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의 편지] 이야기 일곱
스트레스와 분노 조절의 불가능. 약. 약물. 약물 치료.
해감되지 않은 찌끄러기들.
흔들림과 두근거림. 좋을 수 없는 두근거림.
그리고 마지막이라는 말과 모든 것의 끝으로 끌려가는 클리셰.
그리고 오늘은 아침 약을 좀 일찍 먹었다.
오늘은 눈물을 또 얼마나 더 흘려야 할까.
별을 잃은 등대에게 빛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당신은 내가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을 사랑했었다고 했어. 하지만 아무도 항해하지 않는 바다에서 수평선을 지켜봤자 별을 닮은 그 빛은 돌아오지 않아. 그리고 밤하늘은 언제나 어둡겠지. 낮과 밤을 잊을 만큼.
나는 그런 세상에서 나 자신을 지킬 자신이 없어.
이 년 전 여름으로부터.
오랜만에 자해를 했어. 하루 두 번으로 약을 늘린 뒤로는 처음이었던 것 같아.
내일이면 또 정신과를 가는 날인데. 왜 자해를 했냐고 의사가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지.
나는 왜 이런 걸 생각해야 하지.
한심해. 하지만 생각을 안 할 수는 없잖아. 그렇게 되면 더 한심하게 보일 게 뻔하니까.
언젠가부터 대체 뭐가 더 중요한 건지를 모르겠어.
모든 게 어지러워. 그리고 기면증을 앓는 사람처럼 나는 내가 아닌 것 같아. 매일이 꿈에 젖어 있어.
그래서 관망이라는 독약 같은 해답을 찾아버렸어. 나는 그냥 바라본다. 내 자신을. 나를 사랑하지 않는 모든 것을. 그 모든 것이 세상의 모든 것이 되어버리는 약삭빠른 정체성의 상실.
그런데도 내가 있는 걸까. 나는 어디에 있는 걸까.
혹시 아무데도 있어서는 안 되는 걸 나 혼자서만 지키고 싶어 하는 건 아닐까.
뒷마당의 텃밭에 심은 방울토마토는 벌써 열매를 수십 개나 맺었어. 내가 해준 거라곤 가지와 가지 사이에서 돋아나는 곁눈을 떼어준 것뿐인데. 곁눈을 없애지 않고 두면 줄기들이 쳐져서 위로 자라지 못하고 열매도 잘 맺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처음엔 곁눈 가지를 아주 열심히 떼어냈어. 내가 보살피는 만큼 잘 자라는 것 같아서 그짓을 할 때마다 아주 뿌듯했지. 그런데 언제부턴가 방울토마토는 내가 세워놓은 지지대보다도 훌쩍 높이 자라 있더군. 마치 이제 더는 내가 손쓸 게 하나도 없다는 듯이. 그리고 곁눈도 하루가 다르게 자라서 어떤 게 원래 줄기고 어떤 게 곁눈인지도 헷갈리기 시작했어. 그때부터 나는 방울토마토가 넝쿨처럼 퍼져나가는 걸 그저 방치했어. 어떤 줄기를 없애줘야 열매를 잘 맺는지도 모르겠고 열매를 잘 맺는 게 가장 좋은 게 맞는 건지조차 모르게 되어버렸으니까. 그래도 방울토마토는 아주 잘 자라고 있어. 텃밭의 경계를 넘어서 우리집까지 건너올 듯이 여기저기로 가지들을 뻗어낸다. 이제 자기들에게 무엇이 좋은 건지는 자기들 스스로 결정하겠다는 듯이.
그리고 내 슬픔도 그래. 이제 자기가 결정하겠대. 나는 나설 자리가 없어. 나서기를 바라는 누군가도 없고.
그래서 마치 무한대로 뻗어나갈 듯해. 훼방꾼은 어서 꺼지라는 듯이. 그들이 심어진 나 자신까지도 폭파시킬 듯이.
그리고 뿌리를 잃고 씨앗을 뿌리고.
내가 없는 세상에서도 잘 자라나겠지.
내가 나의 보살핌에 살아나기를 기대하며 최선을 다해서 심었던 내 어린 방울토마토들처럼.
이 년 전 여름으로부터.
추신.
내 어린 시절의 모습이나 형상 또는 그로 인한 감회 같은 것들을 아무리 열심히 그러모아봤자 결국은 제대로 된 개차반 한 그릇도 끓일 수 없으리라는 것은 꽤나 뼈아픈 일이다. 더는 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는 서사의 불기둥에 기름만을 냅다 들이붓는 지극히 고고한 저 접점마다의 비약들. 그것들은 서로에게 조화도 자비도 없이 제각각 흩어져 따로이 태동하는 것 같다. 공통점은 오직 숨이 붙어있다는 것이다. 한곳에 있을 수 없고 하나의 어젠다를 이룰 수 없는 무수한 그림자 혹은 명도라곤 없는 어둠. 나는 내 미성숙한 일대기의 밑천을 다 드러낸들 결코 그의 본색만은 밝혀내지 못할 것이다. 무한한 잉크로도 다 채우지 못할 무한한 굴곡이 있듯이. 그래. 그걸 바로 모순이라고 하는 것 아니겠는가. 서슴없이 폐기된 곰팡이들의 대잔치. 돼지도 안 먹을 것들이 들어찬 그 솥에선 제발 발 좀 빼라지. 그 더러운 발까지 함께 넣고 끓인들 어차피 결과는 같을 테니까.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이 총체적인 혼돈의 일변도를 굳이 보기 좋게 꾸며낼 명분도 나에게는 없다는 것이다. 죽도 밥도 안 되는 역사를 끌고 여기까지 이른 것은 어쨌거나 나 자신이었다. 그 지리멸렬함에 돌을 던질 수는 있을지언정 그 누구도 이것이 거짓이 아닌 참이라는 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마이동풍. 혹은 소 귀에 경 읽기. 타인에 의해 규정당할 때마다 와해되다가 결집되기를 반복하던 깃털 같은 갑옷. 그 사이로 팽창하던 갖은 찬사와 모욕. 그리고 만면에 뒤집어쓴 가면으로도 막지 못한 가혹한 올가미들. 일말의 틈도 없이 빼곡한 구설수의 향연에 질식할 것 같던 그 시간들은 그러나 두 번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그때 무엇이었던가. 길들여지지 않은 생마의 귀를 스치는 바람. 혹은 이미 청각을 잃은 황소가 입술로만 되뇌이는 기나긴 만다라. 아득히 사라진 지 오래인.
단지 어제의 그림자일 뿐인 것들.
뿌옇게 얼룩진 창문. 차갑게 닿는 입김. 아이들은 크면서 일백 번도 넘게 변한다는 어른들의 변명은 널리고 널렸지. 하지만 그들 중 단 한 사람도 내게 진정 변하고 싶은지는 묻지 않았다.
추운 계절을 지날 때마다 한 뼘씩 자라던 키. 봄이 되면 손바닥만 한 수첩에 적어 외우던 같은 반 친구들의 이름들. 아직은 뺨이 시린 어느 날 아침의 반장 선거. 승리의 공허함과 패배의 숙연함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데에 따른 괜한 웃자람. 비가 내리는 오후면 휩쓸려 날아갈 것 같았던 자그마한 몸과 커다란 우산. 하루 빨리 이 우산보다 더 커다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매번 무릎까지 물이 튀던 물웅덩이의 모퉁이에서였다. 이상하게도 하굣길마다 늘 홀로 마주치던.
담쟁이가 팥색 벽돌을 어루만지는 떠들썩한 여름의 교실. 안정적인 무리의 일원이 되어서도 항상 느껴졌던 외로움. 그럼에도 모래밭이 펼쳐진 놀이터의 새파란 웃음소리는 가을이 되도록 끊긴 적이 없었다. 이건 다른 애들한텐 비밀인데 올해 내 베프는 너야. 둘만 있던 실습실 복도에서 그렇게 속삭이던 아이와 함께 이미 나이에 걸맞지 않게 된 그네에 걸터앉으면 눈 깜짝할 새 하늘 높이 치솟던 낡은 운동화들. 햇빛에 반짝이는 나뭇잎의 추상화. 땀이 나지만 신기하게도 덥지가 않아. 마주보며 동시에 터뜨리던 환호. 차마 다른 곳에서는 드러낼 수 없던 상념의 포효. 십 대의 첫 계단에서 우리는 처음부터 너무 많은 등짐을 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것을 나눠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에 경쟁은 오직 그 모래밭 안에서만 이루어졌으면 했어. 그네의 원심력으로 가장 높은 구름의 가장자리에 다다랐을 때. 차라리 그대로 세상 밖으로 튕겨져 나간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칼을 겨누지 않아도 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일부터 열까지의 숫자로 간단히 대체된 원주율의 잔상들. 더는 그네를 타지 않게 된 것은 성적표의 백분율이 소수점 둘째자리까지 나오면서부터였다. 그 숫자만큼 넓어지는 간극. 사회의 피라미드에서 우위를 차지하려면 옆자리에 아무도 없다는 것의 무게를 견뎌야만 해. 그렇게 세뇌시키던 어른들은 그러나 꼭짓점에 다다르는 순간 짜맞춘 듯 등을 돌린다. 마치 결말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정해져 있었다는 듯이. 어차피 구십 도를 굴리면 와르르 쏟아지고 말 삼각형. 단지 그것을 위해서 백 퍼센트와의 접점을 향해 내달리는 우리는 세상의 생살에 마취도 없이 알을 까대는 구더기와 같았다. 신음하는 것은 지난 여름에 새파랗게 웃었던 그 아이들. 빛을 바랜 것이 아니다. 바래기도 전에 좀먹고 파먹히는 삶. 단지 받아들이면 그뿐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해서 떨어지는 낙엽들. 겨울은 그들이 남기고 간 마지막 비명의 잔해들로 얼어붙는다. 그리고 놀이터의 모래밭은 숨이 턱 막히는 형형색색의 시멘트로 뒤덮였다. 그 사이에 덧칠된 핏자국을 보지 못한 척 고개를 돌리는 더더욱 혼자가 된 하굣길.
날마다 머리 꼭대기에서 들려오는 망령들의 비웃음. 웃음과 비웃음은 단 한 글자 차이인데도 어쩌면 이토록 지독하게 상반된 걸까. 삶과 죽음보다도 더하다. 이 비웃음을 이길 수 있는 건 사후세계에조차 없을 거야. 그렇게 생각하면 물을 가득 받은 욕조의 밑바닥에 머리를 닿게 한 채로 그저 잠이 들고 싶었다. 자기장의 장악력이 유실된 마음에 흔들리는 나침반은 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 방향이라는 차원이 제거된 좌표계에서 실선으로 그려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나는 옅어진다. 뿌옇게 얼룩진 자아. 턱 밑까지 차오른 숨을 있는 힘을 다해 토해내도 입김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아. 그럼에도 차마 혀끝으로는 발설하지 못한 것. 원망과 공포. 힐난의 대상의 부재. 나는 절대로 절대로 어른만은 되지 않아. 아직도 나라는 것이 있다면.
전부 다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제발 부탁이니까. 세상이 나보다 빨리 죽어줬으면.
그리고 이 모든 건 단지 일백 개의 진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아흔아홉 번을 더 변해봤자 어차피 그림자의 경계를 벗어나지 못할. 초라하고도 변변치 못한. 그러나 잊혀지지 않았기에 울분마저 비웃던 악랄한 환청 속에서조차 역사가 되어버린 일 퍼센트의 나 자신이다.
입을 닫고 눈을 감고 귀를 막고 이건 그들이 하던 그 변명과는 다르다고 믿으며 충실히도 용서했던 단 한 사람. 그의 기원이 고작 이것이라고 한다면 지금이라도 너는 변하고 싶을까. 그림자 가까이 가라앉은 형체를 일말이라도 건져올릴 수 있을까. 부평초. 악취가 풍기는 오물로 뒤엉킨 얕은 물가에서 물러터진 올챙이의 알처럼 서서히 녹아드는 그의 뿌리가 알지 못하게. 그 파리한 손아귀 너머로는 언젠가라도 꽃을 피울 수 있을까.
그곳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기에 여전히 이곳을 표류하고 있음을 그러니 이렇게나마 기억해. 하늘 저편에서 떨어지지 않고 포물선으로 숨을 고르는 표표한 웃음소리를 다시 듣고 싶다고 기어이 말로 내뱉어. 그것에 더는 그해 그 여름의 바람이 섞일 수 없음을 알고 있을지라도. 이 삶만은 그를 모르게.