리고 나와 개와 아버지밖에 없는 그 커다란 집의 식탁 아래에서 거실을 거쳐 베란다 창문까지 날아가 쾅 부딪히는 그 궤적의 잔상. 두려움에 몸이 얼어붙은 개의 약간은 축축한 털 냄새. 같은 공포를 공유하며 끌어안으면 느껴지는 따뜻한 체온. 그리고 안에서 걸어잠글 수 없게 되어 있는 내 방으로 들어와 등을 문에 기대고 주저앉으면 밖에서부터 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낮고 묵직한 발소리.

     절대 듣고 싶지 않은 목소리.

     열어.

     이내 나는 내 어린 동생을 품에 안은 채 들리지 않는 조그만 소리로 속삭인다.

     내가 커서 너를 꼭 이 집에서 나가게 해줄게. 그리고 꼭 저 새끼를 내 손으로 죽일게.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 집에서 어머니는 나를 보호해주지 않았다. 오히려 본인이 나에게 보호받아야 마땅한 존재인 양 굴었다. 그러면서 자존심을 굽히지도 않았다. 그 이중성에 나는 나이가 들수록 넌더리가 났다. 어머니는 늘 내 아버지를 자기 남편이 되기에 한참 모자란 인간으로 묘사했지만 결국 그 인간이 보증을 잘못 서 모든 재산이 가압류가 될지도 모를 지경에 이르기 직전까지는 이혼을 고려해 보지조차 않았다. 말로는 나를 위한 거라고 했지만 아버지가 나에게 쌍욕을 할 때도 접시를 집어던질 때도 술에 취해 새벽에 내 방에 들어와 나를 껴안고 주정을 부릴 때도 어머니는 항상 내 옆에 없었거나 자기랑은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인 듯 뒤로 빠져있었다. 그러고도 어미 노릇을 해보겠다며 기껏 한다는 조언이 요즘은 친아버지도 친딸을 성폭행하는 시대니 아버지랑 단 둘이 있을 땐 조심하라는 같지도 않은 말이었다. 내게서 아버지를 빼앗고 싶지 않아 자기가 참고 사는 거라고 입버릇처럼 푸념하면서 정작 나에겐 늘 그를 조심하라고 다그치던 모순. 그건 시대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일군 실패한 가정의 문제라는 걸 어머니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대신 그 실패의 결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사이비종교에 빠졌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아버지는 사이비에 종속돼 가는 어머니를 말릴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어머니가 집에 없을 때마다 오히려 후련하다는 표정으로 니 애미는 또 거기 가있냐고 물어볼 뿐이었다.

     그렇게 아버지와 개와 나밖에 없는 시간은 점점 많아졌다. 그리고 그건 이미 집이 아니라 감옥이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을 결심한 날도 나는 평소처럼 침대에 웅크린 채 방문 밖에서 오가는 고성을 흘려들으려 노력하며 몇 시간째 뒤척이고 있었다. 새벽 두 시인가 세 시쯤 마침내 아버지가 씩씩대며 문을 걷어차고 내 방에 들어왔다. 그리고 침대에 걸터앉아 흥분에 찌들은 목소리로 말했다.

     니 애미랑 이혼하기로 했다.

     나는 다소곳한 자세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최대한 잠에 취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그때 내 머릿속을 지배한 건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씨발 알겠으니까 내 방에서 나가. 내 방에서 나가. 내 방에서 나가.

     나는 열두 살이었고 어머니와 아버지가 갈라서는 것 따위에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다만 아버지의 보증 때문에 내 작은 개에게도 빨간 딱지가 붙을까 봐 염려됐고 어떻게든 그 녀석을 지켜야 한다는 것만이 중요했다. 한동안 빨간 딱지를 붙이러 무서운 사람들이 들이닥치면 어디에 개를 숨겨야 안 들킬까 하는 시뮬레이션을 수도 없이 되풀이했다. 그러는 사이 나는 마치 처음부터 그랬던 듯 순식간에 한부모가정의 아이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도망치듯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했다. 아버지는 처음엔 자기가 나를 가져가겠다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머니는 니가 어떻게 아들도 아닌 딸을 혼자 키울 거냐며 내주지 않았다. 나의 의사를 물은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내가 빨간 딱지가 붙을 수도 있었던 것들과 완전히 동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누군가의 소유물이었고 사람이 아닌 무언가였다.

     결국 내가 빨간 딱지를 실제로 보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도 내 개도 다행히도 무사했다. 다만 채권자의 소유가 아니라 친권자의 소유로서 무사했다.

     그리고 그건 이미 삶이 아니라 형벌이었다.


내가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건 열여덟 살의 일이었다. 그날도 아버지는 내 방문을 발로 걷어찼다. 퍽 하는 소리가 낡은 아파트의 콘크리트벽들 사이로 윙윙 울렸다. 그러나 닫힌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버지와 이혼한 후 어머니는 사이비종교에 더 깊게 빠졌고 나는 그들의 손길에서 스스로를 차단시키기 위해 은둔형 외톨이로 변모해 갔다. 누가 그 종교에서 왔을지 몰라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학교도 가지 않았으며 방문에는 다섯 개의 철물 자물쇠를 달아 날마다 비밀번호를 바꿨다. 피해망상이고 강박증이었지만 마냥 그런 것으로만 치부하기엔 위험은 실재했고 나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막연한 구원을 기다렸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받아들인 뒤로는 친권이 소멸되는 열아홉 살 생일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바퀴벌레처럼 틀어박혀 연명할 뿐이었다.

     그리고 사이비로 끌려가지 않기 위한 그 은둔술이 본의 아니게 아버지의 발까지 부러뜨리는 데 일조했다는 건 그 시절 나에게는 그나마의 위안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는 두렵기만 한 거인에서 다치기 쉬운 일개 늙은이로 전락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아버지의 발차기에 아무것도 날아가지 않았고 아버지 자신만 피해를 입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아버지와 나는 괴물 대 괴물로서 대등해졌다.

     그날 아버지는 발에서 느껴졌을 엄청난 통증을 겨우 억누르며 자신과 영원히 서로 안 보고 싶냐고 물었다.

어차피 이혼한 뒤로 계절에 한 번씩도 찾아오지 않던 아버지였다. 그 몇 년 동안 나는 아버지에게 연락이 올 때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듯한 희망을 품고 자물쇠들을 열어 아버지의 얼굴을 보러 나섰지만 아버지는 번번이 더 의심할 바 없이 나의 희망을 짓이겼다. 나는 어머니가 종교에서 벗어나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길 원했고 아버지가 그래도 최소한 같은 사람으로서 그런 징검다리 역할을 해줄 수는 없을까 기대하곤 했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끝까지 자기연민의 연장으로만 나를 바라보았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지만 그 놀랍지도 않은 사실 때문에 내가 성년이 되기 전에 다시 세상의 일부로 돌아갈 가능성은 완전히 묵살되었다. 아버지는 그저 창고에 맡겨놓은 버리기는 아까운 먼지 쌓인 물건 보러오듯 생각날 때마다 나를 보러올 뿐이었고 그마저도 내가 고분고분 응하지 않으면 방문을 박살내서라도 자기 기분에 따라 행동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인간이었다.

     그리고 발가락의 뼈가 으스러지듯 우리의 관계도 그렇게 끝이 났다.

     나는 영원함을 인질 삼는 그의 윽박지름 앞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니가 태어난 이후로 자기 뜻대로 된 것이 단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그의 인생에 좋은 기회가 올 때마다 너라는 것이 그걸 망치기만 한다고. 니가 아프게 태어나 신생아 때 갑자기 수술실에 들어간 뒤부터 늘 그런 식이기만 했다고.

     나는 다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 방문에 있는 다섯 개의 자물쇠를 마음에도 똑같이 채웠다.

     아직도 내 마음 속의 수많은 자물쇠 중 적어도 다섯 개는 그날 이후로 단 한 번도 열린 적이 없다.


인연을 끊는다는 말이 있다. 그러나 인연이 있었던 적이 있어야 끊기라도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개를 패고 방문을 걷어차는 인연은 처음부터 인연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없었던 것이 없는 것으로 안착했을 뿐이다.

     천륜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하늘도 고개를 돌리는 굴레가 있다. 유년의 감옥과 그로 인한 형벌은 하늘의 잔인함만을 내게 각인시켰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 누워서 침을 뱉어봤자 어차피 하늘은 모른다.

     어린 시절의 세상은 무척 작기 때문에 그들이 미치도록 두려웠었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똑같이 증오했지만 공포가 컸던 것은 물리적인 폭력을 더 쉽게 쓰던 아버지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의 직업이 변호사라는 것도 은연중에 내 공포를 가중시켰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나를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으로 만들어버릴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사회에 나와서 보니 매년 수천 명씩 쏟아져나오는 것이 변호사였고 아버지는 개중에서도 날고 기기는커녕 밑에서 굴러다니는 그저 그런 삼류에 불과했다. 저예산 영화에서 조연 내지는 엑스트라로 등장해서 자신의 모든 불행을 어린 자식들 탓으로 돌리며 씩씩대고 화풀이하다 혼자 비참한 최후를 맞곤 하는 멍청한 가장의 뻔한 레퍼토리 그대로였다. 처음에는 그런 사람을 그토록 두려워만 했다는 게 너무 화가 났다. 하지만 그를 떠올리지 않고도 숨 쉬고 움직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점차 원망이라고 할 만한 것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원망은 일말의 애증이라도 남아있어야 구현 가능한 감정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이따금씩 들불처럼 끓어오르는 발작과 같은 적개심과 그 불길로도 녹일 수 없는 굳건한 앙금들을 빼고는.


너를 아프게 한 그 새끼를 삼십 년이 지나면 꼭 내 손으로 죽여버리겠다고 맹세하게 했던 내 개가 죽은 지도 벌써 다섯 해가 지났다. 커서 이 집에서 나가게 해주겠다는 말은 열아홉 살이 되자마자 칼같이 지켰지만 다른 하나의 약속은 그 착한 녀석이 기다려주질 않았다. 어쩌면 내 두려움이 모두 사그러질 때까지 내 옆에 있어주기 위해 나에게 와준 천사였는지도 모른다. 파이라는 이름의 그 개는 나와 단 둘이 살게 된 지 겨우 이 년 만에 내 이십 대의 출발선이 지나자마자 급하게도 흙으로 돌아갔다. 열 살엔 삼십 년이 지나 내가 마흔이 되고 아버지가 병든 노구가 되면 그때야말로 내가 공포에 짓눌리지 않고도 그를 대적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젠 굳이 그 오랜 시간을 기다리지 않고도 힘들지 않게 이겨낼 수 있는 상대였다는 걸 안다. 그리고 굳이 폭력을 폭력으로 갚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 안다. 이제 나는 더는 그를 죽이고 싶지 않다. 다만 내 인생에 그의 자리를 완전히 지운 채 조용히 부고를 기다린다. 그리고 부고가 내게 닿는 그날에 마지막 자물쇠까지를 모두 풀어내고 진정한 자유를 맞을 것이다.

     인연이 아닌 폭력의 굴레를 그 자리에서 그렇게 끊어낼 것이다. 오롯이 내 안에서. 거인도 난쟁이도 아닌 평범한 사람으로 다시 서기 위해서.

     그리고 그 작은 몸으로도 나를 지켜내 끝끝내 사랑을 가르쳐준 내 동생 파이를 위해서.

     나는 앞으로의 시간에서는 그처럼 괴물이 되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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